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투영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
도민기자단 / 전라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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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여 누군가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동네 마트 앞 버려진 박스 몇 개를 가져다 이어 붙여 만든 우리만의 포스터 판넬. 정자 건너편 기념품 가게에서 떼써서 빌린 세 개의 갓. (이것은 K팝 데몬헌터스의 유행을 업어보고자 나름 신경 쓴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한껏 오늘의 연극 버스킹을 기다렸던 마음이 뭍어나는 춘영씨의 이쁜 원피스에 설렘이 느껴진다.
오늘의 주제는 흥부와 놀부.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 책을 가지고, 대본과 누군가의 각색을 통해 만든 것이 아닌 그때그때 나오는 ‘나’의 생각으로 만드는 흥부와 놀부전.
때마침 각지에서 수학여행을 온 중‧고등학생들과 어르신들, 문화 연구단체, 외국인 등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날. 흥부와 놀부가 신명 나게 놀고 있는 이 정자 앞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앉고는 ‘얼쑤’, ‘배고파요~’, ‘쓱삭쓱삭’ 추임새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이고 형님, 배가 고파요~ ’
‘이 녀석! 너에게 줄 밥알은 단 한 개도 없다!!!’
‘보자 보자~ 나와 박을 썰어볼 마누라는 어디 갔는가~’
순간 연극 버스킹을 구경하던 분이 불쑥 나타나 같이 박을 써는 흉내를 내주신다.
하고 싶은 것도 꿈도 많은 발달장애인 김춘영 씨와 연극을 사랑하는 배우(배우는 사람 김건희 대표)가 만나 이루는 자기표현의 하모니는 꽤나 타지의 여행객들을 많이 마주하게 되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연극이라는 장르로 연주되었다. 발달장애인 김춘영이 아닌 연극 배우 김춘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투영하는 시간.
춘영 씨는 5살 딸을 두고 있는 엄마이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매일 부딪치며 느껴가고 여느 엄마들과 같이 잘하는 것보다 부족함이 못내 자녀에게 미안해지는. 춘영 씨에게 가장 고민되는 것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고 더 큰 고민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춘영 씨가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나’라는 사람이 ‘내가’ 선택한 곳에서 ‘내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 나가는 것.
그렇게 춘영 씨가 본인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여 함께한 연극을 전주 한옥마을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버스킹으로 멋지게 해낸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말하는, 내가 결정할 권리. 자기결정권이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를 의미한다.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의 근거로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전제된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자기결정권의 보장)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누구든지 발달장애인에게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항과 관련하여 충분한 정보와 의사결정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지 아니하고 그의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하여서는 아니 됨이 명시되어 있다. 헌법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를 행사하고 보장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뜻이다.
발달장애를 빼고 버스킹을 더하다.
춘영 씨의 남편은 춘영 씨와 같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사랑을 필두로 시작된 결혼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딸을 낳으며 이제야 한글을 배워가는 남편을 보며 애틋한 정이 생긴다고 한다. 얼마 전 3차 병원에서 춘영 씨의 딸은 발달지연 소견을 받았다. 모든 것이 본인의 탓만 같았던, 그리고 남편과 본인의 장애를 탓했던 시간 속에서 춘영 씨는 자신을 잃어가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어느 순간 입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는 것만이 답이 아닌 것을 알게 된 춘영 씨가 조용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저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저도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는 걸까요? 제가 하나씩 하나씩 도전하다 보면 우리 아이도 나아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저도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어느새 엄마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춘영 씨의 내딛음은 몇 년간 함께 해온 연극 수업에서 얻은 용기였다. 연극으로, 최소한 연극으로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나만의 이야기로 꺼내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춘영 씨는 본인의 인생에 본인이 가진 발달장애를 빼고 버스킹을 더했다.
춘영 씨가 자신의 자기결정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택한 연극은 발달장애인에게 자기표현, 자아개념, 자기효능감, 사회적 기술 향상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자기표현에서는 내용적, 음성적, 체언적 요소가 모두 향상된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삶을 인식하고 본인이 삶의 주체가 되어 타인과 소통하며 통합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춘영 씨의 앞날을 응원한다.
작성자글과 사진. 전라지역 이나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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