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축제, 제주의 작은 바다에서 시작된 무장애의 큰 가능성
도민기자단 / 제주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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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선 하얀모래 무장애 축제 모습 ⓒVISIT JEJU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8월 초, 제주의 한 바닷가에서는 조금 특별한 축제가 열렸다. 바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여름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표선 하얀모래 무장애 축제’다.
이번 축제는 제주 동부에 위치한 표선해수욕장에서 8월 2일부터 3일까지 이틀간 열렸으며, 제주에 있는 표선고등학교 인권동아리 IKKI(이끼)가 주최하고, 카카오 제주 임팩트 챌린지(JIC)가 후원한 시민 주도형 행사였다. 주최 측은 이 축제를 통해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제안을 던졌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대부분의 축제나 야외 행사는 여전히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시스템’에 기반해 있다. 보도턱 하나, 음향 안내 하나, 안내표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장벽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번 표선 하얀모래 축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구조’를 원칙으로 삼았다. 경쟁보다 참여에 집중한 느슨한 스포츠, 전문 서퍼와 보조 인력이 함께한 무장애 서핑 체험, 이끼 테라리움 만들기, 장애 이해 퀴즈와 이동권 캠페인 등 축제 전반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방향으로 구성됐다.
또한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제공되었으며, 사전 접수 없이 현장에서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실질적인 ‘접근성’까지 확보했다. 단지 ‘장애인을 위한 배려’에 머무르지 않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없이 ‘같은 조건에서 함께하는 축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무장애의 의미, 축제라는 언어로 풀어내다
‘무장애(Barrier-Free)’라는 개념은 이제 물리적 공간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구조와 문화의 차원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장애인을 수혜자나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함께하는 주체’로 존중받는 기획이야말로 진정한 무장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를 주최한 IKKI 인권동아리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중심이 된 소규모 단체다. 이들은 자발적인 기획과 지역 커뮤니티의 협력을 통해, 작지만 단단한 축제를 만들었다. 그 기획의 출발점은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군가가 튕겨 나가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우리가 만든 축제가, 누군가에게는 첫 서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장애가 불편하지 않았던 하루’였기를 바란다.” IKKI의 한 구성원이 전한 말이다.

△ 표선 하얀모래 무장애 축제 모습 ⓒVISIT JEJU
이 축제는 단지 ‘제주에서 열린 행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은 단체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비용과 규모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무장애 축제 모델이 가능하다는 사례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축제 후 참가자들이 남긴 의견 중에는 “서울에서도 이런 축제를 열어달라”, “내년에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싶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IKKI는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축제 구성안, 포스터 디자인, 안전 매뉴얼 등 기획 자료를 공개할 계획이며, 전국 각지의 단체들과 연대하여 무장애 축제의 지역 확산을 적극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두가 같은 해변 위에서 웃을 수 있도록 무장애는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의 약속이다. 표선의 바다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 이상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작은 물결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다음 여름, 또는 그보다 더 가까운 어느 날. 당신의 지역에서도 모두가 함께 걷는 축제가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성자글. 제주지역 강인철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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