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융호 총장님, 아직 당신의 질책이 필요합니다 > 대학생 기자단


배융호 총장님, 아직 당신의 질책이 필요합니다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신약성서 마태복음)

 

   
▲ 지난 4일 이룸센터에서 부상을 당해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무장애연대 배융호 총장

 

대장님, 대장님 우리 대장, 배융호 총장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지금 이 새벽, 흐르는 시간마저 암묵해야 하는 중환자실에서 홀로 부상과 싸우시는 배융호 총장님. 직접 병상 앞에서 그 뜨거운 손 맞잡지 못하고 이렇게 공개 서신으로 선배님을 뵙는 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여의도 봄꽃 축제에서 꽃들이 팝콘 터지듯 터지는 이때 당장 중환자실로 시간 내어 달려가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통해 총장님의 회복을, 복귀를 간절히 바라는 저의 충정을 너그러이 받아 주십시오. 

지난 4월 4일 여의도에서 인권강의를 마치고 아무 생각이 없이 다시 켠 핸드폰에 급박하게 들어온 총장님의 부상 소식과 수술 중이란 문자에 어찌나 마음은 무너지고 다리는 풀려서 버려 손에 잡고 있던 목발마저 놓쳐버렸습니다. 바로 2, 3일 전에 이룸센터 앞에서 얼굴을 보았을 때,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지난 3월 9일 정회원 자격으로 참여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시민연대 제5차 정기 총회 때 바쁘다는 핑계로 저녁 식사도 함께 못하고 못했는데, 매년 저희 단체의 모태 단체로서 늘 대접하던 저녁 회식도 몇 년째 미루고 있었는데, 어찌 총장님은 그리도 싫어하시는 병원에, 그것도 혼자서, 그렇게도 질색하시는 각종 전선과 센서에 둘러싸여 계십니까?

진정되지 않은 심장을 부여잡고 무엇에 홀린 거 마냥 괜찮으셔야 한다고 외치고 또 외치며 달려간 병원에서 전해들은 사고의 경과는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만 하였습니다. 2007년 12월 장애인복지에 관한 정보 교류의 장으로써 장애인 사회 참여 확대를 통한 사회통합 및 복지증진을 건립한 이룸센터에서, 후진하는 전동휠체어와 충돌하여 바닥에 수동 휠체어를 타고 있던 총장님이 떨어지면서 대리석 바닥에 오른쪽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심한 뇌출혈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이룸센터는 장애계 모두가 알듯이 장애인들의 왕래가 많아 이 같은 사고가 충분히 예측되었음에도 여전히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인명사고를 대비한 변변한 보험도 대비하지 못한 이룸센터 측에게 왜 이다지도 화가 날까요? 장애가 사고의 책임이 아닐진대, 장애인이어서 이 같은 사고를 당한 것은 더욱 아닐 진대 그 날, 총장님의 가벼운 수동 휠체어가, 총장님의 가벼운 몸무게가, 뒤돌아보지 못하고 출동한 전동 휠체어가 세상에서 제일 원망했습니다. 제가 총장님께 가르침을 받던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이하 편의연대) 연구원 시절, 뼈가 약한 선배님을 보호한답시고 집회 현장에서 늘 선배님 앞에서 나서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총장님에게 제일 두려웠던 것은 수많은 인파와 폭주하는 전동 휠체어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현장 투쟁에서 수많은 발언과 정책 연구에 뜬 눈으로 지낸 날이 부지기수임에도 불구하고 선배님은 투쟁에 선봉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편의연대는 나름 억울한 평가와 비난도 받아야 했습니다.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정부 편을 드는 장애인 단체라느니, 현장 투쟁은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앞에서 편하게 운동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일부 보는 것만 믿는 활동가와 치기 어린 대학생들에게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평가가 나올 때 마다 총장님은 무척 마음 아파하셨고 억울해 하셨지만 화내는 법 없이 묵묵히 또 밤을 지새우며 일하셨습니다. 마치 그렇게 활동하는 것이 대중들을 위한 기도인 것처럼, 자신을 위한 양심의 구원인 것처럼.

자기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과도 협력하여 일할 줄 알고 그런 이들을 감화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진보, 진실로 혁명을 꿈꾸는 진보라며 연구원 시절, 싫어하고 부담스런 정부 관료와 교수들의 접대를 해보라 하셨던 배융호 선배님. 매일 매일 야근을 뒤로 하며  퇴근하시는 당신의 작디작은 어깨에서 짙고 무거운 고독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 당신도 잘 모르시고 사람들도 모르지만 제가 대학에서 제일 먼저 장애인대학생 인권운동을 시작하고 동아리를 만들고 지도 교수님까지 모실 수 있었던 것, 다들 쉬쉬하던 장애인시설인 에바다 인권운동을 10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관심은 많고 노리는 사람은 많지만 조직이 형성되기 어려운 장애인 대학생에 유일한 시민단체를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것, 제가 연구원활동을 제쳐두고 장애인교육권연대 사무국장 일을 열심히 할 때 아무 말 없이 차를 내어주시며 측면에서 수많은 지원을 하셨던 것, 생색을 내고 티 나게 했으면 벌써 병원이 아닌 여의도 국회로 입성했을 만큼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셨던 것 모두 배융호 총장님이 당신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가르침이어서 가능한 것임을 저는 뼈 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총장님을 믿고 따르는 모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제 장애로 게을러지고 좌절할 때마다 날마다 멋있어지고 비장애인이 함께 하고픈 매력 있는 사람이 되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맘에 안 드는 정부 관료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을 더욱 설득하라는 당신의 질책을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배융호 선배님, 저는 아직 당신의 지도와 질책과 평가가 필요합니다. 염려하신대로 여전히 조직생활에 허약해 사무실에 상근직원을 들이는 것에 주저하고 있으며  아직도 여기저기 꼼꼼하지 못한 저입니다. 당신에 따끔한 충고와 조언이 필요한데 저에게는 아직도 믿고 따를 명령을 받아야 할 당신, 배융호 대장님 당신이 날카롭게 매서운 눈빛이 필요한데, 지금 어찌 병실에 계십니까?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반 병실에라도 내려가 대장님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대장님, 대장님, 우리 대장님.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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