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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1번이 남자야 여자야?

기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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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함께걸음 자료

집으로 우편이 하나 왔다. 선거 공보. 이번 총선에는 어떤 후보가 출마할까. 어떤 공약을 내세웠을까. 궁금한 마음에 바로 개봉해서 내용을 확인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기호 1번 OOO. ‘1’이라는 큰 숫자와 그 옆에 큼직하게 디자인된 이름을 확인하고, 그보다 조금 작게 디자인된 출마에 임하는 각오 한 마디를 확인했다. 그 다음부터는 내용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아니, 읽는 것을 포기했다.

공보는 후보마다 디자인된 형식이 다 달랐다. 후보의 기호(숫자), 이름, 출마에 임하는 각오, 그리고 공약까지 하나하나 글자 크기와 글자체는 물론 디자인되어 있는 위치도 다 다르다. 후보마다 개성을 살려서 만든 공보이기에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공보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확인하다가 포기해버리는 게 아마 다른 시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저시력인 시각장애인은 시력과 시야의 정도에 따라 선호하는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굵은 바탕체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얇은 고딕체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즉 각 후보의 공보마다 다르게 디자인된 내용을 저시력인 시각장애인이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기 위해서는, 다른 후보로 넘어갈 때마다 등장하는 글자의 디자인에 적응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

비시각장애인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후보의 기호와 이름을 크게 표기하고 있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금방 확인하기가 어렵다. 기호 1번과 이름은 오른쪽 아래에 디자인되어 있었는데, 기호 2번은 이름이 상단에 디자인되어 있으면 한참을 찾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떤 후보는 공약이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디자인되어 있는데, 다른 후보는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공약이 디자인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도 공약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공약이 디자인되어 있는 위치를 미처 찾지 못하고 넘어가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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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함께걸음 자료

또 어떤 후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이름이 조금 애매하다. 이 경우 점자로 된 공보를 읽는 시각장애인은 그 후보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 성별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시청각장애인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할 때, 꼭 세 가지를 이야기하며 상대방을 소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름, 성별, 연령대가 그것이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성별과 대략적인 연령대를 꼭 밝혀달라고 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원하는 층을 누르기 위해 버튼을 보면, 숫자와 함께 점자가 있다. 이젠 당연하게 디자인하고 있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를 선거 공보 제작에도 꼭 반영하면 좋겠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된 공보뿐만 아니라, 저시력인 시각장애인도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공보집 말이다. 후보마다 기호와 이름이 다른 위치에 디자인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나 보고서처럼 문서화하여 읽기 쉽게 디자인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투표 당일 현장에 가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공보를 제공하는데, 투표권자가 내용을 확인하고 누구에게 소중한 표를 줄지 고민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집에 우편으로 온 공보를 보고 충분히 고민하고 참정권을 행사하듯이,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작성자글.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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