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투표 편의, 약속은 지켜졌나
도민기자단 / 충청소식
본문

▲2026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포스터(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면 대한민국 장애인 투표 유권자는 약 230만 명이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2023년 말 기준 등록 장애인 264만 명 가운데 18세 이상 선거권자를 추산한 수치로, 전체 유권자의 약 5%에 해당한다. 선관위는 이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10가지 투표 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완성은 법 조항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구나 실제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비로소 권리는 현실화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올해 2월 선관위와 방통위에 점자 선거공보 면수 제한 폐지, 선거방송 수어통역 확대,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 개선 등을 권고한 바 있다.
6월 3일 지방선거 당일, 충청북도 음성군 내 두 곳의 투표소를 직접 방문해 선관위가 공표한 10가지 제도의 이행 실태를 확인했다.
선관위가 규정한 10가지 편의 제도
선관위가 마련한 장애인 투표 편의 제도는 다음 10가지다. 첫째, 점자형 투표 안내문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투표 절차와 유의 사항 등을 점자로 기재한 안내문과 후보자 선거공보를 발송한다. 점자를 읽을 수 없는 경우를 위해 음성변환용 2차원 바코드를 인쇄하여 스마트폰으로 후보자 정보·공약 등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수화·자막 방영이다. 방송 대담·토론회 및 후보자 방송 연설 시 수화와 자막을 함께 방영해야 한다. 셋째, 왕복 차량 제공이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자택에서 투표소까지 왕복 이동을 돕는 리프트 장착 전용 차량과 활동 보조인 2인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임시 경사로 설치다. 계단이 불편한 휠체어 이용자 등을 위해 선관위가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다섯째, 모든 투표소에 오전·오후 각 2인의 투표 안내 도우미를 배치해야 한다. 여섯째, 장애인 겸용 기표대는 일반 기표대보다 넓고 낮게 제작하여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째, 모든 투표소에 확대경, 밴드형·마우스피스형 기표용구, 점자투표 보조용구 등 시각장애인용 투표보조용구를 반드시 비치해야 한다. 여덟째, 시각 또는 신체 장애로 직접 기표할 수 없는 경우 2인을 동반하여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아홉째, 사전에 신고한 뒤 현재 거소에서 우편으로 투표하는 거소투표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1층이 아닌 투표소의 경우 장애인이 원하면 1층에 별도의 임시기표소를 설치해야 한다.
첫 번째 투표소: 대소행복주민센터
▲대소행복주민센터 투표소 전경
주민센터 투표소는 2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계단 이용이 어려운 유권자도 접근이 가능했고, 장애인·임산부 전용 안내 도우미도 배치되어 있었다. 취재 중 문의하자 휠체어가 구비되어 있고 필요 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비 사항이 잇따라 확인됐다. 안내 도우미는 규정상 오전·오후 각 2인이 배치되어야 하지만 1명에 불과했고, 해당 공간이 장애인·임산부 전용임을 알리는 안내도 뚜렷하지 않아 일반 유권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가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장애인 겸용 기표대는 2개 설치되어 있었으나 규정이 요구하는 낮은 높이를 충족하지 못해 휠체어 이용자가 쓰기 불편할 것으로 보였다. 시각장애인용 투표보조용구는 종류를 불문하고 전혀 비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2층 투표소임에도 1층 임시기표소 역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두 번째 투표소: 대소초등학교 체육관
두 번째로 방문한 대소초등학교 체육관 투표소는 계단 외에 완만한 오르막길이 마련되어 있었고, 입구에 유권자 안내문도 부착되어 있었다. 첫 번째 투표소와 비교해 접근 안내 면에서는 개선된 점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안내 도우미는 이곳도 1명이었고, 장애인 겸용 기표대는 일반 기표대보다 크기가 큰 것을 겸용하는 방식이어서 낮은 높이 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시각장애인용 투표보조용구는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되풀이되는 문제, 이번 선거에서도
이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만 불거진 것이 아니다. 2022년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당시에는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활동지원사와 함께 투표소를 찾았지만, 투표사무원이 동반 입장을 허용하지 않아 투표를 사실상 포기해야 했던 사례가 보고됐다. 이에 당사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올해에도 시각장애인이 사전투표소에서 점자 보조용구를 요청했으나 비치되지 않아 40분 이상 기다렸음에도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제보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이번 취재에서 방문한 두 투표소에서도 확대경, 밴드형·마우스피스형 기표용구, 점자투표 보조용구가 모두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투표소 단위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역 장애인복지관에 문의한 결과, 복지관 측은 투표 당일 차량 지원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지역 내 장애인연합회 및 이동지원센터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안내했다고 밝혔다. 선거 전 수요 조사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관련 기관 정보를 제공했으나, 실제로 몇 명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했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활동 보조인 동반의 경우 필요한 분들은 이용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구체적인 현황은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 이용자로부터 별도의 불편 민원이 접수된 사실은 없다고 했다. 개별 투표소의 문제를 넘어, 지원 체계 전반에서 실태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 참정권 보장은 국제적으로도 선거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의 사례는 한국 제도의 한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국은 1990년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DA)에 따라 모든 투표소에 접근 가능한 전자 투표기기를 최소 1대 이상 비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터치스크린·음성 안내·키보드 등 다양한 보조기기 중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으며, 차별 발생 시 법무부에 신고하는 절차도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영국은 모든 투표소에 점자 투표 보조용구 비치를 의무화하고 선거관리원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 교육을 정기 실시하며, 선거 후 투표소 접근성 감사 결과를 공표하는 절차를 제도화하고 있다. 호주와 일본도 각각 전화투표·이동식 투표소 운영, 거소투표 범위 확대 등을 통해 장애인 유권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과 이들 국가의 가장 큰 차이는 이행 점검 체계의 유무다. 미국과 영국은 투표소 접근성 점검 결과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공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10가지 편의 제도를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선거 당일 각 투표소에서 이 제도들이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확인하는 공식적인 체계가 없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남는 숙제
이번 취재에서 확인한 것은 두 가지다. 엘리베이터, 오르막길처럼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편의는 일부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안내 도우미 인원, 기표대 높이, 투표보조용구, 임시기표소 등 선관위가 명시한 항목 다수가 이행되지 않았다. 제도는 있었지만 현장은 달랐다.
약 230만 명의 장애인 유권자가 온전히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제도를 마련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공표하는 체계다. 선거 당일 투표소별 이행 실태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미이행 시 시정 조치가 뒤따르는 구조가 필요하다. 230만 명의 장애인 유권자에게 ‘제도는 있었다’는 말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
작성자글과 사진. 충청지역 최은파 기자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