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조 정치 및 공적생활에 참여할 권리 > 대학생 기자단


제29조 정치 및 공적생활에 참여할 권리

장애계 국가별로 본 CRPD 선택의정서 활용사례

본문

​글.김소영/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국제협력 담당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장애를 벌하다

지난달 대한민국 헌번재판소는 점자형 선거공보물의면수 제한과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 제공을 방송사 재량으로 규정하는 「공직선거법」의 제65조, 제70조 등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두 가지 사항에 대해 공통적으로 ‘과다한 비용 부담에 대한 고려’와 ‘이미 다양한 수단(보이스아이, 문자 등)으로 선거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방식이 제공되고 있음’을 근거로,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선거정보가 제공되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는 헌법에 어긋난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점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제한에 대한 헌재의 판결은 2014년, 2016년에도 동일했다. 헌법재판소는 법의 이름으로 한결같이 장애를 벌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후보자와 정당에 ‘장애인에게 후보자 및 정당에 관한 정보를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전달할 의무’를 명확히 부과하고 있다. 또한 점자와 수어는 각각 「점자법」과 「한국수화언어법」을 통해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점자법」에서는 제4조를 통해 ‘점자가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고, 국가를 포함한 공공기관 등은 점자의 사용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수화언어법」에서는 수어를 국어와 동등하게 언어로 인정하며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하고 한국수어를 통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면, 우리나라 법조계의 후진적인 장애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9조(정치 및 공적생활에 참여)의 권리 침해당한 호주인 A

선거와 관련된 법원의 장애인 권리침해 사례는 호주에서도 있었다. 호주에 사는 이번 관련 사건의 진정인은 뇌병변장애인이었는데, 그는 2013년 9월 7일에 진행되었던 호주 의회선거를 앞두고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투표 방법을 알아보았다. 호주의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Electoral Act)에 따라 장애인의 투표 접근성 향상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전자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진정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투표에 참여하길 원했고, 동등한 조건에는 ‘비밀투표’의 원칙도 포함되었다. 투표용지에 표기하고 투표용지를 접어 투표함에 넣는 일련의 행동에 어려움이 있던 진정인은 전자투표를 신청하고 싶었지만, 전자투표는 시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라며 거절당했다.

진정인은 하는 수 없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했고, 선거법 234조에 따라 투표소에 있는 투표소 관리인에게 투표를 보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관리인은 진정인의 요구를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관리자는 ‘함께 온 활동보조인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제안하였지만, 진정인은 활동보조인에게 투표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진정인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인 투표소 관리인은 진정인에게 ‘활동보조가 도와주면 되지 않느냐’고 다시 한번 불평을 토로하며 겨우 진정인의 투표를 보조하였다.

진정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효과적인 구제조치가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호주에도 「장애차별금지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이나 「차별금지법(AntiDiscrimination Act)」이 있지만, 선거법에서 시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가능하게 규정해두었고, 유권자가 투표보조인을 지정하는 데 ‘실패(fail)’한 경우에만 투표소 관리인이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진정인은 당사국이 장애인의 ‘투표절차, 시설 및 용구가 적절하고, 접근가능하며, 이해와 사용이 용이하도록 보장할 것과, 적절한 경우 보조기술 및 새로운 기술의 사용을 촉진하여, 장애인이 위협당하지 아니하고 선거 및 국민 투표에서 비밀투표를 할 권리’ 등을 보장하지 않았다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제29조(정치)와 제4조(일반의무), 제5조(비차별), 제9조(접근권)를 위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당사국의 주장 ‘과도한 비용부담’

이에 당사국인 호주는 진정인의 주장에 반박하는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호주는 이미 선거법을 통해 장애인의 투표소 접근권을 향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규정하고 있으며, 투표를 보조한 자가 장애인의 지인이던 투표 관리인이던 호주 당국이나 정치인들에게는 비밀이 유지되기 때문에 비밀투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장애인의 투표를 촉진하기 위해 반드시 적절한 보조기술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는지는 당사국의 권한이라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당사국은 접근권에 대해 완전한 접근성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점진적으로 달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투표를 모든 장애인에게 확대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비용이 발생하여 이를 차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과도한 비용부담’, 접근성 보장 의무의 변명 될 수 없어

이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당사국의 견해에 주목하면서도, 협약 제29조 정치 및 공적생활에 참여와 제9조 접근권 등을 침해한 차별이라고 결정하였다. 제29조에 따라 당사국은 투표권을 포함하여 장애인이 효과적이고 완전하게 정치 및 공적생활에 참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장애인을 위해 제공되는 여러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한정된 자원과 과도한 비용부담을 고려하여 접근권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당사국의 주장에 대해서는 접근성 이행의 의무는 무조건적이며, 접근성 제공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이유가 과도한 부담이라는 당사국의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조사도 없었다는 점을 꼬집었다. 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협약 제29조, 제5조, 제4조와 제9조 등을 위반한 사안이라고 판결하며,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ㅇ 법적 비용 보상을 포함하여 효과적인 구제를 제공할 것


ㅇ 장애인이 비밀투표의 원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투표 절차와 시설에 대한 접근을 보장할 것


ㅇ 모든 대중이 본 견해를 확인하도록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배포할 것


ㅇ 장애의 유형과 관계없이 필요한 경우 누구나 전자투표 이용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 할 것


ㅇ 투표 절차, 시설, 기구를 적절하고 접근 가능하고 쉽게 제공하여 협약 제29조에서 천명하듯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며, 보조기술의 사용으로 비밀투표를 할 수 있도록 보호할 것


ㅇ 유권자가 투표를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투표보조인은 해당 투표의 비밀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지게 하기 위해 선거법을 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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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법원의 인식 바꾸는 기준점이 되어야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각종 제도와, 이를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법원의 판결이 반복해서 이뤄지고 있다. 물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제2조(정의)에서 ‘정당한 편의제공’을 ‘과도하거나 부당한 부담을 지우지 아니하는 필요하고 적절한 개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비용이 과도하고 부당할 정도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연구조사나 실제적인 증거도 없이 ‘과도한 부담’을 차별을 정당화하는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는 법원의 판결로 적절하지 않다.

설사 과도한 부담의 명백한 근거가 있다고 해도, 국민의 권리 희생을 강요할 만큼의 과도하고 부당한 비용이라는 사실을 대체 누가 정의한단 말인가. 지하철 단차 사건과 관련한 서울동부지법의 판결부터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우리나라 법원의 장애감수성은 답보상태이다. 오히려 ‘사람의 권리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국제적 인권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국내 장애감수성은 퇴보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선택의정서 비준과 개인진정 및 조사제도의 실효적인 이행을 통해 실현해야 할 우리나라 장애인의 권리구제를 위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제 이 쌓여있는 과제 해결을 위한 출발선 위에 우리가 서 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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