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벗어났지만 갈 곳이 없다 > 대학생 기자단


학대 벗어났지만 갈 곳이 없다

[편집장 칼럼]

본문

수년 전 지상파 방송들은 시청률이 높은 밤 시간에 학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구해내는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해서 방영한 적이 있다. ‘SOS 긴급출동’ ‘호루라기’ 같은 프로그램들이 바로 그 방송들이다.

당시 주목해서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제보를 받고 방송국에서 출동해 학대 상황 현장에서 구해낸 사람들의 다수는 바로 장애인였다. 그리고 그 다수의 장애인들은 대부분 자기 방어력이 취약한 지적장애인들이었다.

방송에서는 ‘섬에서 30년 노예 생활’, ‘농장에서 임금 한 푼 못 받고 40년 노예 생활’, ‘시설 원장이 10년에 걸쳐 여성장애인 성폭행’ 등 믿기 힘든 학대 사실이 쏟아졌고, 당연히 방송을 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분노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는 끝이었다는 것이다. 방송 후 학대 상황을 벗어난 장애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전문가들을 모아 솔루션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 한다 어쩐다 법석을 떨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말잔치에 그쳤고, 학대 현장에서 구해낸 장애인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결국은 나 몰라라 했다. 

방송을 보며 분노했던 시청자들도 결론은 한 순간의 위안거리로 학대 상황에 놓인 장애인들을 소비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학대 상황에서 구출된 장애인들이 더 이상 학대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으로 옮겨져서, 그나마 최소한 인간답게 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방송국과 함께 장애인 구출에 나섰고, 현장에 개입 했던 단체의 관계자로서 느꼈던 답답함을 토로해 보면, 장애인들을 학대 상황에서 구해내긴 했는데 막상 학대를 경험한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우리 사회에 없었고, 그 때문에 애를 끓여야 했다. 그나마 몇 곳 있었던 쉼터는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 장애인들만 갈 수 있는 쉼터였고, 규정상 속칭 노예 상태를 경험한 장애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지방자치단체에 복지시설 입소를 의뢰해 보기도 했지만 돌아온 답은 매번 가족 존재 여부 확인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밟으라는 거부 대답뿐이었다.

결국 학대 상황에서 구출된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시설뿐이었다. 그것도 물어물어 수소문하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장애인들을 소규모 시설에 입소시킬 수 있었다.  

학대 현장을 벗어난 장애인들과 관련해서 이렇게 과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갈 곳 없는 장애인 현실이 과거 현실이 아닌 바로 지금 현실이라는 문제 제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실태를 보면 시설에서 또는 가족들에 의해 학대를 당하는 장애인들이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다른 말로 인권침해라고 부르는 장애인 학대는, 생각과는 달리 아무리 애를 써도 바로 근절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게 학대사실을 전하는 언론보도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면 그나마 현실적인 대책은 학대 상황에 놓여 있는 장애인을 학대 현장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고, 그 후 학대 현장에서 벗어난 장애인들이 맘 놓고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비교적 단순한 대책을 마련해서 시행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단순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학대 현장에서 벗어난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학대를 당한 후 갈 곳 없는 장애인 손을 잡고 복지부에 데려다 주면 복지부가 받아 줄 것인가, 지방자치단체에 가면 지자체가 잘 왔다고 장애인을 반겨줄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가 이유가 돼 학대당하는 장애인들이 분명히 있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갈 곳이 없어 장애인들을 학대 현장에서 구해내지 못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대 현장에서 벗어난 장애인들이 또 다시 시설이라는 닫힌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게 시급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한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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