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에 대한 가치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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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그렇게 하자고 선언하거나 한두 번 교육 한다고 완성되거나 실행되지 않는다. 개개인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조직 어디나 그러하지만 교육현장은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우리 교육현장은 그 목적과 단체 유지를 위하여 개개인의 욕구와 관계를 무한대로 보장할 수 없고 욕구와 관계가 제한된 공간과 권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교실에서 계급과 서열이 형성되기 너무나 쉽다. 그리고 그 계급과 서열, 권력에 따라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서열과 권력의 원칙이 인권의 원칙이 아닌, 폭력의 원칙, 힘의 논리에 따르는 것에 있다. 교육 현장의 한정된 자원과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 한, 교실의 원칙이 인권의 원칙을 전부 공유하고 공감하지 않는 한, 교직원과 학생들이 각자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교실 내의 서열화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법으로 정하거나 규칙으로 정해놓는다고 용이하게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교묘하게 내면화되거나 은폐될 위험이 높다.
역사적으로 우리 교실은 오랫동안 인권에 원칙이 아닌 다른 가치로 학생들을 계급화 했고 평가해온 반면에, 이렇게 부끄러운 위험을 직면하여 인권의 가치를 내세운 것은 ‘학교 폭력’이 뜨겁게 이슈화된 2~3년, 장애인 문제로만 보더라도 영화 도가니로 불거진 때로 채 5년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인권교육가들은 학교 현장의 이런 사회학, 문화학, 정치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그 안의 사람들과 불멸의 부동의 인권의 원칙과 가치를 합의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 인권의 기초 공사에 더 집중해야 한다. 한 마디로 인권의 ‘가치 투자의 과정’이 필요하다. 인권교육에서 과정과 저축을 도외시한 인권교육의 한방은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하더라도 그 리스크 위험성이 너무 크다. 그래서 인권교육은 그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 교육과 그것은 현장과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참여교육과 어떤 경우에도 그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가치 교육이 필요하며 이는 마치 적금을 쌓아가듯 차곡차곡 빈틈없이 만들어 가야한다. 그래서 지난 U초등학교 경우에도 많은 준비와 배경이 필요했고, 본 궤도에서도 1년에 걸친 교육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어떻게 담금질 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 장기 계획은 서울형 혁신 학교, 자율학교라는 자원과 환경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인권교육을 하는 사람은 그런 자원과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교육이 장기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자신 이후에 인권교육을 고민하며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인권의 완성과 실천이라는 적금만기를 위해 우리의 인권교육은 어느 회차의 유용한 적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교육의 서곡, 서울유현초등학교 ‘평화샘 프로젝트’
지난 호에서 북한산 아래 U초등학교의 실재를 궁금해 하던 이가 계셨을 것이다. 지면을 통해 소개된 몇 개의 단서를 토대로 검색해 보셨더라면 장애인과 관계한 U초등학교의 신상을 이미 발견하고 검색된 기사만 살펴보더라도 그 동안 인권을 어떻게 저금해 왔는지 아셨을 것이다. 북한산과 초등학교, 장애인이란 단어를 교차검색하면 제일 많이 떠오르는 학교가 바로 서울형 혁신학교이자 자율학교인 서울유현초등학교, U초등학교이다. 2011년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유현초등학교는 검색 기사만 보아도 각 학년 매학기 장애인과 관련한 인권교육프로그램이 지역의 전문 기관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학교 관리자나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인권과 인권교육의 필요성만큼은 공유하고 있으며 보다 전문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권교육가는 교육에 나가기에 앞서 교육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권교육을 만나고 그 가치를 저축하였는지 조사하고 소통하면서 자신은 무엇을 제시하고 저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필자가 이 유현초등학교의 인권교육의 좌표를 확인하며 선생님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2014년 유현초등학교 교육과정 기획안에서 찾아낸 평화샘 프로젝트, 평화공동체 문화와 학교 안정망 구축 방안이었다. 언급된 평화샘 프로젝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학교폭력 방지 프로그램이다. 노르웨이의 올베우스 프로그램과 핀란드의 키바 코울루 프로젝트를 토대로 한국에 맞게 재구성한 프로젝트다. ‘평화샘’이라는 이름은 평화로운 교실을 지향하는 ‘샘(선생님)’이라는 뜻과 땅속에서 물이 솟는 샘처럼 평화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평화샘 프로젝트와 같은 평화교육이 인권교육 완성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인권교육에서 꼭 필요한 필요조건임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교실에서의 권력과 계급, 서열에서 비폭력적이며 민주적인 의사소통, 의사결정이 약속되지 않으면 억압과 폭력이 일상적으로 자행될 위험은 아주 높다.
