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더 vs 이왕이면 한 날에 > 대학생 기자단


하루만 더 vs 이왕이면 한 날에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본문

글. 제지훈/사회복지사
 
 
 
현장에서 만났던 장애인 당사자 부모들의 다양한 유형을 각색해서 격에 매이지 않고 적었습니다. 진중한 사연들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함이 아니니, 혹 너무 가벼이 여겨지더라도 너른 양해를 구하며 맘 편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유형, 내 눈에 흙이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 된 염OO 군. 6년 전 처음 만난 염 군은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여 년을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다, 지적장애인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였지요.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 달랐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차피 부모 죽으면 혼자 살아야 하니 매몰차게 세상 밖으로 나가보라며 등 떠밀던 어머님과 달리, 딱 봐도 한 성깔 하게 생기신 아버님은 오히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끼고 살끼요.”라며 엄포를 놓는 바람에, 함께 온 어머님과 염 군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사람 보기와 참 다르네. 산적같이 생기신 분이 마음은 여리구먼. 그럴 거면 뭐하러 찾아왔나? 계속 끼고 살지!’
“아버님, 그러면 제가 눈에다 흙을 확 넣어드릴 테니 그냥 놓아주시죠.”
“뭐요?”
“제가 눈에다 흙을 넣어드린다고요.”
“어허…, 참, 내. 허허, 말이 그렇단 거지.”
적잖이 당황하신 어머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만 그 덕에 그날로 염 군은 저희와 함께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취업 전 협회에서 각종 미사여구를 사용해 추천서도 적어주었지요. 모르긴 몰라도 그것 때문에 직장에 붙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하.
 
 
두 번째 유형, 하루만 더
대충 감이 오시죠? “저는 마, 저놈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입니다.” “저놈 먼저 보내야 내가 눈을 감지요.”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이나 보호자들의 18번 레퍼토리입니다. 한 날은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어머니께서 찾아오셔서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쌤요, 나는 다른 소원 없어예. 그냥 저놈보다 하루 더 살아서 장례 치러주고 가는 게 소원입니다.”
“그래예? 보자,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게 있는데,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50세라 카데예. 음…, 그러면 어머니도 슬슬 가실 준비 하셔야지예? 아버님은 그런 말 안 하셨은께 가시더라도 혼자 가이소.”
“어 어데예? 그냥 해 본 소리지. 참말로 쌤도….”
“맞지예? 그냥 해 본 소리지예? 그라모 앞으로는 그리 말하지 마소. 우짜든가 어머니 인생도 있는데 쫌 폼 나게 살다 가야지예.”
어머니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느낌 아니까. ^^
 
 
세 번째 유형, 우리가 남이가? 같이 가야지
터프하기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유OO 군 어머니.
“어이구, 저 빙신 같은기 몇 번을 가르쳤는데도 모르노?”
“하이고, 오, 해도 해도 안 되는 것들을 억지로 가르쳐가 떡 하니 무대에 세우고 박수받고 내려오면 좋나? 누구 좋으라고 저라노? 저거 새끼들 같으면 저리 하긋나?”
“쌤요, 장애인법 만드는 것들 보면 미친 것들 많습니다. 저것들이 뭘 안다고 법도 희한하게 만들어가, 아무 혜택도 못 받게 만들어 놨어예.”
와…, 진짜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거 같지요? 아닙니다. 평소 말투가 저런 분이십니다. 그래도 저하고는 친분이 있으니, 어디 가서 저보고 미친놈이라 욕은 안 하시겠지요?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이분이 느지막이 야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학기가 되니 대학 강사 중 몇 분이 찾아와 슬며시 물어봅니다.
“아니, 저분은 진짜 장애 자녀 어머니 맞습니까? 자기 자식보고 빙신이라 카던데예?”
“와…, 강의하면서 진짜 아무 말 대잔치 하는 분은 처음봤어요. 저분 정체가 뭔교?”
“우와…, 저분 뭐 하는 분입니까? 학생인데도 무서워서 말을 못 꺼내겠어요.” 등등.
하루는 진지하게 찾아와 이리 말씀하십니다.
“쌤요, 나는 자식보다 하루 더 살고 싶다는 말 안 믿습니다. 그거 거짓말입니다. 그게 진짜면 내 주위에도 자식 따라갔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아직도 멀쩡히 잘 살아있습니다. 나는 내 새끼보다 하루 더 사는 거 싫습니다. 이때까지 지 때문에 뼈 빠지게 살았는데, 장례까지 치러야 합니까? 우리가 의리가 있지. 죽어도 확 같이 죽어야지예.”
와! 진짜 이분쯤 되니 저리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사실 유OO는 자기 친아들이 아닙니다. 친아들이 아니라서 함부로 말한다고요? 그건 더더욱 아닙니다. 원래 성격이 저래서 그렇지, 정말 속 깊은 분입니다. 협회에서 경남지역 발달장애인 수백 명을 초청해 행사할 때 차가운 도시락 먹이는 게 맘에 걸린다고, 업소용 전자레인지 6개를 행사장까지 가져와 끝끝내 도시락 하나하나를 따뜻하게 데워 참가자들에게 주신 분입니다. 한겨울이면 기름 난방을 사용하는 협회가 딱하다며, 매주 말 통으로 두세 말씩 기름을 사다 주십니다. 유OO가 협회 이용자냐고요? 아닙니다. 주중에는 단기보호시설에서 생활하다 주말에만 잠시 집에 옵니다. 그런데도 자기 아들같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면 자꾸 맘이 쓰인답니다.
아들에 대한 의리로 많은 사람이 덕을 보고 있습니다. 그 의리로 죽어도 한 날 죽자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진짜 그리하진 않을 겁니다. 하하.
여러 해를 장애인복지 현장에 있다 보니, 다양한 부모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각자 처한 환경은 달라도 자식들에 대한 마음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습니다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자식보다 30세에서 40세는 많으니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부모가 먼저 떠나지요. 그런데도 자식보다 먼저 가고 싶다는 분을 아직까진 뵌 적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고생 많이 했다. 그러니 이제 먼저 가서 편히 쉬련다.” 이렇게 말해도 어느 하나 나무랄 사람 없는데 말이지요.
지금도 자신들 사후에 홀로 남겨질 자식들 걱정에, 시설을 찾아다니거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다면서도, 홀로 남겨질 자녀를 위해 전사가 되어가는 역설적인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어제 아내와 이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보, 우리 아이들이 너무 좋은데,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을 생각하면 맘이 아프다.”
“맞제. 세상도 흉흉하지만, 우리 형편에 근근이 공부시켜 어째어째 고등학교는 졸업시키겠지만 그 후에는 어쩌겠노?”
잠든 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릴 쓰다듬어 주는데 울컥합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떻겠습니까? 누가 발달장애가 있는 자식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세상 누구도 발달장애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길에서 관공서에서 학교에서, 활동가로 투쟁가로 자신을 태워 길을 만들어가는 이 땅의 많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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