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노예가 웬 말이냐구? > 지난 칼럼


대한민국에 노예가 웬 말이냐구?

[장애인 인권 이야기]

본문

지난 2월,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속아 수년간 염전에서 노예처럼 일하다가 어머니에게 ‘구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소금장수로 위장한 경찰에 의하여 극적으로 구출된 한 장애인의 사연이 알려진 후, 전국은 ‘염전노예 정국’이라 할 만큼 뜨겁게 달궈졌다. 영화보다도 극적인 사연이거니와 지적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속여 데려다가 임금도 거의 주지 않고 노예처럼 부려 먹는 일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한두 명이 아닌, 한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진 관행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사실 인권센터에서는 이 사건이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했던 일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여 일종의 기회로까지 여겨졌다. 이미 2006년에도 신안군에서는 동일한 염전 노예사건이 있었고, 거의 매년 낙도나 어선 등지로 장애인 등을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최근 2012년 전북 군산에서도 이번 염전노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한 일가가 대를 이어 지적장애인 등을 낙도나 어선 등지로 팔아넘기는 짓을 하고 있었고, 피해자로 파악된 사람만 70여 명에 달했다.

이번 사건과 같이 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노동력 착취가 적발되는 일도 일이지만, 지적장애인을 농장, 축사, 고물상 등지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돈 한 푼 주지도 않고 노동력을 착취, 운영자의 배만 불리는 일들이 곳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인권센터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총 9건의 노동력 착취 사건에 대하여 공익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지난 2011년에는 지체장애인 부부를 축사에서 노예처럼 부려 먹은 사람을 형사고발 하여 합의금으로 손해를 배상받았고, 2012년에는 지적장애인을 공장에서 일하게 한 뒤 임금을 가로챈 장애인의 친척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부당한 이익의 반환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지난 2013년에도 30여 년간 축사에서 지적장애인의 노동력을 착취한 사람에게 부당한 이득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를 거둔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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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센터는 사건이 발생한 후 관계기관과 함께 신안군을 방문한데 이어, 조사원을 신의도 현장에 파견하여 현재까지 경찰과 함께 실태조사와 피해자의 사후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신의도 현장에서 만나 본 염전 인부들이 염전으로 흘러들어온 경위는 대부분 비슷했다. 고아이거나 가족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많았고, 역전 등지에서 노숙하거나 배회를 하던 중 누군가가 접근하여 ‘돈을 벌러 가자’고 권유하여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소개소는 일정 기간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여관에 이들을 묵게 만든 뒤 식당, 술집, 사창가 등지로 이들을 데려가 이용하게 하고 터무니없는 요금으로 일단 빚더미에 앉게 했다. 일손이 필요한 염전주들이 소개소를 찾으면 소개소에서는 인부들이 그동안 사용한 비용을 ‘선급금’이라는 명목으로 염전주가 갚도록 하고 여기에 소개비를 추가하여 인부들을 넘겼다. 어찌 보면 본인이 사용한 돈을 내고, 정당한 소개비를 받고 알선을 해 주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인부들이 지적장애인이거나 경계선상의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일종의 인신매매가 일어난 셈이다.

인부들은 용돈 수준의 임금만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이들은 몇 개월을 일하고도 겨우 30만 원, 50만 원씩이 통장으로 들어왔고, 이조차도 받지 못하고 가끔 3만 원, 5만 원씩 통장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통장이나 있는 경우는 좀 나았다. 대부분은 사건이 터지고 근로감독관과 경찰이 순회하자 부랴부랴 통장을 만들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비슷한 시기에 통장과 근로계약서를 만든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노동력 착취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당하고 있는 일이었고, 이들 중에는 임금보다도 많은 돈이 보험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 보험수익자가 염전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명의를 도용당하여 6천만 원이 넘는 세금고지서가 날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사용하지도 않는 휴대폰의 수백만 원에 달하는 연체요금고지서가 날아오기도 했다. 현재 사건이 발생한 신의도는 염전주들이 인부들을 밖으로 빼돌리고 새로 데려오지 않아 예년보다 인부들의 수가 확연히 줄어든 상태다.

‘오갈 곳 없는 사람을 데려다 먹여주고 재워줬다’, ‘먹여주고 재워주니 형님 같은 분이시다’

파출소도 면사무소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음에도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그 일대의 희박한 인권인식 때문이었다. 염전주들은 아직도 ‘뭐가 잘못이냐’, ‘일부의 일을 전부로 확대하지 말라’, ‘우리도 선의의 피해자다’라는 식으로 항변하고 있다. 더구나 염전 인부들조차도 오갈 곳 없는 자신들을 거두어준 염전주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상은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노예와 같이 지냈으면서도 말이다. 지금은 누구나 이 일이 잘못됐음을 알고 있지만, 육지와 떨어진 그곳이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작성자김강원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팀장)  human53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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