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시행’해야 > 지난 칼럼


제도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시행’해야

[조원희의 법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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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시행’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엄청난 수고와 노력을 들여 제도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제도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장애인전용 주차구역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건물 주차장마다 장애인전용 주차구역이 마련돼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주차구역에 화물이 적재된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이 바쁘다는 핑계로 버젓이 장애인전용 주차구역을 이용할 때도 잦고, ‘주차가능’ 표지가 있어도 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타야 이용할 수 있음에도 이를 어길 때도 많습니다. 제도는 마련돼 있으나 제대로 시행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 걸까요? ‘제도’와 ‘시행’ 사이를 이어줄 든든한 다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다리는 제도의 입안자, 수범자, 향유자 모두가 지탱해 주어야 제대로 설 수 있습니다.

먼저 제도를 입안할 때부터 그 시행을 고민해야 합니다. 법률이 중요하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중요합니다. 또한, 입안자의 역할은 단지 제도의 제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잘 알려야 하는 것도 자신의 몫입니다. 제도의 시행에 친절한 안내자가 돼야 합니다. 지난 4월 11일부터 웹 접근성에 대한 규제가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이제 법률 적용이 시작됐으니 바로 시행될 것이라 생각됐지만, 제대로 된 시행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기업마다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 거냐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저기 문제 제기가 있자 정부에서도 세미나를 개최하며 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하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왜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제도의 시행은 입안자만의 몫은 아닙니다. 그 제도를 이행해야 하는 수범자들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만약 장애인전용 주차구역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자신의 의무는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시행될 리 없습니다. 얼마 전 이동권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은 자신은 할 만큼 했는데 장애계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는 그 주장의 진위를 알 방법이 없는데 그냥 믿어야 하는지. 수범자의 의지를 그저 기대하고만 있을 수 없다면, 결국 의지를 갖추도록 강제할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법의 집행은 더디고 복잡합니다.

적어도 장애 영역에서 행정과 사법의 관여는 한참 뒤의 일입니다. 일단 기다려 보고 정 되지 않으면 알아서 해보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마지막으로 제도를 누리는 향유자 처지에서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장애인전용 주차구역에 불법주차를 하는 차량의 상당수는 ‘주차가능’ 표지가 부착된 차량입니다. 해당 표지를 마치 특권인 양 대여해 주기도 합니다. 자신 때문에 정작 장애인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하지 못해 고생하는 장애인 당사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성년후견제 시행을 준비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행이 몇 개월 남았지만 잘 준비해야 한다고 미리 챙기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 죄송했지만, 장애계의 다른 제도들도 이렇게 준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정부도 장애계도 ‘디테일’에 강해져야 합니다. 제도 자체를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하고, 홍보하고, 모니터링하는 디테일이 필요합니다.

 

 

 

작성자조원희 법무법인(유) 태평양 변호사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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