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책임지는 사회 >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장애인을 책임지는 사회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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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0년의 마지막 칼럼입니다. 코로나로 너무 힘겨웠던 올 한해, 현재도 진행형이고 그 끝을 알 수 없어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는 불안감은 사그라질 줄을 모릅니다. 특히 장애인 이용시설과 복지관의 휴관, 보호 작업장이나 표준사업장을 비롯한 장애인 고용사업장의 휴·폐업 등은 장애인 당사자 혹은 그 가족, 보호자들에게 불안감 이상의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이번 호의 제목은 사실 필자가 1990년대 후반에 구입한 영국의 에다 톱리스(Eda Topliss)가 쓴 책 <Social Responses To Handicap>의 한국어판 제목입니다. 여수룬 출판사에서 1997년에 초판인쇄를 하고 발행했으니 지금으로부터 딱 23년 전의 일입니다만, 어쩌면 2020년 오늘을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염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 법 제정, 제도 혹은 인식의 개선 등 장애인복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변화를 넘어, 장애인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스스로 답한, 제가 생각해도 현실에 빗대어 지극히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이라, 보는 이에 따라 ‘쳇’, ‘아니, 뭐 이런’ 등의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하.
 
 
에피소드 하나
어느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한 여성이 그만 사고로 얼굴에 심각한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이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대략 10%의 학생들이 손을 들더랍니다.
“엄청난 부를 가진 한 남성이 있었는데 그만 사업 실패로 순식간에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번엔 대략 30%의 학생들이 손을 들더랍니다.
계속해서 교수가 말을 이어갑니다.
“여러분, 이 여성과 남성을 연인이라 생각하지 말고 가족이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부모라면 내 자식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경우, 그래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번엔 100%의 학생들이 손을 들더랍니다. 실화인지 예화인지 그 출처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에피소드 둘
이번엔 실화입니다. 2011년 11월 24일 중앙일보에 소개된 사연입니다. 미국 아이다호주에 살고 있는 제니는 뇌종양 3기 진단을 받고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만, 2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8남매 중 셋째인 제니는 엄마가 되는 게 소원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치료 후유증으로 불임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중 기적적으로 임신소식을 접하게 되는데요. 10주차였습니다. 때마침 치료 경과도 좋아, 종양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희소식도 들립니다. 계속해서 항암치료를 받는다면 생존확률은 더 높아집니다. 어쩌면 가족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은 축하하며 포기하지 말고 항암치료를 이어갈 것을 권유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항암치료와 태아 중 태아를 선택합니다. 임신이 불가능한 상황에 찾아온 ‘기적의 아이’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이지요. 두 사람 모두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제니는 극심한 고통을 아이를 생각하며 참아냅니다. 하염없이 울기도 했을 테고, 이를 악물기도 했겠지요. 가끔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10개월.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이 ‘채드’를 품에 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숨을 거두게 되는데요. 제니의 엄마 다이아나 필립스는 손자 채드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얘야, 엄마는 항상 호탕하게 웃고 반항적이기도 했던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단다.”
돌아보면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일하던 저도 부모가 되기 전, 후의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바로잡고 고치고 가르치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어그러진 동작, 상황에서 벗어난 행동, 인풋(input)만큼의 아웃풋(output)이 없을 경우 그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회유와 협박, 당근과 채찍으로 매섭게, 서슬 퍼렇게 가르치려고 했었습니다. 그것이 사명감인 줄 알았고, 믿고 자녀들을 맡겨 준 부모들에 대한 신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부모가 되었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어느 하나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각 잡힌 칼 주름처럼 닦달하며 가르치려 했던 장애인 교육생들이, 사실은 저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는데, 부모가 되기 전엔 미처 거기까지 제 시선이 닿지 않았던 것이지요.
요즘 다섯 살인 막내가 갑자기 말을 심하게 더듬거립니다. 일시적 현상인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지 아직은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만,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걱정이 되는지 꼭 치료실에 데려가 보라네요. 첫 말을 시작하기 위해 들숨을 몇 번씩 크게 쉬는데, 저러다 숨넘어가겠다 싶어 “시준아, 아빠 앞에서는 천천히 이야기해도 돼. 아빠가 기다려 줄게.”라며 안심시켜 줍니다만, 남들 앞에서 저리 고통스럽게 말을 내뱉을 것을 생각하니 맘이 아픕니다.
잠깐 스쳐 가는 내 아이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에도 이렇게 맘을 졸이는데,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의 가족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그걸 부모가 되고서야 조금씩 깨달아 가니, 어쩌면 말은 안 했어도 많은 장애인 부모님들이 분명 제게 서운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죄송할 뿐이지요.
 
 
장애인을 책임지는 사회
어려운 숙제 같아도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해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우리는 국가가 구해줄 것이란 기대와 더불어 ‘과연 내 나라가 나 한 사람을 위해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할까?’라는 의구심도 갖게 될 것입니다. 확신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가족들은 어떨까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저는 국가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모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된다면 우리나라 국민이 어느 곳에 있든 고국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질 것이고, 국가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밤낮으로 세심히 살피지 않겠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 그런 사람들이 모여 정치를 하고 제도와 법을 만든다면, ‘장애인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회’는 그리 어려운 숙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코로나로 너무 어렵습니다. 장애 여부를 떠나 대다수의 국민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단순히 선심성 지원책 몇 가지 툭 던져주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고, 또한 그것을 정치적으로는 더더욱 이용하려 하지 말고, 진짜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국민의 삶에 국가가 조금 더 깊숙이 들어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된다면 고단한 삶도 국가가 마지막까지 지켜줄 것이란 기대와 확신으로 이겨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내 나라 대한민국을 기대해봅니다. 
 
 
작성자제지훈/사회복지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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