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 문턱에 가로막힌 참정권, 14년의 추적과 국가의 배상 책임
도민기자단 / 제주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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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잠실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주권 행사에 대한 유권자들의 뜨거운 열망과 권리 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장애인 유권자들이 투표소 안에서 벌어진 행정적 착오에 분노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 공간의 제약에 가로막힌 장애인 유권자들은 투표소 안으로 발을 들이지조차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투표용지 한 장의 부재가 문제라면, 누군가에게는 투표소 입구에 방치된 고작 3센티미터의 단차가 참정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거대한 절벽이 된다. 투표는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며, 국가는 모든 조건에서 교통약자가 독립적이고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공직선거법」을 통해 장애인을 포함한 이동약자의 접근 편의를 보장하는 곳에 투표소를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법률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주출입구 경사로의 기울기나 유효폭, 문턱의 높이 등은 휠체어의 진입에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문 규정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이 2012년부터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14년간 전개해 온 투표소 편의시설 접근성 모니터링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현장의 변화는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되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필수 항목을 모두 충족하여 완전한 접근성을 확보했던 투표소는 단 26%에 불과했다. 이후 장애계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2018년 30%, 2022년 40%로 조금씩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고, 가장 최근인 2026년 지방선거 전수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250개소 중 절반인 50%가 적합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 가시적인 성과로 보일 수 있지만, 바꾸어 말하면 여전히 전체 투표소의 절반 정도는 휠체어를 탄 유권자나 보행 보조기에 의지하는 어르신이 들어서는 순간 최소 1개 이상의 물리적 장벽을 무조건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질적인 한계는 더욱 심각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접근성을 보완하겠다는 명목으로 기존 계단 위에 가파른 임시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고무판을 덧대고 있지만, 이는 안전 손잡이조차 없어 휠체어가 뒤로 넘어질 위험이 큰 위태로운 눈속임에 불과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엉뚱한 곳에 놓여 이동을 방해하거나, 선관위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전투표소 편의시설 정보가 실제 현장과 달라 장애인 유권자들을 헛걸음하게 만드는 행정적 허점도 매 선거마다 반복된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과 달리, 선진국들은 투표소의 접근성 문제를 유권자의 타협 불가능한 천부인권으로 다루며 법률로 엄격히 강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장애인법(ADA)과 미국투표지원법(HAVA)을 근거로 삼아, 건물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물리적 진입이 불가능하다면 유권자가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도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커브사이드 투표(Curbside voting)’를 의무적으로 제공한다. 만약 지자체가 이러한 접근성 기준을 위반할 경우 연방 법무부가 직접 소송을 제기해 강제 시정 조치를 내린다. 영국 또한 선거법을 통해 장애인 유권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완전히 독립적이고 비밀스럽게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관리관에게 모든 정당한 장비와 편의를 제공할 책임을 무겁게 지우고 있다.
외국의 엄격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의 투표소 장벽은 단순히 시설이 노후해서 발생하는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 관리는 헌법에 명시된 엄연한 국가의 핵심 사무이다. 국가는 선거라는 전 국민적 행사를 집행하고 막대한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유권자들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 공공의 재원을 활용하면서 특정 계층을 소외시키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과 평등권을 동시에 침해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이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수호하기는커녕, 장벽의 존재를 수십 년간 인지하고도 묵인하며 차별을 방치한 명백한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당한 권리를 차단당해 결국 투표를 포기해야 했던 장애인 유권자들에게 국가가 행정적 편의주의의 대가로서 엄중한 법적 배상 책임을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전체 투표소 중 이제 겨우 절반 정도가 접근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단 한 곳의 투표소라도 문턱을 낮추지 못해 유권자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온전한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다. 향후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장소를 선정하는 첫 기획 단계부터 이동약자의 접근성을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임시방편으로 깔아두는 위태로운 경사로를 거두어내고, 투표소로 사용되는 학교나 마을회관 등의 공공시설 자체가 일상적으로 장벽 없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갖출 수 있도록 지자체와 교육청이 전향적인 예산 투입과 개보수에 나서야 한다. 모두가 걸림돌 없이 당당하게 들어설 수 있는 투표소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품격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작성자글. 제주지역 강인철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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