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혐오 범죄 > 대학생 기자단


백색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혐오 범죄

장애계 국가별로 본 CRPD 선택의정서 활용사례: ① 탄자니아

본문

글. 김소영/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국제협력 담당





들어가기 전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의 선택의정서는 당사국이 CRPD에서 천명하는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위반하였을 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권리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개인통보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비준 당시 선택의정서에 대해서, 이미 장애인이 차별을 받았을 때 구제 받을 수 있는 제도와 법이 국내에 마련되어 있다는 핑계로,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택의정서 비준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통한 권리구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장애인차별금지법의 ‘차별의 정당한 사유’, 제한적인 국가인권위원회 권한과 권리침해에 대한 배상제도 부재 등)이어서, 장애계는 개인통보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지금까지 선택의정서의 비준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다른 나라의 장애인당사자들은 개인통보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에 어떤 권고를 내렸는지, 그리고 권고를 받은 당사국의 조치는 장애인의 권리구제에 실효적이었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신으로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는 알비노들
첫 번째로 본 개인통보제도의 사례는 탄자니아에 백색증을 갖고 있는 Y라는 사람의 진정이다. Y는 당사국 탄자니아가 CRPD의 제1조(목적)를 비롯하여 제7조(장애아동), 제8조(인식개선), 제14조(신체의 자유), 제15조(고문 또는 잔혹한,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로부터의 자유), 제16조(착취, 폭력 및 학대로부터의 자유), 제24조(교육) 등을 위반하였다고 권리구제를 요청하였다.
알비노(Albino, 백색증을 가진 사람)는 신체의 일부 또는 전체에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현상인데, 유독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수의 사람들(1,429명 중 1명)이 백색증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수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탄자니아의 알비노들은 오랜 세월 사회적 박해에 시달려 왔다. 급기야 백색증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죽이는 관행이 자행되기도 했었는데, 알비노는 가족 전체에 수치와 불운을 가져온다고 믿었기에 소위 '잔인한 자비'를 선택했던 것이다. 알비노의 인권옹호, 캠페인, 교육, 필요물품 지원 등의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Under The Same Sun(UTSS)은 탄자니아 알비노들의 처참한 생존 상황과 열악한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백색증 아이를 낳은 여성은 유전적 질환이라는 낙인 때문에 남편에게 버림받는다. 백색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방임되거나 유기, 심하면 살해당하기도 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부모들은 아이를 숨기기 위해 고립시킨다. 학교에 가더라도 낮은 시력으로 중간에 낙오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직장을 갖기 쉽지 않고, 결국 빈곤에 빠진다.’
더 큰 문제는 알비노의 머리카락이나 신체 일부가 부와 건강,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미신 때문에, 많은 알비노가 잔혹한 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탄자니아에는 알비노의 신체부위를 거래하는 시장도 형성되어 있으며, 손발 4개, 귀, 혀, 코 등을 세트로 하여 무려 75,000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Y도 태어나자마자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국제 NGO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지만, 알비노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날로 심해져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그럼에도 범죄를 피할 수 없었는데, 11살에는 머리카락을 노리는 사람에 의해 강제로 머리카락이 잘렸으며, 12살에는 오른 손가락 3개와 왼팔이 잘렸다. 역시 NGO의 도움으로 치료를 하고 학교 다니기를 다시 시도하였지만, 교육과정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여전히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개인진정은 동의하에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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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비니즘(Albinism, 백색증)은 멜라닌 색소의 결핍으로 신체의 전신 또는 일부가 색색이 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 해당되는 증상으로, 우리가 아는 백사(白蛇), 백호(白虎) 등이 모두 알비니즘의 범주 안에 속한다. 


그럼에도 탄자니아 당국의 지원은 없었다
이 과정에서 탄자니아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는 것이 Y의 주장이다. 정부는 Y의 양육을 돕기 위해 원가정을 지원하지도 않았고, 팔이 잘린 Y를 위한 의료적 재활지원도 전혀 없었다.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도 이뤄지지 않았고, Y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관련하여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보고된 72명의 알비노 살인자 중 5명만이 처벌을 받았는데, 사실상 범죄를 묵인하는 당사국의 조처가 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Y는 탄자니아 정부가 CRPD에서 천명하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 보장, 증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몇 차례 탄자니아 정부와 Y의 의견을 서면으로 확인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당사국의 CRPD 위반을 인정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고통 받은 피해에 대해 배상을 포함하여 효과적으로 구제하고,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공정하고 신속한, 효과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범죄자를 기소한다.
-위원회의 권고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배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
-백색증을 가진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를 검토하고 채택한다.
-신체 일부를 절단해 매매하는 행위를 조사하고 국내 제도를 마련하여 법적 처벌한다.
-지속적인 인식개선 캠페인을 개발하고 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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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에서 범죄피해를 당한 백색증 아동. 출처 sbs


국내 이슈, 국제사회 이슈화에 일조
탄자니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알비노에 대한 범죄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문제였다. 당국에서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자, 당사자들은 국제적 인권문제로 이슈화시켰고, 현재는 CRPD 개인진정제도나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 등 국제인권기구의 감시와 권고를 받는 이슈가 되었다. 유엔 등의 경고가 잇따르자, 2015년 자카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은 “알비노 사람들에 관한 미신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며, “이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알비노 당사자를 장애인 담당 차관으로 임명하고, 6월13일 국제 백색증의 날을 탄자니아 백색증의 날로 지정하여 알비노의 인식제고를 위해 정부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탄자니아의 알비노 사례와 같이 CRPD 선택의정서의 제도를 활용하면, 당사자나 NGO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이슈를 국제 이슈로 확대할 수 있다. 국제기구의 정기적인 검토와 권고는 정치적이거나 선별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인권 기반의 해결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에,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다.
일상적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국내법에 의존한 장애인당사자의 권리구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CRPD 선택의정서의 비준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유엔의 개인통보제도는 당사자의 권리 구제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그 마지막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 또한 차별이 아닐까?

작성자최고관리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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