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시가 없어진다고요? > 대학생 기자단


오사카시가 없어진다고요?

11월 1일 실시된 오사카시 폐지에 대한 주민투표

본문

사진.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엄마, 석간 몇 시쯤 배달돼요?” “4시 반쯤일걸?”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 젖지 않게 미리 들여다 놔줘요!”
웬일이래, 신문이라고 제대로 읽는 걸 못 봤는데, 일부러 들여놔 달라는 부탁까지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큰아들과 나눈 대화. 우리 집에서 조간과 석간 빠짐없이 꼼꼼하게 읽는 건 남편뿐이고 아들들이 신문을 읽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데, 그 아들이 일일이 신문을 챙겨 달라고 부탁까지 하니 무슨 일이 있나 싶더라고요.
저녁 무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귀가한 아들. 아참, 신문을 꺼내 오는 걸 잊어버렸는데…. “석간 들여놓는 거 잊어버렸어, 비는 안 왔으니까.” 그 말을 듣고 제 손으로 신문을 꺼내 온 아들, 제 옆에 슬쩍 던져 놓고는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네요. 도대체 무슨 기사가 실려 있길래 그래? 석간을 펴들고 보니 11월 1일 실시 될 오사카시 폐지 주민투표, “외국 국적 주민 투표권 없다”가 머리기사로 나와 있더군요.
 
 
↑ 본문에 언급된 한 신문의 기사 모습
 
 
한국과 일본은 지자체의 행정 구분이 다르니까 설명이 좀 어렵지만,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한국의 서울특별시·광역시·도시군면읍에 대해 일본에는 47도부현으로 나누어져요. 수도인 도쿄도·북해도·오사카부·교토부 그밖에 43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각각의 지자체 안에 시정촌이라는 작은 단위의 지역들로 나누어져 있어요.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인구가 50만 이상의 대도시는 독자적인 행정권과 별도의 예산을 인정하는 ‘정령지정도시’라는 지자체 단위가 따로 있고 현재 20개의 이른다고 해요. 대표적으로 예를 들면 교토부에는 거의 비슷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교토시가 있고, 오사카부에도 마찬가지로 오사카시가 있어서 행정 계획이 중복되고 권한이나 주도권이 충돌된다는 문제가 꽤 오래전부터 지적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오사카 지역에 약 10년 전부터 우익성향이 아주 강한 지역 정치 세력이 부상해, 오사카 단독으로라도 행정 제도를 변혁시키자는 주장을 해왔어요. 결국 오사카시를 없애고 현재의 구를 재편하여 도쿄처럼 특별구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주민투표안이 제정되고, 그에 대한 찬반 투표가 실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과는 투표율에 관계 없이,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쪽으로 결정된다고 하고요.
오사카시 인구 약 280만 명의 5%에 달하는 15만의 외국인 주민이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주민들에게는 그 결정에 참여할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고 있어요. 주민자치를 일컬으면서도, 외국인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를 다룬 기사가 아사히신문 1면에 실린 거죠.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초비상 사태 속에서 역사관이나 한일문제에 있어서도 일본 국수적인 경향이 강한 정당에 의해 주도되는 이 주민투표에 대해 저 자신도 상당한 거부감과 배제당하고 있다는 소외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기에, 좀 더 빨리 다루지 왜 이제야 거론되는가 늦은 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기사를 읽으려고 자세히 보자니, 작게 실려 있는 사진 속 얼굴이 눈에 익네요. 들여다보니 사진 옆에 ‘김가락(22세)’이라는 아들 이름이 나와 있지 않겠어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4대째나 걸쳐 오사카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주민투표권이 없다니 말이 안 되지 않아요? 마이널리티(소수)인 외국인 주민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기 쉽건만, 언제까지나 커다란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으니….”
이렇게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길래 그랬던 거구나!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집에서 보는 것과는 한참달리 제법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기사를 읽으니 어느새 성큼 커버린 아들, 일일이 말로 주고받지는 않아도 키도 크고, 머리도 크고, 생각도 커버렸구나 싶더군요. 조국에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살아봤던 저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태어난 나라이긴 하지만 조국이 아니기에 겪어내야 할 서러움이 많을 아들이 당사자로서 안고 살아가야 할 짐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졌고요.
오사카시 폐지에 대한 주민투표의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반대’가 되었습니다. 반대하고 있던 저와 우리 가족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잘못하면 재일동포 주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저희 동네의 이름이 없어질 뻔했는데, 일단은 2021년도에도 지금 주소를 그대로 쓸 수 있게 됐어요.
뜻하지 않게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적잖은 충격과 혼란 속에 많은 변화를 감당하며 지내야 했던 2020년, 남은 달력 마지막 한 장과 더불어 그 불안과 곤란이 끝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바람은 당분간 무리일 것 같죠? 하지만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으리라는 말을 되새기며 좀 더 인내심을 시험해 봐야 할 듯해요.
난데없지만 18세기 중반에 활동한 이토 자쿠추(伊藤若冲)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의 작품 중 ‘봉황도’ 그림이 왠지 밝고 화사한 기분을 선사하는 것 같기에 마치는 인사로 곁들여 봅니다. 침침한 어둠이 빨리 걷히고 저마다의 빛깔로 환히 빛나는 날을 그리면서요. 
 
 
 
작성자변미양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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