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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일기] 우리는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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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로 푹푹 찌는 이 여름이 끝날 무렵, 개학을 하면 우리 반 친구들과 난 지난 3월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씨름을 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너무 영리하다고 걱정하는 세상 사람들의 소리 너머에 우리 민들레반 아이들이 개학을 기다리고 있다. 지나치게 영악하고 똑똑하다는 일반 아이들과 달리 순진함과 어리숙함이 오히려 좋아 더욱 보고 싶은 것이다.
  특수교육을 요구하는 아동에게는 그들의 학습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특수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있다. 하지만 농촌의 열악한 환경에 자리한 우리학교 아이들은 어떤 조건의 선택 없이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입학을 하게 된다. 어떠한 행정적인 도움도 받아 보지 못하고 담임의 역량에만 한 해를 의존하는 시정이다.
  그렇게 해서 내게 맡겨진 아이는 현재 여섯 명. 그래도 다른 장애아이보다는 똘망하다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일곱 살난 재희, 절대로 담임인 나와는 이야기하지 않는, 왕언니로 불리는 열일곱 살의 민숙이, 한시라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입에 곰팡이가 슨다고 생각하는지 늘 양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는 열다섯 살의 사내아이 기성이, 집의 숟가락이란 숟가락은 모두 구부려 놨다는 대훈이, 우리 반 살림꾼이며 우리학교의 꾀꼬리인 세영이, 언제나 나의 말과 행동을 무시하는 현정이, 이렇게 여섯 명과 내가 우리 반 일곱 식구다. 우리는 심한 싸움도 하고 같이 교실 바닥에서 뒹굴며 지낸다.

  갑자기 보고 싶어진 아이들의 사진을 펼쳐본다. 사진 우측 하단에 새겨진 92. 6. 2.라는 글자 위에 가만히 있는 재희. 이 사진은 재희가 몸살로 3일을 결석하고 처음 등교한 날 찍은 것이다. 3월, 재희는 우리 학교에 처음 입학을 하고 엄마의 손을 잡고 민들레반에 들어온 이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여자 선생님은 "엄마", 남자 선생님은 "아빠"다. 나는 3개월 동안 본의 아니게 재희의 엄마로 지냈다. 아이들은 아프고 난 뒤에 한가지씩 배운다더니 3일간 몸살을 앓고 나서 학교에 온 재희가 교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서더니 나를 향해 "선생님"하고 불렀다.
  처음으로 나를 선생으로 승인해 준 날이다.
  나의 기쁨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라는 나의 철학(?)에 의거해서 나는 반 아이들 모두를 이끌고 교문옆 우리 학교의 설립 이념이 새겨진 비가 있는 "가없이 좋은 곳"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살아 숨쉬는 듯한 아이들의 산만한 표정들과 한 명이라고 놓칠 수 없다는 듯한 나의 필사적인 표정이 어우러진 우리 반의 기념비적인(?) 기념사진이 된 것이다.
  "주의집중 및 과잉행동 장애"라는 것이 기성이가 갖고 있는 장애다. 말 그대로 주의를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행동에 있어 평균치보다 몹시 과하다는 행동특성을 갖는다. 교사인 나를 가만히 있게 두지 않고 꼭 무슨 일을 저지르는 아이다. 또 주의 집중이 어려운 관계로 여러 가지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구슬 끼우기, 적목 쌓기, 병에 물 채우기, 선긋기 등을 하는 데도 몇 차례나 훈련이 필요하다.
  하루는 기성이와 선긋기를 할 때였다. 주의를 집중하는 데 3초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그걸 못 참는 기성이는 1초가 지나자 연필 쥔 손의 힘을 빼고 다른 곳을 본다. 그런 기성이에게 내가 목소리의 톤을 높여 "기성아 힘 줘" 했더니 기성이가 "힘 줘?"하며 "응가"(?)를 하는 게 아닌가…….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한없이 웃던 기억이 난다.
  우리 민들레반 교실에서 늘 이렇게 즐겁고 웃기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쁨이 있는 곳에 슬픔이 있는 것처럼 이런 즐거움 뒤로 안타까움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 학교 학생의 80%는 주내자육원이라는 고아원 시설의 학생이다. 우리 반 아이 두 명이 시설의 아이다.

  세영이는 그래도 인지력과 사회적응력이 뛰어나 자기 방 청소도 하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도 돌본다. 이런 역할의 수행으로 방의 보모로부터 인정을 받고 가끔씩 칭찬도 받는다. 그래서일까. 세영이는 무슨 일이든 작은 일이라도 선생님을 세 번 네 번씩 부르며 인정받고 싶어하고 칭찬을 듣고 싶어한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하고도 선생님을 부른다. 가끔 갖게 되는 간식시간에 세영이가 보여준 행동으로 나는 잠시 혼동을 겪었다. 세영이는 간식을 주면 간식을 가지고 내게 등을 보이며 교실 구석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간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는 빈 종이를 구겨서 손에 꼬옥 쥐고 걸어나온다.
  이런 세영일 보면서 처음엔 놀라움, 그 이후엔 얄미움, 미움, 서글픔의 순으로 나의 감정이 변화되었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세영이를 보며 더 이상의 죄는 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불리 먹기는 하지만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 그것도 얼른 먹지 않으면 나이 든 힘 센 형이나 누나에게 빼앗기고 말기 때문일까. 어쩌면 세영이로서는 그것이 삶의 한 방식이 되고 말았나보다.
  나는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만 이 아이에게 많은 과자를 주기보다는 교실에서만큼은 간식을 주지 않기로 했다. 간식시간을 갖고 세영이의 행동을 강화하기보다는 그런 행동을 보일 기회를 최소화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세영이에게 너무도 익숙해진 생활 습관, 어쩌면 이 아이가 시설이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 터득해 낸 생존 방식일 수 있는데 그것을 바꾸라고 종용하고 또 고쳐보라고 하기엔 내가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내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한 후 세영이를 보는 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우리 민들레반에서는 하루에 다 셀 수 없을 만큼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안타까움이 공존한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에게서 삶의 방식을 배우는 교사 한 명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우리나라 최북단의 특수학교, 새얼학교의 민들레반의 문을 두드리라. 무심히 보기엔 아주 하찮지만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면 너무도 탐스럽고 귀여운, 예쁜 땅에 폭 엎드려 있는 노란 민들레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민들레들이 더 멀리 날 수 있는 날개를 준비하고 있다.
작성자박경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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