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비행기(LCC) 타고 다녀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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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구소 보도 자료를 살펴보니 지난 3월 4일 열린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소송제기’ 기자회견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더군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된 지 9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미흡한 이동권 보장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험난한 일이지만, 그 제도를 실현시키고 감시해나가는 길 또한 종착점이 없는 먼 길인 것 같네요. 시외이동권보다는 훨씬 범위가 넓은 이야기가 됩니다만, 저는 이동권에 대한 권리의 범위가 앞으로는 국가 간을 이동하는 데까지도 폭이 넓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소수의 입장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불평이 아닌, 보편적으로 확보돼야 할 권리, 단지 문서로 기록돼있는 매뉴얼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작용하는 지침이 되기를 바라면서, 제 경험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신문을 보니 2013년도 한국, 일본을 찾는 방문객이 연간 1천만 명을 넘었다고 하네요. 그 대부분이 항공편을 이용한 방문객이라고 생각하는데 인터넷 사이트를 열면 오사카 서울을 운행하는 항공기가 기존의 항공사 이외에도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LCC라고 하는 저가항공사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10편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교통 접근권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장애인의 접근권도 그만큼 넓어진 것일까요?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평생 한두 번 탈까말까 한다는 비행기였지만, 글로벌화·세계화가 강조되고 있는 지금은 일부 부유층이나 특권계층이 아닌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인건비나 서비스를 축소하면서 저가로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LCC항공사의 등장으로 인해 그 문이 더 크게 열려진 것이 사실일 겁니다.
그러나 역시 서민들에게 있어 비행기란 특별한 시점에 이용하게 되는 교통수단이고, 특별한 경험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인상이겠죠. 그런데 일단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도 특별한 일이 되겠지만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기타 교통수단을 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의 이동이 아주 복잡합니다. 특히 보행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항 안에서 소비되는 이동시간이 근거리를 비행하는 항공편의 체공시간 이상으로 걸리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편을 이용하는데 있어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 공항 내에서의 이동권과 접근권은 기본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여 년 전 제가 처음 한·일 간의 국제선에 탑승했을 때 체크인 카운터에서 비행기 탑승구까지, 비행기 출구에서 입국장까지 항공사 직원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지체 없이 이동하며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친절하고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다양한 이용자, 또 장애인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기존 항공사에서는 탑승객의 체크인 과정에서 장애인뿐만 아니라, 어린이, 고령자에 대한 탑승 서비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데 있어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의 이동과 접근에 있어 보행 장애인이 탑승하는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이동 편리를 위한 서비스가 특별한 경우만 행해지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권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육친의 병환 등으로 급히 한국을 가게 되어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일본 P항공사의 항공편을 예약하게 됐는데 인터넷 페이지에서 좀처럼 장애인에 대한 안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문의전화를 하여 탑승 시 휠체어서비스를 부탁할 수 있었지만 참으로 번거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더욱 불쾌했던 점은 귀국 시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승무원이 짐칸에 보관하겠다고 해서 맡겼던 지팡이가 다른 손님의 부주의로 제 머리 위에 떨어지고만 거예요. 얼마나 아프던지. 다른 손님들이 다 내린 후 제 차례가 됐을 때 제가 승무원에게 “아까 지팡이가 머리 위로 떨어졌어요”라고 말했더니 이 승무원의 대답인즉 “네, 선반에 짐이 너무 많았어요”라는 겁니다. 아니, 기막혀라. 승무원의 인권에 대한 기본 교육이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뒷정리로 바쁜 그 승무원에게는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내린 후 책임자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금 벌어졌던 상황을 이야기하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운행을 해주어야 할 항공사가 장애인 승객 보장구 관리보관이 소홀한데다가, 불의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승객(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에게 행해야할 기본적인 안전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이 책임자라는 사람이 “보장구는 어디다 보관하면 좋냐?”고 되묻는 거 있죠. 여보세요, 그걸 제가 가르쳐줘야 합니까?
몇 주 뒤, 저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듣고 다시 한국에 가게 되었고 한국의 E항공사를 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체크인 후 휠체어는 대여해주지만 탑승구까지 안내해 줄 수는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갈 때는 짐이 없으니까 혼자서 밀면서 어떻게 대응을 했죠.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린 후 짐을 찾는 곳까지 스텝의 안내를 받았는데 그 스텝이 저에게 말하는 거예요. “손님, 원래 휠체어는 대여해 드리지만 밀어드리는 서비스는 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휠체어라는 기구만이 아니라 안전하게 공항 내를 이용할 수 이동권의 보장이 아닙니까?
일본과 한국 저가항공사의 이러한 현실을 “값이 싸니까 서비스가 부족해도 참아야 한다”는 말로 납득할 수 있을까요? 가격의 논리에서는 당연한 말인지도 모릅니다만, 차별을 없애려면 이동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가격의 논리 이전에 확보해야 할 당연한 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영자, 서비스제공자는 승객 중 장애를 가진 사람도 포함된다는 것, 그리고 장애인 승객을 위한 예약안내, 보장구의 보관처, 승·하차 시의 이동 보장을 위한 기본지침 마련과 교육, 그리고 최소한의 인력배치를 돈을 절약하기 이전에 당연한 운영의 기본으로 확보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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