그 곳에서 가장 쉽게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는 고립되고 자기 방어가 어려운 약한 사람은 학생들이 지위가 가장 낮은 층으로 지목하는, 장애를 갖거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상대방의 공격적인 말과 행동에 적극적인 자기방어가 어렵고 자신의 힘으로 그런 상황을 벗어날 힘이 약하다. 또한, 다른 학생들이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다른 문화적 양식을 가진 학생들과 의사소통이 미숙할 수 있기 때문에 주류 학생 그룹이 아무 거리낌 없이 이들을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따돌리게 된다. 학교와 학급에서 이들 약자들을 지속적인 따돌림과 폭력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는 체계적인 대응과 원칙을 하지 않은 채 장애인 이해나 배려만 강조하면 장애인학생의 인권유린은 감춰지고 숨겨져서 장기화될 위험이 있으며, 학생들은 장애인 학생을 아예 조직 구성원이 아닌 존재로 투명인간처럼 열외한 채 장애인 아닌 다른 약한 학생을 찾아 괴롭히게 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평화샘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평화와 비폭력의 원칙이며 실행가치라는 점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체벌을 일삼고 장애인학생을 배제하면서 학생들에게 다른 행동을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고 학교가 평화롭다하더라도 방과후에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것 역시 무용지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현초등학교의 구성원들은 비폭력이라는 인권의 기본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평화샘 프로젝트에서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을 도울 것이다’,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 약속을 장애인학생과의 진정한 통합을 위한 인권교육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했다.
“우리는 친구의 장애와 같은 다름과 차이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이를 존중하면서 함께한다” “친구의 장애와 같은 다름과 차이로 인한 행동이나 실수에 대하여 함부로 비웃거나 비난하는, 평가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친구의 장애와 같은 다름과 차이로 때문에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면 어른들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한다” 등이다. 이와 같은 약속 등은 인권교육의 목표이기도 하거니와 인권수업을 인권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중요한 규칙이다.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할 때는 언제나 ‘토의’를 통해 반드시 반복적으로 주지시키고 관철시키는 게 원칙이다. 교육 현장 구성원 모두가 장애인 학생과 다양한 학생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비하 표현이 심각한 인권유린과 학교폭력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과 그것이 범죄라는 인권의식을 분명하게 각인하는 것이 인권교육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인권이 신념과 가치로 제대로 배우고 인식이 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반사적으로 자동으로 실천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인권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 그래서 인권은 실천과 감수성을 위하여 늘 연습과 훈련이 되어야 한다. 인권은 습관으로 완성해야 한다.
사회의 약자에 대한 폭력에 대한 법체계는 강력하지만 실제 사회의 처벌과 범죄로 인식하는 감수성은 약한 우리 학교에서 이런 현실적 원칙은 아주 중요하다. 인권은 사랑도, 따스한 마음도 아니다. 스스로에게 불편하고 어렵고 싫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인 것이다.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이 불편함과 고민, 스트레스를 공유하고 공감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 요컨대 가능하다면 외부 인권교육가는 인권교육의 결과에 욕심을 내기보다 자신의 인권교육 자체가 ‘인권이란 집’을 완성해 가는 주요한 공정임을 숙지하고 학교 구성원과의 소통을 통해 이런 인권교육의 기초공사부터 차근차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누가 할지 알 수 없는 내 다음의 한걸음 나아간 인권교육을 위한 주춧돌이 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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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들떠 본 인권교육 매뉴얼로 리허설하기
사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필자를 6개월 전부터 집요하게 괴롭힌(?) 장본인은 바로 유현초등학교의 특수교사 Miss Jo. 선생님이다. 물론 Jo샘이 처음부터 인권교사로 태어나 임용된 것은 아니다. Jo샘과 같이 인권교육을 기획하거나 지도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인권의 감수성의 한계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인권교육으로 인권을 공감하고 공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Jo샘이 각종 연수를 통해 인권의 감수성을 키우고 교육 기법을 익힌다고 해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교육하여 실천하게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더구나 일단 인권교육은 교육 행위가 진행되면 양태가 똑같더라도 담고 있는 가치는 재방송할 수 없다. 마치 결과를 알아버린 스포츠 중계처럼. 인권교육은 늘 생방송이다.
그래서 Jo샘은 이번에 필자와 함께한 5학년 학생들의 인권교육을 시행하기 앞서, 이 학생들이 4학년일 때 5회기를 완결로 하는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이번에 함께한 유현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는 2번째 인권교육이 되는 것이다. 차이점은 장애인이란 주제를 걸지 않고 학생당사자의 자신의 인권에 대해 수업을 진행한 점이다. 자신의 인권을 고민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공감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인권수업을 익숙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를 지켜본 다른 교사의 인권이란 이름이 주는 부담과 거부감을 줄여주기 위함도 있었다.
또한, 이렇게 먼저 해본 교육 경험을 다양한 장애인 인권교육 활동가에게 아래와 같이 발표하여 공유하여 검증받는 과정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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