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걸음걸이와 환대의 공간 > 지난 칼럼


다채로운 걸음걸이와 환대의 공간

언어와 의사소통의 장애

본문

글. 김화수/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 교수
 
 
텅빈 공간,
그 공간 바라보다
너를 발견했다
힘들었지, 손을 내민다
잡은 손 비어있는 공간에서
시작된 빛은
꿈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공기 때문에
눈부시게 가벼워졌다
공간이 점점 확대되어
큰 하늘 위로 솟아올랐을 때
내가 위로하던 너는
바로 나라는 걸 깨달았다
 
‘언어로 집짓기 2’ 전문,
<언어로 집짓기>(김화수 제2시집), 푸른문학사
 
 
다양한 삶의 흔적 : 장애와 문화, 언어
Phillip Noyce가 감독한 영화인 ‘더 기버 : 기억전달자(The Giver)(2014)’는 Lois Lowry 원작의 작품이다. 그곳에는 차이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가 등장한다. 그 세계에서 공포, 고통, 시기심, 증오와 같이 행복과 거리가 있는 말은 ‘단어’가 아니라 ‘소리’로만 존재한다. 긍정적인 상태가 지속되는 세상, 어떤 누구도 아픔이 없는 세상, 과거의 차별, 고통, 가난, 전쟁이 없는 이러한 세상은 어떻게 보면 슬프거나 어려움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처럼 보이지만, 영화 전반의 기조는 회색빛으로 가득하다.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같은 시간의 배열 흐름 가운데, 일련의 규칙 안에서 커뮤니티의 직위 수여식에서 각자의 임무를 부여받고 세상의 조화를 위해 살아간다. 기억, 감정, 선택의 자유 없이 모두가 행복하고 완벽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구성원들의 삶이다. 늘 같은 상태, 늘 평화로운 일상은 사실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졌던 것임을 알게 된 주인공은 커뮤니티를 탈출, 모두에게 기억을 전달하기로 한다. 아름다운 웃음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통해 큰 한계점을 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몇 년 전, 회장 일을 맡고 있는 ‘국제다문화의사소통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게 되어 바로 이 영화를 소개했었다. 주제는 ‘장애와 문화’였고, 장애를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와 삶의 방식을 가감 없이 꺼내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영화의 대사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각자의 아련한 흔적, 메아리, 희미하고 아득한 속삭임”으로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타인, 그리고 자연과 사물을 포함하는 모든 대상을 환대하는 공간이 ‘나’ 그리고 ‘우리’ 안에 내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채로운 삶의 걸음걸이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앞서 소개한 영화와 같은 장르인 SF 소설, 김초엽(2019)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떠오른다. 허블출판사 출간의 소설집으로 ‘2019 알라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나도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소개했던 책. 인아영 문학평론가는 ‘아름다운 존재들의 제자리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제공했고, 그 문장들이 좋아 노트에 적어놓았었다. 평론가는 김초엽의 글이 우리에게 주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유토피아란 신체적인 결함이 말끔하게 소거된 세상도, 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을 격리해놓은 세상도 아닐지 모른다고. 오히려 장애와 더불어 차별을, 사랑과 더불어 배제를, 완벽함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붙잡고 고민하는 세상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폐기해야 하는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개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타자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불가능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놀라워하고 또 아름다워할 수 있다. 타자에게 느끼는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루미’에게서, 그것을 나름의 언어로 번역하여 손녀에게 들려주는 ‘희진’에게서, 그리고 그 문장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는 ‘나’에게서, 이해 불가능성이 만들어내는 어떤 이해 가능성을 우리는 본다. ”라고.
 
 
보이는 대로, 나는 나
언어치료 시간에 ‘분류하기’를 가르칠 때 느끼는 거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묶일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대상자에게 과일과 채소의 차이를 알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사과’, ‘바나나’, ‘딸기’, ‘자두’, ‘고추’ 그림을 놓고 이들 중 다른 것 하나를 고르라는 문제를 제시한다. 과일이 아니고 채소인 ‘고추’ 그림 선택하기를 기대하지만, ‘바나나’를 고르는 대상자가 있다. 왜냐고 물으면 “노란색이니까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제시한 모든 그림에서 다른 것은 빨강인데 바나나만 노란색이니 그의 대답이 틀린 건 아니다. 그와 나의 분류 기준이 달랐을 뿐. 같은 단어에 대해 글씨로 제시된 문제의 예를 보자. 사과, 바나나, 딸기, 자두, 고추 중 그가 알았으면 하는 과일과 채소의 다름을 확인하기. 즉 ‘고추’를 고르지 않고 ‘바나나’를 고른 다른 대상자에게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모두 두 글자인데 바나나만 세 글자잖아요.”
그렇다. 단어와 사물들에서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을 터. ‘너’와 ‘나’는 이렇게 묶이기도 하고 또 저렇게 묶이기도 한다. 또한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나’라는 범주는 다양한 차원의 기준에 따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었다가, 빨강머리 앤이 되었다가, 작은 아씨들의 조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다수자이지만 외국에 나가서는 소수자가 된다.
앓고 있는 병명으로 묶이는 특정 환자가 되기도 하고, 특정 나이대로 묶이는 연령별 인구 중 하나가 되기도 하며, 성별의 하나로 분류되어 속하기도 한다. 사회적 역할로서 가족의 일원 중 하나, 직업의 이름 중 하나, 커뮤니티의 임무 중 하나인 이름을 갖기도 한다. 이 모든 분류의 기준 안에서 다른 ‘나’가 존재하지만 언제나 나는 ‘나’다.
 
 
 
 
 
 
환대, 의사소통
도정일 교수는 말한다. “교양의 최종 목표는 환대하는 인간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환대는 사람만 잘 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필요한 삶의 태도를 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꽃 한 송이, 바람소리, 날아가는 새의 웃음소리 등 모든 것이 가슴을 드나들고 열린 정신으로 대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사회에서 환대의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높고 순수하고 탁월하게 사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누군가와 어떤 역할로든 다르게 마주쳐야 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로 받아들여달라고 말하기 전에 그와 나의 관계에서 그와 나의 분류 기준이 다름을 알아야 하며, 그의 단어와 나의 단어의 뜻이 상이할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
자유롭고 풍부한 의사소통이 그와 나 사이에 일어나야 한다. 내 안에서 나와의 의사소통을 풍요롭게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 즉 자신을 돌아보며 자그마한 자신의 흠결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사람,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마주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 모두가 한 명 한 명의 문화이며 그 문화에 대해 환대하는 사람,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작성자최고관리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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