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내 아들을 줄 것 같으냐? > 지난 칼럼


그렇다고 내 아들을 줄 것 같으냐?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본문

글. 제지훈/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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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주인공 양OO이는 올해 20대 초반의 발달장애 여성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녀석인데, 벌써 성인이 되었다니 격세지감이네요. ^^ 


ㄸ ㅗ ㅇ 고집

“으악, 지부장님!!!”

출근하자마자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직원들의 상기된 목소리.

“와요? 와 그라는데요?”

“이것 보세요. 양OO이가 어제 퇴근하고 저녁밥 먹을 시간에 보낸 사진이라예.”

“봅시다. 뭔데 그리… … …. 야, 이씨, 양OO 니 일로와!!! 이기 정신이 있나 없나?”

“헤헤헤, 지부장뉨, 이쁘지예?”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주중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양OO. 가족들과 함께 저녁 먹다 갑자기 배가 아파오는 양OO. 그날따라 얼마나 쌓인 게 많은지 정신없이 싸 제끼다 정신 차리고 물을 내리려는 찰나, ‘얼마나 많이 쌌나?’ 궁금해진 양OO. 워매, 변기를 한가득 채운 똥 덩어리들이 지가 봐도 신기하거든.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이걸 협회 선생님들과 공유해야지. 지부장님은 무서우니까 패스.’

엄마 핸드폰을 빌려 폭풍 카톡질.

아따, 이런 잔머리는 얼마나 잘 굴리는지. 그날 저녁밥 먹다 테러 수준의 정신적 봉변을 당한 직원들. 작은 썸네일로 도착한 사진이 마치 접시에 소복이 담겨있는 된장 같아, 그걸 또 확대해 봤다는 것 아닙니까? ! 찍어 먹던 된장이 목구멍으로 넘어갔을까요? 된장찌개도 다 버렸을 듯. 그 와중에 지부장님은 무서워 패스하는 센스.


참고) 필자는 올 2월 협회 지부장직을 사임하고 운영위원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본인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집요하게 사람을 물고 늘어지는 양OO이 덕에, 집안 식구들은 물론 활동지원사 선생님들도 곤욕을 치를 때가 더러 있습니다. 한 번은 협회에서 되지도 않는 똥고집을 부리다 저한테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집에 갈 때까지 씩씩거리다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겨우 진정시켜 귀가는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나 봅니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지부장님요, 뭐하십니까?”

“밥 먹는데요.”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만, 야 때문에 돌아삐겠습니다.”

“와예?”

“지 생각이 맞는데 자꾸 지부장님이 똥고집을 부린답니다. 엄마 아빠가 니가 잘못했다고 타일러도 막무가냅니다. 고마 내일 협회 가면 지부장님이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해 주이소.”

“싫은데예.”

“아, 예….”

전화 끊고 어머니께서 통화 내용을 알려줬나 봅니다. 지부장님이 잘못했다카더라 뭐 이런 대답을 기대했다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니 지도 적잖이 놀라고,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강적을 만났다 싶었나 봅니다. 다음 날 출근하니 양OO이가 손수 적은 편지를 하나 건넵니다. 구구절절 적은 편지의 내용을 함축하면 ‘앞으로 잘 지내보자’ 뭐, 이런 내용입니다. 곧 죽어도 지가 잘못했다고는 안 합니다.

똥고집 → 지부장님한테 꾸중 → 귀가 → 엄마나 활동지원사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옴 → 단호하게 대처 → 양OO 부글부글 → 다음 날 편지

제가 지부장으로 있는 동안 이런 패턴들이 무한 반복되었습니다. 하하하.


밀당, 당밀, 밀당, 당밀…

필자의 집은 아이들(5세, 7세, 9세)이 방학하면 육아는 고스란히 제 몫입니다. 지부장 사임 후 본격적으로 자영업을 시작한 탓에 아무래도 정시 출근, 늦은 퇴근을 해야 하는 아내보단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인데요. 한 번은 지인들이 챙겨 준 기부 물품들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협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옷, 가방, 학용품, 인형 등 다양한 물품들을 한 보따리 풀어 놓으니 다들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분쟁의 서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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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6시 44분.

양OO이로부터 섬뜩한(?) 문자가 연이어 도착합니다. 저녁밥 먹다 말고, 그 옛날 협회 근무하던 시절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납니다. ‘이번에도 쉽게 끝나지 않겠지?’ 갑자기 밥맛이 확 달아납니다. 하고 많은 기부 물품들 중에 양OO이는 딸랑 저거 하나 집어 들고 집으로 갔나 봅니다.

“선생님(이젠 지부장이 아니니 ‘선생님’이라 합니다), 선생님 막내아기 저 주세요.”
“싫어.”
“싫어요. 저 주세요.”
“저 인형이나 잘 키워라.”
예상대로 그때부터 집요하게 달려듭니다. 전화를 잘 안 받으니 문자테러를 합니다. 지는 절박한데 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악이 머리끝까지 받쳤던 것이지요. 어느 날은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이 의사 같은 놈아. 협회 오거든 나 보지 말고 그냥 조용히 선생님들만 보고 가세요.”
양OO이는 의사선생님을 싫어합니다. 가끔 대학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이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지시하니 그게 싫다는 겁니다. 자기 뜻대로 하고 살다가 유일하게 의사선생님만 자기한테 지시를 하니 못마땅한 것이지요. 그러니 제게 ‘의사 같은 놈아’라고 한 건,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나쁜 욕을 한 것입니다. 하하.
그러든가 말든가 무반응으로 일색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 반응이라도 보이면 떼를 쓰든 악을 쓰든 덤벼 볼 텐데, 반응이 없으니 되레 자기가 초조해졌나 봅니다. 급기야 이런 문자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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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저의 의지와 관계없이 국장님께서 동생을 키우지 말라 하셔서 그만둔답니다. 음, 제 아들은 국장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제가 키울 수 있는 것이군요.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 양OO. 그러고는 말미에 끝내 한마디 합니다.
“정말 너는 심한 남자구나.” ㅋㅋㅋ

사회통합? 그 이전엔 통합이 아니었나?
장애인복지의 중요 가치를 꼽으라면 단연 ‘사회통합’입니다. 사회통합이 뭘까? 뭔데 이리도 많은 화두를 던지나? 직업재활, 장애인 일자리, 자립생활 등 장애인복지가 지향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결국 사회통합으로 귀결되고, 무엇을 하든 장애인복지는 사회통합에다 마침표를 찍어야 정답처럼 보입니다.
 

사회통합 [social integration, 社會統合]

비통합적인 상태에 있는 사회 내 집단이나 개인이 서로 적응함으로써 단일의 집합체로서 통합되어 가는 과정.


지식백과의 정의입니다. 표현을 빌리자면, 장애인의 사회통합이란 결국 장애인을 ‘비통합적인 상태에 있는 사회 내 집단이나 개인’이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양OO이뿐 아니라, 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어떤 장애인도 비통합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불편하다는 것이니 오해는 없기 바랍니다. ^^

그나저나 양OO아! 우리 쉴 만큼 쉬었으니 또 2차전 준비해야지? 코로나가 잠잠해지거든 아니, 언제 잠잠해질지 모르니, 추석 명절 끝나거든 다시 한 판 붙자. 그러면서 평생 같이 늙어가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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