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Mr. Han > 지난 칼럼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Mr. Han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첫 번째 연결고리부터 사슬이 얽히는 법이다. 하나의 발언이 비난이 되고 하나의 생각이 금지되고 하나의 자유가 부인되면 우리 모두 돌이킬 수 없게 얽히게 된다. 한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는 첫 순간부터 우리 모두는 상처 입게 됩니다. 』
 -Star Trek TNG 시즌4 에피소드 21 중에서-

 

 

항상 3미터, 그의 사람들과의 공전 거리

2년 전 그를 경기도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처음 만났을 때나, 수업 시간마다 시 한편씩을 골라 낭독해 주는 지금이나 그와 나와의 거리는 평균 3미터입니다. 그렇게 그는 보통 평균적인 사람들끼리의 공전거리인 30cm 보다 훨씬 길고 먼 사람들 사이의 공전 거리를 가진 그는 그렇게 ‘자폐’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철학적으로 또한 과학적으로 저는 자폐(自閉)를 ‘앓고’ 있는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도 자폐는 하나의 단일 증세의 단일 질병이 아닌 일정 범위만을 정하고 있고 그 자폐의 범위는 매 시기마다 자폐스펙스럼(Autistic Spectrum Disorders)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이 정의가 공식적으로 쓰인 것도 2000년 이후부터입니다. 자폐라고 진단 꼬리표를 달아 자폐인 것이지요.

저는 경기장복의 장애인고등교육 기관인 가온누리대학 2학년 모두에게 이런 진단과 꼬리표를 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개인 질병 정보로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진단 당하고 평가 당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Mr. Han의 장애 등급이 얼마인지 자폐성향의 강도와 방향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지도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폐라는 특성을 가지고 나름의 행동의지를 가지고 있는 새로운 신인류 Mr. Han을 2년 전에 만났을 뿐입니다. Mr. Han. 그는 다가오는 인기척도 감출만큼 조용하고 자신이 맡은 일 외에는 잘 나서지 않는 수줍음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단지 그에게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부탁하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지난 2년 4학기 중에 지난 3학기 동안은 저와 가장 먼 거리를 두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과제도 그림을 그려내거나 5줄을 넘지 않는 글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제 수업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저의 끊임없는 질문과 요구에도 짜증내지 않고 제 수업에 참여했고 마지막 학기인 이번 학기에 제 옆에 와서 앉아 달라는 요청에 응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는 스스로 공전 거리를 바꾸었지요. 이렇게 그에게는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과 정중한 부탁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부끄러움은 시간과 요청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꽃 화분에 자갈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모래와 흙이 필요하듯이 그가 그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시간이라는 흙과 부탁이라는 모래가 필요합니다. 그에게 흙과 모래까지 요구하는 것은 자갈 스스로 부서지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말 많고 산만한 우리들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요? 장애가 진정 차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당연히 비장애도 차이가 되어야 하고 상호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장애인에게 비장애에 대한 이해와 설득 없이 장애만을 주장하는 것은 비장애인의 우월함을 은폐하고자 하는 언변에 불과합니다.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기 위한 고취(鼓吹)성 발언인 것이지요.

그는 지난 학기 우리나라 청년이 그러하듯이 취업의 문턱에서 아픈 경험을 하였습니다. 단지 전화 통화를 하기에 부끄러움이 많다는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고용이 거절되었습니다. 그가 전화 통화에 부끄러움이 많은 이유는 단지 전화라는 물건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그의 특성으로 인정하고 이해하기는 하였지만 그에게 취업에 꼭 필요한 전화를 사용하게 하는 방법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전화 통화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화 통화의 시끄러움이 너무나도 싫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와 소통하고 싶은 누군가가 그에게 핸드폰에 문자와 무음 기능이 있어서 침묵 속에서도 소통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더라면, 침묵의 언어인 수화를 쓰는 사람들과 핸드폰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좀 더 핸드폰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무작위로 집어준 시집에서 구성원을 위해 낭독해 줄 시를 스스로 골라서 낭독해줄 수 있다면 그의 지적 능력과 사회성은 이미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와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개발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만약에 시간여행이 가능해져서 23세기의 인류가 13세기의 인류를 만난다면 우리는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누구의 사회성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는 그저 수줍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런 그가 이제 졸업을 합니다. 비장애인 청년들도 취업의 어려움과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사회에 이제 그는 홀로 나아갑니다.

부디 그의 앞길에, 그가 주저하고 부끄러워 할 때, 한 번 더 미소로 대해주고 한 번 더 나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실 수 있는 동료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와 함께 다소 먼 거리를 함께 공전해줄 사람들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그가 일하는 국수집에서 그가 조용히 말아준 잔치 국수를 배터지게 먹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는 오히려 사회와 주변이 원래 정해둔 규칙과 원칙을 잘 지킨다면 그는 최고의 성실함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한국보다 일본의 동경을 더욱 선호하겠지요. 일본의 동경에서는 그의 규칙성이 하등의 이상할 것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는 곧 그를 위해서는 준비가 별로 없는 우리 사회에 진출하게 됩니다. 비장애인에게 조차 혼란스럽고 시끄럽기만 한 우리 사회로 말입니다. 저는 단지 그에게 이렇게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Mr. Han.”

 

※이 원고는 2012년 7월 함께 걸음에 실린 <수줍어하는 차가운 남자 Mr. Han을 위한 취업추천서>의 후속편으로 2012년 경기장복 가온누리 대학 운영보고서에 실린 원고를 수정 첨삭했음을 알립니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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