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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 연구회] 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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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농인(聾人)계를 중심으로 농인의 수화에 대한 언어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수화언어법’ 제정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농인은 왜 청각장애인이나 장애인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수화에 한정된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1995년 일본에서 발표된 기무라 하루미와 이찌다 야스히로의 ‘농문화선언’의 주장을 중심으로 ‘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인’에 관한 농인의 주장을 확인해 보자.

일본에서 '농문화선언'은 사회학, 사회언어학, 장애학, 농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농문화선언' 발표 이후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과학잡지 <현대사상>은 농문화특집호를 간행하기도 했다. 농문화선언에 담긴 ‘농인의 수화(일본수화)’에 대한 강조 및 수화를 둘러싼 구분은 일본의 수화언어법 제정을 둘러싼 논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

교육적·의료적 관점에서 농은 청각장애의 정도가 난청에 비해 현저히 심한 상태, 즉 더 들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인들은 청각장애가 더 심한 사람을 가리키는 농인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또 농인이라는 호칭을 일종의 차별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청인들은 농인이라는 호칭보다 ‘청각장애인’이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농학교라는 말 보다는 청각장애학교가, 농인 아무개 씨 보다는 청각장애인 아무개 씨라는 말이 사회에서는 더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렇다면 '농문화선언'의 주장은 무엇일까.

기무라와 이찌다가 1995년 <현대사상>에 발표한 농문화선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농인이란 일본어와는 다른 언어인 일본수화를 말하는 언어적 소수파이다.’ - 이것이 우리들의 농인에 대한 정의이다. 이것은 ‘농인=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즉 ‘장애인’이라고 하는 병리적 관점에서부터 ‘농인=일본수화를 일상언어로서 사용하는 사람’, 즉 ‘언어적 소수파’라고 하는 사회적, 문화적 관점으로의 전환이다(기무라‧이찌다, 1995:8).

기무라와 이찌다는 농을 청각장애의 정도와 연결짓는 것이 아니라, 수화와 연결짓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수화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람들 즉 농인의 자기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농문화선언이 많은 농인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농인의 인식을 문자화하였기 때문이다.

 

왜 청각장애라는 명칭을 거부하는가

청각장애인이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농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기무라와 이찌다는 2000년 ‘농문화선언 이후’ 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이라는 말에 의해 쉽게 하나로 취급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농인이란 … 언어적 소수파’라고 보려는 이유는 농인이 언어를 공유함으로써 견고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무라‧이찌다, 2000, 397-398).

즉 농인이란, 들리지 않는다는 신체적 장애성에 근거하여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화로 연결되는 커뮤니티로서 수화를 공유함으로써 집단적 정체성을 공유한다. 농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수화’를 사용하는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농인들은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수화 사용 유무에 따라 농인과 청인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농인은 수화를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며, 청인이란 음성언어를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청각장애인 내부의 다양한 언어적 차이

수화라는 언어의 공유 문제는 들리지 않는 사람과 들리는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들리지 않는 사람들 내부에도 존재한다. 기무라와 이찌다는 '농문화선언'의 마지막 부분에서 청각장애인 내부의 언어적 다양성과 관련하여,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일본수화를 말하는 농인과 심컴을 최선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하는 중도실청인ㆍ난청인은 그 언어적 요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또한 중요할 것이다. 농인과 중도실청인ㆍ난청인을 하나로 묶은 청각장애인(청력장애인)이라는 명칭의 사용은 이러한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통역을 제공한다, 라고 할 경우 현실적으로는 보통 심컴통역이 제공된다. 이것으로는 농인의 요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부 일본수화 통역으로 바뀌어 버린다면, 이번에는 중도실청인 난청인이 이해할 수 없게 돼 버린다. 즉 ‘청각장애인을 위해’라고 일컬어지는 서비스로는 모든 청각장애인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기무라‧이찌다, 1995:17).

들리지 않는 사람 · 잘 들리지 않은 사람(청각장애인) 중에는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보청기나 인공와우 착용 유무에 상관없이 음성언어(듣기, 입술 읽기)나 필담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음성언어와 수화를 함께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언어적 요구도 달라진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는 청각장애인 내부의 언어적 요구의 차이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적 배경의 차이를 드러내는 용어로서 농인과 난청인ㆍ중도실청인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농인은 일본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만을 가리키며, 일본수화란 음성언어와 다른 독자적인 문법을 지닌 농인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농인의 수화를 말한다. 한편, 난청인이나 중도실청인은 음성언어를 말하면서 수화 단어를 나열하거나 혹은 음성언어의 문법(어순)체계에 따라 수화단어를 나열하는 일본어대응수화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농문화선언에서는 ‘일본어대응수화’를 음성언어와 수화가 동시에 사용된다는 의미의 ‘심컴(simu-com: simultaneous communication)’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농문화선언의 의의와 문제점

'농문화선언'은 그동안 청각장애인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온 수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들었으며, 청각장애라는 신체성이 아니라 수화를 통해 연계되는 농인의 리얼리티를 청인의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이라고 통틀어 간주되는 들리지 않는 사람들, 듣기 어려운 사람들 내부에도 다양한 언어적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를 '차이'로 인정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농문화선언'은 농인의 수화로서의 일본수화는 ‘완전한 언어’로 인식한 반면(기무라ㆍ이찌다, 1995:18), 난청인ㆍ중도실청인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본어대응수화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중도실청자나 난청인에게 있어 그것이 최선의 커뮤니케이션수단이라 할 지라도 심컴이 불완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같은 책:16).

이 주장은 언어를 커뮤니케이션 수단 보다 우위에 놓고,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수단 간에 우열을 논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농문화선언'이 '농인의 수화(일본수화)' 사용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일본어대응수화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간 ‘일본어대응수화=수화’로 인식됨으로써 농인의 수화 사용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화통역, 농교육에서는 오랫동안 농인의 수화보다는 음성언어에 기반한 또는 음성언어에 가까운 일본어대응수화가 더 ‘바람직한 수화’로 인식, 사용되어 왔다. 그 결과 일본수화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농인들의 언어권, 학습권, 정보보장권은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다.

 

맺으며

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인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의 농문화선언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인을 둘러싼 논의는 신체와 언어를 둘러싼 차이의 정치학이란 과제를 장애학에 안겨 주었다. 수화언어법이 농인 내부의 언어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한 제도가 되기 위해 보다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논의의 장에 장애학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인용문헌

木村晴美、市田泰弘[1995] 2000「ろう文化宣言」現代思想編集部編『ろう文化』青土社:8-17(기무라 하루미‧이찌다 야스히로[1995] 2000「농문화선언」현대사상편집부 편『농문화』세-도샤:8-17)

木村晴美・市田泰弘 2000「ろう文化宣言以後」ハーラン・レイン(石村多聞訳)『聾の経験』東京電機大学出版局:396-408(기무라 하루미‧이찌다 야스히로 2000「농문화선언이후」하렌 레인 저(이시무라 타몬 역)『농의 경험』도쿄전기대학출판국:396-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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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곽정란 「농문화 들여다보기 ‘한국의 장애학 숨은 그림 찾기’ 4」 『저항하라』 6 (44-49, 2006년)을 수정·가필한 것입니다.

 

※ 이 글은 11월 24일에 게제된 글로 편집과정에서 출처가 일부 누락돼 다시 게재합니다.

작성자곽정란 리츠메이칸대학교 생존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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