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높은 투표소와 거부당한 참정권, 유니버설 디자인은 어디에 있는가
도민기자단 / 강원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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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 속에 갇힌 선거권, 현장에서 마주한 계단이라는 장벽
성인이 된 이후, 선거철이 되면 나의 우체통에는 늘 어김없이 한 통의 안내문이 도착한다.
“귀하의 선거권을 위해 자택에서 선거를 하실 경우, 시청에 전화해 주시면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함께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성인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누려야 할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권리, 바로 선거권(참정권)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는 단순히 표 한 장을 던지는 행위를 넘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주권을 행사하는 엄숙한 선언이다. 시청에서 보내오는 이 안내문은 겉보기엔 장애인 유권자를 배려하는 무척이나 친절한 행정 서비스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매번 이 우편물을 보며 묘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거동이 불편하면 집에서 조용히 투표하라’는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장애인을 주류 사회와 격리하고 투표소라는 공적 공간에서 배제하려는 ‘분리주의적 시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남들과 똑같이 투표소에 가서 동네 이웃들과 줄을 서고, 기표소의 천막을 걷어 올리는 평범한 일상을 당연하게 누릴 수 없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과 반발심 속에서, 나는 이동이 가능하다는 개인적 조건 덕분에 집이 아닌 실제 투표장으로 향했다. 나의 주권을 당당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방문한 본 투표소는 지역의 한 학교 동아리실에 마련되어 있었다. 투표소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3개의 커다란 계단이었다. 나는 당시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고 이동했기 때문에 어찌어찌 그 계단을 올라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지만, 투표소 내부의 풍경은 더욱 처참했다. 학교 동아리실이라는 공간 특성상 내부는 무척이나 협소했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과 투표를 하러 온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등 뒤로 서늘한 예감이 스쳤다. ‘만약 내가 오늘 휠체어를 타고 이곳에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휠체어 바퀴는 그 3개의 계단 앞에서 멈춰 섰을 것이고, 좁은 동아리실 내부에서는 동선이 꼬여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를 돕겠다고 나선 투표소 직원들은 우왕좌왕하며 당황했을 것이고, 뒤이어 줄을 선 유권자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순식간에 ‘행사를 지연시키는 불편한 존재’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참정권을 행사하러 온 당당한 유권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과 도움을 구걸해야 하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다.
이후 나는 강릉시 관내의 투표소 몇 곳의 입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형 체육관이나 문화센터처럼 넓고 현대적인 공공시설에 마련된 투표소는 경사로가 잘 갖춰져 있어 휠체어 접근이 원활했다. 반면, 오래된 행정복지센터나 학교 교실 등 작은 건물에 설치된 투표소들은 여전히 ‘계단’이라는 높은 턱이 존재하고 있었다. 투표소의 위치라는 ‘복불복’에 따라 누군가의 참정권은 보장되고, 누군가의 참정권은 침해받고 있는 것이 강릉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 투표소의 현주소다.
우리는 매번 장애인 인식개선을 말하며 ‘배리어프리(Barrier-Free) 사회’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국적, 성별, 연령,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대다수의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이나 환경을 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단순히 ‘건물을 세련되게 짓는 건축 기법’이나 ‘경사로를 보기 좋게 설치하는 디자인 요소’ 정도로 가볍게 여긴다. 이는 대단한 오해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본질은 미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보장과 사회적 권리의 실현에 있다.
투표소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문턱을 없애고,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단순히 ‘건축적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권리인 ‘참정권’을 물리적으로 지켜내는 일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장애인 복지와 인권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앞다투어 공약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들이 표를 구하는 투표소조차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렵다면, 그 어떤 화려한 공약이라고 역설적이지 않는가?
진정한 배리어프리 사회는 거동이 불편한 유권자에게 “집에서 우편으로 투표하라”고 권유하는 사회가 아니다. 휠체어를 타든, 유모차를 끌든, 지팡이를 짚든 간에 아무런 제약 없이 이웃들과 함께 당당히 투표소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 내 손으로 직접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다.
더 이상 투표소의 문턱 앞에서 유권자가 당황하고, 직원들 또한 우왕좌앙해서는 안된다. 선거관리위원회와 지자체는 모든 투표소의 접근성을 전수조사하고, 접근이 불가능한 곳은 투표소 지정에서 과감히 제외하거나 완벽한 임시 경사로를 확충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부른다. 축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다가오는 다음 선거에서는 강릉의 작은 투표소에서도, 전국의 그 어느 좁은 골목길 투표소에서도 계단이라는 장벽 대신 넓게 열린 문을 마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정권은 우편함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투표소 현장에서 온전히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
작성자글. 강원지역 김남영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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