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논쟁, 방향보다 중요한 것은 '준비된 전환'이다
도민기자단 / 제주소식
본문
최근 국회에서 추진 중인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정책 갈등을 넘어, 장애인의 삶의 방식 전반을 다시 묻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논의다. 법안의 취지가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확대하는 데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이 준비되지 않은 채 강행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우리는 이미 여러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제주도 제주시의 장애인 A거주시설 폐쇄의 건이다.
‘장애인 A거주시설’은 2021년 장애인학대 사건이 발생한 이후, 2023년 제주시로부터 3년의 경과기간을 둔 폐쇄명령을 받았다. 이에 따라 시설은 2026년 7월이면 공식적으로 문을 닫아야 한다. 폐쇄명령 당시 40여 명의 장애인이 있었으나, 2025년 현재에는 15명이 남아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남아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이 2026년이 되어도 ‘그곳에 그대로 있겠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중증·중복장애인으로, 가정으로 복귀하기도 어렵고, 지역사회 내의 다른 거주시설이나 자립생활주택으로 옮기기에도 현실적 제약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즉, 시설폐쇄는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삶을 옮길 곳은 어려운 상황이다. 돌봄 인력도, 주거공간도, 의료·응급지원 등의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 결국 시설을 나온다 한들, 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이 사례는 현장에서 제기되는 우려가 추상적 논리가 아닌, 현실적·구체적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많은 이가 ‘시설’이라는 단어 앞에서 일률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시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삶을 유지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생활 공간이다. 문제는 시설의 ‘존재’가 아니라 ‘운영 방식’과 문제 예방을 위한 국가 지원체계의 부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폐쇄해야 할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A거주시설 사례에서 보듯, 시설을 없앤다고 해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곧바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탈시설은 ‘집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 중인 탈시설 법안은 선택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장애인은 획일적인 집단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지역사회에서 더 잘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24시간 돌봄이 가능한 시설에서 더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한다. 그런데 법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설 거주 선택권을 점점 사라지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는 권리를 확대하려는 정책이 오히려 또 다른 권리침해가 될 위험이 크게 보인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한국의 사회복지 전달체계는 오랫동안 “전문 인력 부족, 인프라 미비, 지역 간 격차”라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시설만 앞세우는 것은 장애인들을 안전망 밖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장애인 A거주시설 폐쇄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도 같은 문제를 드러낸다. 시설을 나와야 하지만 갈 곳은 없고, 지역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지금, 지역사회는 중증장애인이 살아갈 만큼 준비되어 있는가?”
탈시설의 ‘방향’은 부정할 수 없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방향만으로는 정책이 완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과정, 구호가 아니라 준비, 폐쇄가 아니라 대안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원칙을 다시 확립해야 한다.
첫째, 탈시설은 시설폐쇄가 아니라 선택권 확대여야 한다.
둘째, 지역사회 인프라—주거, 돌봄, 의료, 응급대응—를 먼저 갖출 것.
셋째, 중증장애인도 지역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통합돌봄 기반을 마련할 것.
넷째, 시설폐쇄 시 반드시 개별 전환계획을 수립할 것.
둘째, 지역사회 인프라—주거, 돌봄, 의료, 응급대응—를 먼저 갖출 것.
셋째, 중증장애인도 지역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통합돌봄 기반을 마련할 것.
넷째, 시설폐쇄 시 반드시 개별 전환계획을 수립할 것.
앞서 언급한 시설의 사례처럼, ‘시설은 문을 닫는데 갈 곳이 없는’ 상황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 A거주시설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준비되지 않은 탈시설은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굴곡 많은 탈시설 논쟁 속에서도 하나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장애인을 정책의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 없으며, ‘제도적 기반’과 ‘현실적 전환’을 갖춘 탈시설만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진짜 정책이 될 수 있다.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준비된 전환 체계를 만들 때다.
작성자글. 제주지역 강인철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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