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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학회] 장애신학의 가능성

본문

 

필자는 신앙을 가진 장애인이다. 하지만 교회공동체에 대하여 애증이 있다. 애증의 감정 속에는 교회의 장애인을 향한 배타적인 태도와 관행에 대한 아픈 기억과 반감과 교회가 제공하는 사회사업의 수혜자로서의 고마움과 그리고 모태신앙의 조기교육 효과로 생긴 교회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애정과 신뢰 등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나는 한 동안 장애와 기독교를 연관짓기를 꺼려했다. 내 자신이 교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의 피해자이자인 동시에 조력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들추고 싶지 않아서 였다.

장애신학은 이러한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장애와 기독교의 진정성 있는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줬을 뿐 만 아니라 오랜동안 지속된 애증관계를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건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장애신학은 학문적 주제로서 장애와 장애인 및 장애문제를 연구하고 일상에 적용하는 실천적, 해방적 성격이 강한 신학이며 동등한 가치를 지닌 구성원으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신앙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신학은 199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이론적 연구와 실제적 적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국내에서의 학술적 연구와 실천적 적용은 아직 미비한 편이다.

 장애신학은 두 가지 잠재력이 있다. 첫째, 장애신학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전달하여 영광 돌리게 하는 유용한 이론과 실제를 제공한다. 둘째, 장애신학은 교회공동체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관행을 비판하며 교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통합공통체로 발전해 나아가게 하도록 조력한다. 장애신학이 한국교회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보겠다.

1. 정상성과 비장애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 교회와 사회에 만연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개개인의 장애인식 개선과 신앙심 고취만으로는 극복되기 어렵다. 편견과 차별은 사회구조적 모순과 부조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편견과 차별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없이는 통합적이고 협력적인 교회/사회 공동체 수립은 불가능하다. 장애신학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심층적인 접근을 위하여 장애와 비장애인의 삶의 경험을 정상/비정상과 불이익/특권의 권력차이로 논해보겠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와 갈등을 유발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다. 오히려 이분법의 수정적, 해체적 사용을 통해 역추적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찾자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신의 징벌,” “죄의 결과,” “숭고한 고통,” “기적의 치료” 등과 같은 기독교의 전통적 장애관은 의료적 관점과 결합되어 교회공동체 안팎에서 장애인의 위치를 격하하고 소외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관점들은 장애인의 “다른” 몸과 마음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장애인은 비정상, 결핍, 결여, 부족, 비극, 불쌍함과 동일시 되었고 장애관련 문제는 사회적 차원이 아닌 개인과 가족의 노력과 온정주의로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취급 당했다. 그 결과 장애인은 그들의 주체성과 존재 방식이 철저히 부정된 채 비장애인의 동정과 시혜의 대상 내지는 비장애인의 신앙과 사회적 위치를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상징적 수단으로 전락되기 일쑤였다.

우리는 장애가 상관관계의 맥락 보다는 독립적인 것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이 있으면 비장애인이 있고 집단적 측면에서 장애인이 받는 불이익이 있다면 비장애인이 얻는 이익과 특권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장애를 말할 때 장애의 부정적인 이미지만 부각될 뿐 비장애는 거의 매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장애는 항상 나쁘고 극복되거나 제거 되어야 할 대상인 반면 비장애는 너무나 옳고 당연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즉 비장애는 모든 것의 암묵적인 기준점과 지향점이 된다. 다시 말하면 비장애는 “정상”이란 이름 하에 무형, 무취의 절대권력이 되는 셈이다. 절대권력은 한 집단의 특권과 다른 집단의 불이익으로 귀결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비장애인의 이익과 특권의 관점에서 장애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장애의 유무를 떠나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 진정한 메시지라면 교회 안팎에서 작동하는 정상성과 비장애 중심주의를 예의 주시 할 필요가 있다. 이것에 대한 비판과 자성 없이는 열린 공동체 수립은 물론 하나님께 영광 돌림도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2. 장애인의 경험과 목소리 반영

다수의 장애신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장애인의 목소리와 경험은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도외시 되어왔다. 장애인의 입장은 비장애인 연구자, 정책가, 예술가, 목회자들에 의해 대변되어 왔으며, 대부분의 경우 장애인들의 입장은 과장, 왜곡되어졌다. 즉 이제까지 장애에 관한 지식과 담론의 생산자는 대부분 비장애인이었다. 장애신학은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다. 장애인의 목소리와 삶의 경험을 전경화하여 비장애 중심의 교회문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편견과 차별을 견뎌온 생존자들이다. 사회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가 그들의 몸과 마음에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증언자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또한 장애인들이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체득한 지혜, 협력과 사랑은 우리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어 중요한 덕목으로 사용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장애인의 특별한 삶의 방식과 문화는 교회를 비롯한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원천이자 달란트라 할 수 있다. 교회공동체는 이러한 장애인의 목소리와 경험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교회 안의 구조적모순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실천적 의미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사명이 있다.

3. 장애인과 비장애인 연대와 근거제시

통합적인 교회와 사회로 나아가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통합공동체는 한 개인/집단의 독점이나 또는 다른 개인/집단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개인/집단간의 평등과 다양성이 동시에 인정되고 존중될 때 가능하다. 다양성이 존중되려면 각 개인/집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비환원적, 전환적 의미의 공통분모가 필요하다. 공통분모를 찾는 작업은 동화와 흡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신학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찾아 공감을 향상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

모든 인간은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노령, 사고, 질병, 환경오염, 전쟁 등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즉. 어느 누구건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을 “예비장애인” 또는 “임시 비장애인”(Temporarily Able-bodied)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비결정적이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장애라는 현상은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상호 돌봄과 연대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유용한 틀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장애신학자 낸시 이슬런드(Nancy Eiesland)는 그녀의 저서 “장애인 하나님”(1994)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취약함과 통합교회 공동체의 정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상처난 몸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장애인과 하나님의 형상을 동일시 한다. 장애인 하나님의 이미지는 장애인이 온전한 인간일 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장애 유무를 떠나 취약하고 상호 의존적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었다. 무엇보다, 장애인 하나님 이미지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교회공동체가 모든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유동성있게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장애인 하나님의 메세지와 인간의 본질적인 취약함과 의존성을 비평적으로 사용한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수평적 연대의식 수립과 통합공동체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애신학은 비장애 중심의 한국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킬 잠재력이 있다. 이를 위해, 성경 재해석과 올바른 신앙 교육과 더불어 장애와 비장애의 권력차이, 장애인의 삶의 경험과 목소리의 적극적 반영, 그리고 인간본질과 존엄에 기초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대의식 고취가 선행 또는 병행되어야 한다. 통합 공동체는 개인과 집단의 같음과 다름이 동시에 인정 받고 존중 되는 사회정의의 공간이다. 장애가 창출하는, 장애인의 존재로 만들어지는 혁신과 개혁에서 교회공동체가 중추적 역할을 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작성자우충완 미국 시라큐스대 장애학 박사  cwwoo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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