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없는 비대면사회는 불가능하다 > 지난 칼럼


대면 없는 비대면사회는 불가능하다

인권 없는 뉴노멀은 대안이 될 수 없어

본문

글.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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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이후 뉴노멀(New Normal)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와 다른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새로운 기준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마스크나 손소독제는 기본이고, 업무나 회의 및 교육도 비대면 온라인으로 치르는 등 일상생활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아직 바이러스 백신도 안 나왔고 치료제도 안 나온 상황에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접촉을 줄이는 방식이다.
뉴노멀이란 말은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신조어는 아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모하메드 엘에리언이 <새로운 부의 탄생>에서 ‘저성장이 상시화된 시대’를 일컬은 단어라고 한다. 그 후 4차 기술혁명시대를 대비하는 말로 쓰였다. IT 등 신기술의 확대에 따른 정책변화를 준비하는 용어였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은 경제용어라기보다, 전반적인 우리 일상의 변화와 코로나19 이후(post corona)를 상상하는 말이 되고 있다.


누구를 기준으로 한 비대면인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기본값인 새 기준(New Normal)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문제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 또한 코로나19 이전처럼 비장애인을 기본 값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등 부적절한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홈리스 등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보도에서 나왔듯이, 재난방송조차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을 고려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방송과 자막은 확대되고 있으나, 등장인물의 동작과 표정 등 대사로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음성으로 해설하는 화면해설서비스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정적 자극을 주면 생활이나 상태가 악화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책은 현재 거의 없다. 단지 온라인 접근성만 부족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코로나19 초기, 장애인의 안전을 위한 조치는 전무했다. 장애인생활시설, 이른바 장애인수용시설에 있던 사람들을 코호트 격리하였다. 진단과 치료를 하지 않은 채 장애인을 가두었다. 이는 몇몇 노인요양시설에서도 실시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장애인과 노인들은 집단감염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진단과 치료에서 대면은 불가피하다. 대면을 최소화할 수는 있지만 제로(zero)로 만들 수는 없다.
자가격리도 마찬가지다. 활동지원사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에게 추가적인 활동지원 없이 자가격리만을 권고하는 것은 죽음의 선고일 수밖에 없다. 중증장애인은 그냥 먹지도,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살라는 것인데 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주거시설이 비위생적이고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자가격리는 과연 안전한 조치일까. 아니, 누구의 안전을 위한 것일까 묻게 된다. 장애인과 노인, 홈리스를 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인 셈이다. 장애인과 노인, 홈리스 등 가난한 사람들을 남겨두고, 그 외 사람들만 감염으로부터 안전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공공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이 문을 닫았다. 장애인접근권이 부족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갈 곳을 잃었다. 아니,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이나 장애인들의 인간관계가 협소한 상황에서 복지관 등의 폐쇄는 혼자서 생활하는 것, 사회적 고립의 강화를 뜻하기에 심각한 일이다. 이는 노인들에게도 해당한다. 많은 빈곤노인들이 노인회관에서 더위를 식히고 어울릴 수 있었는데, 해당 공간이 문을 닫자 더위로 인한 건강악화와 고립감과 우울감 강화라는 2차적 문제를 낳았다.


대면 없는 비대면사회는 불가능
이렇듯 동전의 양면처럼 비대면사회를 잘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대면활동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대면 없는 비대면사회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비대면사회를 맞이해서 준비해야 할 것은 ‘대면을 잘 하기 위한 방법’의 모색일 것이다. 잘 구축된 대면활동이 안전한 비대면사회를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온라인이 많은 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먹고 마시고 대화하고 배설하며 움직이는, 그러한 물질적인 것을 기반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두가 안전하게 의식주를 향유할 수 있으려면 대면 없는 비대면은 불가능하며, 몸노동 없는 디지털노동이나 인지노동은 불가능하다. 기계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기에, 누군가는 물건을 생산하고 배달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노동에 대한 명령과 지시를 할 수 있지만, 실행은 사람이 해야 한다. 물류센터나 콜센터 노동자들의 집단감염사태는 대면노동, 몸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중증장애인이 먹을 것을 먹을 수 있도록 누군가 보조해 줘야 한다. 돌봄노동이든 생산노동이든 사람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계가 보조할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코로나시대에 노동존중은 더 요구된다. 아무리 소비를 모바일이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할지라도, 소비를 하려면 물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세상은 노동 없이, 사람 없이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노동에 힘입어 일상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생산 없는 소비는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이후 성장과 생산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갈지라도 노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배달노동자들의 업무는 증가했다.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서 조달하던 것을, 이제는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경우가 늘어나 물품이 많아지고 있다. 생산이 멈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의 조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많은 몸노동을 기계와 스마트기술로 대체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인원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노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더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고금지나 생계보조를 국가정책으로 세울 것을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유다. 노동존중은 우리 모두의 안전과 일상의 영위를 위한 일이다.
또한 비대면사회에서 대면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책이 우선적으로 수립돼야 한다. 중증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부적절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그 사회는 차별사회일 뿐이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 누구도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생존의 불안함에 시달리도록 남겨둬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중증장애인의 활동지원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고, 활동지원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교육과 임금을 제대로 줘야 한다.
스페인처럼 홈리스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빈 건물들을 국가가 임대해서 제공하는 방식이 적극 도입돼야 한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방문간호사제도 어떻게 안전하게 할 수 있을지, 노인 같은 웹접근권이 약한 사람들의 사회적 교류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적극 모색돼야 한다. 홈리스들도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주거방안이 나와야 한다. 장애인시설이나 노인요양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탈시설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공공돌봄서비스가 강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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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빠진 뉴노멀?
결국 인권 없는 뉴노멀은 코로나 이후 시대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니, 우리는 차별을 강화하는 사회가 대안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코로나19로 더 심해진 불평등을 바로 잡으려면, 사회적 약자와 배제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는 침몰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라면, 불평등은 몇몇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불안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또한 코로나19가 깨닫게 해준 하나는, 인간은 먹고 배설하고 움직이는 물질적 존재이자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의존적이고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잘 의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잘 연결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집단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종로2가 탑골공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늘어선 노인들을 보아야 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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