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될 권리 > 대학생 기자단


연결될 권리

서로의 세계를 지탱하는 숲을 만들자

본문

글.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어렸을 때 학교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 많이 한 놀이 중 하나가 ‘모래깃발 떨어뜨리기’게임이다. 모래성을 쌓고 가운데 깃발을 꽂아놓고는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모래를 한 움큼씩 걷어내다가 깃발을 떨어뜨린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어렸을 때는 이 게임이 ‘균형 찾기’ 게임이구나 싶었다. 깃발이 서 있으려면 지탱하고 있는 모래의 규모가 사방이 골고루 비슷하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한쪽에 쏠려있으면 와르르 무너진다. 어떤 한 사람에게 일에서의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건강을 잃으면 그 재능을 발휘하기 어렵기도 하고, 일을 잘해도 인간관계가 나쁘면 일이 재미없어져 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깃발 떨어뜨리기 게임을 다르게 만들어 보고 싶다. 깃발을 지탱할 모래가 많지 않아도 깃발이 꺾이지 않을 수 있다면, 꺾이지 않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는 게임이라면 좀 더 의미 있고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나 일자리를 잃어가는 걸 보면서 더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소중하게 지켜가고 싶은 삶의 가치나 소중한 것들이 쉽게 무너지는 상황을 많이 보아와서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에게 자원이 부족해도 주변에서 자원을 연결하고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삶이 무너지고 삶의 원칙이 무너지지는 않지 않을까.
 
 
연결의 힘
나는 코로나19 초기 연결의 힘을 보았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고 있으나, 최소한의 방역도구인 마스크와 손소독제도 없이 갇혀서 지내야 했던 중증장애인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지역에 있는 인권활동가들, 시민들이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모으고 나눠주었던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쉰 적이 있다.
그뿐이 아니었다. ‘코로나19와 위험불평등’이란 주제로 장애인·이주민·노숙인·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나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것은 정부의 안전이나 돌봄서비스 부재나 의료공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각 지역의 활동가들이 헌신적으로 발로 뛰며 돌아다녔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의 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겨우 수술할 병원이나 활동지원서비스의 조력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의 사회안전시스템, 돌봄시스템의 부족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서, 나는 조력해줄 수 있는 인권단체를 아는 것도 인적네트워크라면 네트워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것이 연결의 힘이라는 생각이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어떤 사회적 지원도 없이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사람들이 장애인권단체와 이주인권단체 등을 만난 것이 개인의 운처럼 되어버린 현실이 한편으로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연결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자원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변과 어떻게든 다양하게 연결된다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연결이란 마치 숲의 생태계 원리와 비슷하다. 얼마 전 방송프로그램과 한겨레신문에서 본 기사 내용에 의하면, ‘연결된다면 숲은 죽어가는 나무도 살린다. 숲에 쓰러져 썩은 밑동 한 부분, 둥치 가장자리의 상처가 아물어 가는 걸 교수 한 명이 발견한다. 그는 시배스천 루징거 뉴질랜드 오클랜드공대 생태학 교수로 나무는 잎이 있어야 광합성을 할 수 있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이 잎의 기공으로 날아가는 증산작용을 해야 살아남는데 어찌 된 일인가 연구해봤단다.
그의 연구로 썩어가던 둥치와 이웃에 있던 카우리나무가 땅밑의 뿌리로 연결되어 서로 물과 양분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는 나무가 개별적인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숲 생태계 자체가 (서로 연결된) ‘초유기체’임을 시사한다”라고 했다. 게다가 이러한 연결이 둥치만 남은 나무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나무에게도 뿌리가 확장되는 효과를 가져와, 비탈에서도 굳건히 서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고 가뭄 때에도 물을 많이 확보해둘 수 있다. 
인간이 사는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개별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타인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유기체다. 숲처럼 뿌리로 연결해서 서로의 양분들을 나누어 가진다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면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연결될 권리
그러나 연결이란 쉽지 않다. 연결할 곳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고립감과 무력감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고립과 일상생활의 파괴, 생활고 등으로 우울증이 심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코로나 블루(우울)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특히 20대 여성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국정감사 기간에 나온 자료에 의하면, 여성의 자살시도자는 8,103명에서 9,355명으로 같은 기간 대비 15% 증가하였고, 남성은 5,671명에서 5,735명으로 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경우 2,951명에서 4,213명으로 같은 기간  43% 증가해 가장 많은 증가율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여성의 자살시도자는 8,103명에서 9,355명으로 같은 기간 대비 15% 증가하였고, 남성은 5,671명에서 5,735명으로 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시도자만이 아니라 자살자도 20대가 많았다. ‘2019~2020년 상반기까지 자살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자 수가 296명으로 지난해 대비 43%나 급증했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은 건 20대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 때문일 것이다. 기업이 경기 불황이면 가장 먼저 일터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20대 여성들이 다른 세대보다 더 불안한 일자리와 비정규직 일자리에 있는데다, 낮은 임금으로 모아둔 돈이 없어 위기를 견딜 만한 사회경제적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자살했던 승무원의 이야기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그녀는 항공사가 무급휴직으로 오래 있으면서, 최근 빚을 내 구했던 전세자금 원리금 상환도 힘들어했다고 한다. 
만약 그들에게 위기의 순간을 버텨낼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을 할 제도나 사람이 있었다면, 혼자 빚을 어떻게 갚나 끙끙대다가 절망하며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사회적 자원과 주변 사람들과 연결될 권리가 보장된다면, 누구든 자신의 삶과 자신이 세웠던 삶의 가치와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신체적 취약성만이 아니라 사회적 취약성이 생존을 위협한다. 나아가 물질적인 취약성만이 아니라, 관계적 취약성이 생존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이 말해주듯, 위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혼자서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연결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인권의 집단적 성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연결될 권리가 실현되려면, 많은 사람들의 모일 권리와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개인들 간의 사회적 책무가 보장되어야 한다. 즉 연결될 권리는 국가에게 요구하는 권리인 동시에, 이 세계에 속한 사람들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각자가 동료시민들과 연결되겠다는, 그를 통해 타인과 자신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숲의 생태계를 보며 미래를 그려본다. 아니, 코로나19의 경험이 우리에게 건네는 미래는 이것이 아닐까. 서로의 세계를 지탱하는 숲을 만들자. 서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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