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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이서진의 살며 생각하며]

본문

다시 가을이다.
가을이 슬금슬금 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책상 앞을 지켰다. 태풍도 싱겁게 지나갔고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한번 맞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다니지 않았으므로 거리의 선선한 기운조차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절로 숨을 헐떡거리던 여름은 온데간데없고 새벽으로는 이불을 뒤집어쓰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옆집 강아지가 제집 찾아들어가는 걸 봐도 신통방통일 텐데. 가을이 와서 똑똑 똑똑똑 수차례 노크했을 테지만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럼 뭔가? 가을이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옆집 강아지만도 못한 건가?    

‘계절불감증’은 내게 고질병이 되었다. 찬바람만 불어도 콧물 재채기가 어김없이 찾아드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목이 까슬까슬한 선천성 인후질환자가 아니라서 실감할 수 없다고, 뻔뻔스런 변명은 하지 않겠다. 그저 무슨 일이든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비는 게 상책이다. 나는 가을 앞에 석고대죄할 일이다. 저 앞산이 짙푸른 기운을 눈곱만큼씩 잃는 중이었으나 눈치 채지 못했다. 언뜻언뜻 올려다본 하늘이 진작 시퍼렇게 높아졌지만 하늘은 애당초 그 하늘이거니, 태만한 일상이었다. 죄명을 붙이자면 ‘무심 죄’에 해당하겠다. 옆집 강아지도 생각이나 감정이 있거든 하물며 사람이랴. 게다가 가을이라는 계절은 우리에게 결실과 성찰이라는 웅숭깊은 의미로 확장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축복이듯 변함없이 찾아온 가을을 문 밖에 세워둔 그 죄(?)는 몹시 비감스러웠다. 이제나저제나 문을 열까 그 얼마나 밤낮 서성거렸을꼬. 제 동무 갈바람은 등 뒤에서 쓸쓸하게 불어대며 재촉하였으리라. ‘다시 두드려 봐. 아무래도 가슴에 철갑을 두른 모양이군.’

철갑이 벗어진 건 한순간이었다. 은행…… 샛노란 은행……. 노모의 가방에서 그것들은 끌려나왔다.
“세상에나! 벌써 은행이?”
그제야 나는 문을 탁, 열었다. 우우, 가을이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스웨터에서 싸한 바람 냄새도 훅, 끼쳤다.

“벌써가 다 뭣이여? 노상 책상물림 허다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도 모르는구먼. 아이고! 그놈에 글씬(글) 은제 끝나누.”
“언제 이렇게 노래졌을까? 얼마 전까지 푸르스름했는데.”
어머니의 핀잔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주절거렸다. 하긴 한 달 전쯤 미용실 가서 머리 자르고 온 게 고작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 안에서라도 한가하게 가을거리를 내다본 적조차 없었다. 이런 무심할 데가 있나? 노모의 타박은 십분 옳았다. 세상물정도 모른 채 달팽이처럼 집안에만 파고 앉은 꼴이니 날이 가고 달이 가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지 은행나무가 물드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살뜰하게 몸에 좋은 음식 챙겨먹고 운동이나 적당하게 하면서 허약한 몸 돌보았으면 하는 딸자식에 대한 노모의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요망사항에 그칠 뿐이니 당연한 타박이었다.

“여 봐라, 아조 잘 익었제. 찰밥 한 번은 쪄 먹겄다.”
식도락과는 거리가 먼 딸이지만 오로지 그 딸에게 맛난 걸 먹이는 게 어머니의 일편단심이었다. 중증의 계절불감증을 스스로에게 진단한 내 속사정과는 상관없이.  

“그럼 인제 겨울도 금방이겠네.”
“암, 그렇다마다. 근데, 여그 됫속만한 데 앉았스믄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또 모를 것이여. 쯔쯧, 뭔 고생일거나? 감옥소 사는 것 맹키로.”
그럴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작업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집 놔두고 당신 표현대로 ‘됫속만한’ 오피스텔에 묵는 것을 노모는 못마땅해 하셨다. 감옥소, 라는 비약적인 비유는 가히 틀리지 않았다. 계절이 오고가는 줄도 모르니 감옥소와 다를 바 없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을 뒤늦게라도 맞아야 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왔을 텐데.

