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 《열 개의 눈》, 감각의 경계를 허무는 121일간의 여정
경상 소식 / 접근성을 감각과 존재의 문제로 새롭게 바라봐, 올해 9월 7일까지 전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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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각은 몇 개입니까?”
이 도발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전시가 지금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바로 장애·비장애 예술가들이 함께 꾸민 배리어프리 국제 기획전 《열 개의 눈》이다.
2025년 5월 3일(토)부터 9월 7일(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실 4 및 로비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는, ‘접근성(Accessibility)’을 단순한 물리적 편의가 아니라 감각과 존재의 문제로 접근한 새로운 시도다.
《열 개의 눈》은 미술관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2개년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로 기획된 국제 전시로, 전시 제목은 열 개의 손가락을 ‘눈’에 비유한 상징적 표현이다. 즉, 감각은 시각에 국한되지 않으며, 환경과 신체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전시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0명이 참여하여 회화, 드로잉, 조각, 퍼포먼스, 디자인, 아카이브, 벽화, 만화 등 총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는 김덕희, 김은설, 엄정순, 조영주, 홍보미, SEOM:(엄예슬·서하늬), 김채린, 라움콘(송지은·Q레이터), 라일라(이수연), 정연두, 미션잇(김병수), 다이앤 보르사토, 라파엘 드 그루트, 로버트 모리스,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 카르멘 파파리아, 피네건 샤논, 해미 클레멘세비츠 등이다.
전시 기획을 맡은 박한나 학예연구사는 “접근성을 신체의 고유한 감각작용으로 바라보며, 예술이란 언어를 통해 장애·비장애를 넘어 다양한 몸과 감각의 관계를 사유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세 가지 소주제로 구성된다.
첫째, 〈만 개의 감각〉은 주류 감각에서 벗어난 소외된 감각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인식을 시도한다.
둘째, 〈확장된 몸〉은 도구와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신체,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몸의 개념을 재정립한다.
셋째, 〈혼종체〉는 도나 해러웨이의 이론을 바탕으로 장애-비장애,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허물며 수평적 공존 가능성을 실험한다.
특히 형식적인 배리어프리를 넘어 실질적인 접근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이 이 전시의 핵심이다. 절반 이상의 작품이 촉각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전시장 내에는 공감각 체험을 위한 ‘감각 스테이션’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수어 해설, 오디오 가이드, 촉각 재료, 웹툰 형식의 전시 안내까지 마련돼, 누구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전시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전시는 단지 ‘장애인을 위한 배려’ 차원이 아니다. 감각의 위계를 해체하고, ‘다르게 느끼는 존재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는지 함께 사유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문화공간에서 접근성을 후순위로 둔다. 하지만 《열 개의 눈》은 분명히 말한다. “접근성은 보조가 아니라 전제”라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니어와 청년 모두가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 전시는 예술이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며, 감각의 민주화를 향한 진지한 응답이다.
이 전시를 손끝으로, 귀로, 몸 전체로 느껴보길 바란다. 익숙한 감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새로운 감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작성자글. 경상지역 배소혜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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