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두 개의 난로가 있다 > 도민 기자단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두 개의 난로가 있다

도민기자단 / 충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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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tGPT를 활용하여 제작
 
겨울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따뜻한 난로를 찾는다. 몸을 녹이는 난로처럼, 마음을 덥히는 것도 있다. 바로 ‘책’이다.
 
책은 누구에게나 온기를 나누어 주는 존재지만, 모두가 그 난로 앞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에게 독서와 문화 향유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다. 도서 접근성의 한계, 점자나 음성자료 부족, 이동의 어려움 등은 책 한 권을 펼치기까지 수많은 장벽이 된다.
 
그렇기에 ‘독서의 온기’를 나누는 일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선, 사회적 연대의 행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도서관의 문턱이 낮아질수록 지역 사회는 한층 더 따뜻해진다.
 
독서의 온기를 지키는 이는 도서관뿐만이 아니다.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또 다른 난로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그 온기를 스스로 피워내는 작가가 있다.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조승리 작가가 그중 한 사람이다. 조승리 작가는 후천성 시각장애인이지만, 점자 전자단말기를 사용하여 ‘손끝’으로 독자들과 소통한다. 일주일 중 4일만 글을 쓰며 금·토·일 3일은 안마사로 일한다. 그녀의 저서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나의 어린 어둠』등이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라갔다.
 
그녀의 소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열다섯 살 때부터 천천히 시력을 잃어가는 자전적인 내용으로 슈퍼를 하나 가려고 해도 자전거를 타고 꼬박 3km를 달려야 했던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또한, 장애를 가진 인물이 사회 속에서 겪는 불편과 모순, 그리고 그 안에서도 유머와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마사로 일하면서 만난 고객들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삶의 이면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 조승리 작가의 소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표지
 
특히, 2부 <영화처럼 엄마처럼>에서는 작가 어머니의 충청도 특유의 비아냥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기자 역시 충청도 시골에서 자라면서 밀고 당기는 충청도만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왜유? 측정기 한번 불어볼라고 양치도 하고 왔는디유?”라며 사실감 넘치는 글을 통해 조승리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언제나 열정적으로 삶을 기록하는 작가의 태도, 이것이 조 작가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이 책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편함을 현실의 일부로 끌어안으며, 삶의 굴곡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만든다. 조 작가는 작품 속에서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라고, 자신의 향기를 맡은 누군가가 위로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녀의 문장은 한 줄 한 줄이 난로의 불씨처럼 느리게 타오른다.
 
어린 시절 충청도의 작은 마을에서 느꼈던 고립감과 외로움, 그리고 그것을 글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장애인으로 살면서 ‘지랄 맞던 순간’을 비관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나, 그리고 우리의 축제로 승화시킴으로써 진정으로 즐겨내는 강인하게 웃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충청도 청주시의 네 개의 도서관이 국립장애인도서관의 ‘2025년 장애인 독서문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선정된 도서관은 오창호수도서관, 내수도서관, 오송도서관, 신율봉어린이도서관이다. 이번 사업은 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문화의 폭을 넓히고, 자기주도적인 독서를 통해 정보 격차를 해소하며 지역 사회의 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초부터 이들 도서관은 각각 국비 약 350만 원을 지원받아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작가 초청 강연회나 문화 예술 공연 참여, 지역 장애인 복지관과 함께 추가적인 독서 문화 향유 프로젝트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에 오창호수도서관은 청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클래식 동화음악극 ‘세계 악기 - 정글의 법칙’ 공연을 진행했다. 코끼리, 토끼 등의 정글의 동물로 변한 ‘예술램프 죠이’ 단원들의 바이올린을 비롯한 세계의 다양한 악기 연주와 흥미로운 동화 구연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찾아온 관람객은 직접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면서 단원들과 합주 공연을 진행하는 등 참여형 공연이 이어졌다. 이처럼 충청도 도서관에는 장애인 독서문화 활동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두 개의 난로가 있다. 하나는 조승리 작가처럼 스스로 불을 피워내는 작가와 책, 다른 하나는 지역 도서관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다. 이 두 난로가 함께 타오를 때, 지역 사회는 조금 더 오래, 그리고 더욱 따뜻할 것이다. 유난히 빠르고 쌀쌀하게 지나가는 올해 가을, 도서관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차별 없는 지역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작성자글. 충청지역 최은파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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