은행나무가 조성된 천변은 그야말로 ‘노란세상’이었다. 제법 굵고 튼실한 둥치 주변으로 샛노란 잎이며 알들이 수두룩했다. 도로가가 아니어서 행인들에게 밟힌 흔적도 없었다. ‘세상에! 죄다 떨어졌구나. 언제 제 몸 물들여 내려왔을까?’ 엊그제 새벽 잠결에 천둥소리를 들었는데 그에 버티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왔을 터였다. ‘순리(順理)’말이다. 은행나무를 대면하는 순간 가을은 내게 대뜸 그 순조로운 이치를 선물로 주었다. 억지스러움이나 무리함이 없는 도리에 대한 자각. 노랗게 물든 고운 빛깔의 은행잎은 인간의 욕망에 경계를 긋듯 뚜렷하고 선명했다. ‘더는 욕심 부리지 마. 자, 그만 여기까지!’ 천연의 노란색은 일종의 경계신호이듯 선을 긋는다. 그리고 넘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친다. 마치, 떨어진 은행과 잎사귀들이 은행나무 반경 내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욕망을 색으로 비유하자면 무슨 빛깔일까? 멈출 줄 모르고 채워지지 않는 탐욕의 그것. 검붉은 불덩어리가 떠오르는 건 상징화된 이미지가 뇌리에 고착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삽시간에 모든 걸 태워버리는 어마어마한 마력(魔力). 욕망은 마력과 같아서 스스로를 불태우고도 모자라 뱀의 혀처럼 날름거린다. 욕망의 검붉은 색과 순리의 노란 빛깔은 그 얼마나 대조적이랴! 칙칙하고 검불그스름해서 어디든 점령해버릴 듯한 그것과 밝고 투명하여 그 어떤 결이든 고스란히 드러낼 것 같은 빛깔은 애초부터 사람의 심상에 새겨진 때문이리라. 둥그스름하게 퍼져 널브러진 수북한 은행잎들을 눈여겨보면서 나는 검붉은 내 욕망 덩어리를 목도한다. 지난 봄여름을 태워버린…… . 멋대로 쓰고 멋대로 해석하고 멋대로 폄하한 검붉은 덩어리들을. 봄여름, 두 계절을 몽땅 불살라버리고도 여전히 욕망의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를. 노모의 가방에서 끌려나온 노란은행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가을마저 태워버리고 말았으리라.

푹 고개를 숙이고 둥치 주위에 그득한 은행잎을 찬찬히 보는데 한순간 연암의 ‘불자불서지문(不字不書之文)’이 뒤통수를 때린다. ‘문자나 글월로 쓰이지 않은 문장’이라는 연암의 편지 한 줄이 글쓰기의 정신과 이상으로 내게 감응했던 적을 톺아봤다. 이른 아침 정원에서 날갯짓하고 지저귀는 새들을 보고 연암은 글자나 글로 표현되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했다. 우주만물의 형상과 의미를 따라 부호로 만든 것이 문자니 자연만물은 문자 이전의 책이라는 해석이 옳을 게다. 새의 날갯짓과 지저귐을, 그 생명현상을, 어떤 언어가 대신하겠는가? 나는 자주 연암을 읽고 그 가르침을 숙지한다. 연암의 ‘불자불서지문’은 때로 내게 위로가 되기도 때로 도전이 되기도 했다. 글을 쓸 때 한없이 막막해지고 더없이 착잡해지면 책상을 뒤로하고 근처 공원에라도 나다녔는데 언젠가부터 그마저 시들해졌다. 그때, 봄은 얌체처럼 쉽게 토라졌고 여름은 꽤나 늑장부렸으며 가을은 저 혼자 시름하다 가버렸고 겨울은 미욱스럽게 더디었다. 나는 곧잘 계절을 마중하거나 배웅하면서 글쓰기의 회의와 시름을 달랬다. 꽃과 나무와 땅과 하늘은 그야말로 읽기에 충만했다. 연암의 가르침은 책상머리가 아니었다. 들꽃의 이파리에서, 쩍쩍 갈라진 소나무의 몸피에서, 그리고 가을걷이 끝난 황량한 들판이며 눈 내리기 전 오만상을 찌푸린 겨울하늘에 있었다.

‘오랜만이군? 더 늦지 않게 와줘서 다행이야.’
시원스런 바람에 실려 가을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샛노란 은행잎들이 쏙 고개를 내밀고 일제히 나를 본다. 멋대로 부풀어진 내 욕망에 경계를 짓기 위해.           

‘미안하게 됐어. 영 시원찮았거든.’
‘괜찮아, 그 시름 내려놔봐. 가벼워져.’

나의 변명에도 가을은 베풀고 보듬기에 넉넉하다. 일상의 고단함을 울긋불긋한 가을의 어깨에 턱, 내려놓는다. 은행나무 사이로 엿본 가을하늘은 맑다. 마침,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나뭇가지에 앉는다. 귀를 기울였으나 울음소리가 없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소인배에게 연암이 보았던 새의 날갯짓과 지저귐이 재현될 리 만무다. 촌철살인의 미학은 대가의 몫인지라 나는 오늘 은행나무 아래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작성자이서진 소설가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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