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어린이날을 기다리는 아빠입니다. > 도민 기자단


나는 이제 어린이날을 기다리는 아빠입니다.

도민기자단 / 전라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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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참 특별한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달. 누군가에게는 꽃과 선물, 웃음이 가득한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그리움이 문득 찾아오는 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 한때는 5월이 조금 두렵고 낯설었던 사람이 있다. 연극배우이자, 누군가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대신 외쳐주는 사람, 이번 달은 전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김건희 씨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한다.
 
오늘 어버이날이잖아요? 왠지 살짝 기대되는데, 어린이집에서 카네이션 만들기 하겠죠?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달아주겠죠?
 
 
그의 아들 루카 이야기를 꺼내는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가정의 달’을 이야기하는 그이지만, 사실 그에게 5월은 오랫동안 조금 아픈 시간이었다.
 
어린이날
 
어렸을 때 생각해 보면 이건 좀 슬픈 건데, ‘누군가가 넌 특기가 뭐야?’ 라고 물어보면 ‘강아지야! 집을 잘 지켜!’ 라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근데 그런 말 잘 안 쓰잖아요. 그때는 잘 몰랐어요. 그냥 강아지가 집을 잘 지키니까.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도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어요. 어린 시절의 나는 항상 집을 잘 지켰던 것 같아요. 7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촌들과 지냈는데, 특히 어린이날이 되면 삼촌들은 아이들과 밖에 나가고 나는 항상 집을 지켜야 했어요.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할아버지, 삼촌들이 번갈아 가며 그와 함께 지냈지만 어린이날이면 삼촌들은 본인의 자녀들만 데리고 나갔고 그는 종종 집에 남아 ‘집을 잘 지키는 아이’가 되었다. 어린 김건희에게 어린이날은 마냥 들뜨고 설레는 날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어요.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하던 말들이, 사실은 조금 슬픈 기억이었다는 걸요.
 
어린 시절 시간에 머물러 있는 그를 꺼내어주고 어린이로서의 시절을 어린이답게 보내본 경험이 없는 그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기 시작한 사람은 지금의 아내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날이 되면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는 그에게 새롭고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주기 위해 그의 아내는 어린이날이면 어린이들이 가는 곳을 가고, 둘만의 어린 데이트를 신나게 하고는 아이처럼 놀곤 했다.
 
오빠, 아이가 태어나도 무언가를 특별하게 하지 않아도 돼. 오빠는 어린이날 혼자 있는 아이가 더 이상 아니잖아.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오빠랑 같이 놀아줄 아이가 있는데, 같이 놀아줄 우리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어린이날이 무서웠던 그가 혼자가 아닌 것만으로도 그의 기억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그의 어린이날은 인생에 있어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날이 되었다.
 
한 번의 자존심. 그리고 고집.
 
어릴 때 얼마나 제가 자존심을 안 부리는 아이였냐면요.
 
김건희 씨의 할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항상 지팡이를 짚고 그의 부축을 받으며 다니시던 할아버지는 줄곧 술에 취해 도랑에 빠지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그에게 손찌검했다. 앞이 안보이시니 피하면 될 것을 할아버지가 헛손질하는 것이 싫어 기꺼이 몸을 내어주고는 초등학교 사진들을 보면 얼굴의 반은 멍인가 싶었다고 한다. 어릴 때 출전한 씨름 대회에서 상대편을 들배지기 했을 때도 떨어져 아플 상대방 걱정에 조용히 그를 내려놓고는 웃으며 신나게 짜장면을 먹으러 갔던 그였다.
 
그러던 그 아이가 유일하게 욕심을 내고 자존심을 내세웠던 것은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 당시 유행했던 봉숭아학당의 맹구를 좋아했던 그가 지원한 맹구 역할을 뺏기고는 큰 덩치를 이유로 오서방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학예회 연극 시간 내내 본인만의 고집으로 맹구 목소리로 오서방을 연기했다. 나보다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이 행복이었던 사람이었고 본인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던 그가 인생 처음 부려본 고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너무나도 성공적이었다.
 
누가 볼 때는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고, 떼쓰는 것일 수도 있고. 결국 무대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며 나 좋자고 남에게 피해를 준 거잖아요. 평생 그런적이 없는데 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그때 알았어요. 나 이거 좋아하나보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는 타국으로 선교를 가고, 외지를 가고, 산골 마을 아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보기도 하고, 발달장애인들과 연극팀을 구성하여 버스킹 공연을 하기도 한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만난 지체장애인분과 친분이 형성되어 발음 연습 상대가 되어준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곳에 그가 가진 연극이라는 기술이 치유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좋아하는 것을 보면 떼를 쓰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서 표현하는.
 
아빠가 된 어린이
 
그의 아들 루카는 다운증후군과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세상의 편견이 아닌 자신의 편견과 싸우는데 힘들었다. 아이라서 하는 행동과 장애가 있어 하는 행동이 구분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장애 때문이 아닌 아이니까 할 수 행동들인데 정작 가장 큰 편견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었다는 것. 동네 어르신들은 골목길에서 루카를 반갑게 불렀고, 마을의 체육관 관장님은 루카의 생일날 떡을 손수 해오시며 루카의 성장을 함께 기뻐하며 모두와 나누었다. 루카는 그렇게 많은 사랑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루카는 사랑받는 아이예요. 오히려 제가 늦게 알았죠.
 
김건희 씨에게 아빠가 된다는 것은 기쁨과 함께 두려움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낸 기억 때문이었다. 숫자 ‘7’은 그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같은 존재였다. 자신이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었기에, 혹시 아이를 두고 일찍 떠나게 되진 않을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와 불안한 마음에 그는 자신이 듣지 못했던 말과 마음을 아들에게 수시로 전해주려 노력한다.
 
아버지도 제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으셨을 텐데, 그 말을 못하고 떠나신 게 얼마나 슬프셨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더 많이 말하려고 해요.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아빠가 네 곁에 있다고.
 
김건희 씨는 매년 자신의 생일 전날 아들 루카와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예전에는 생일이 다가오면 문득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이의 웃음 하나에, 손짓 하나에 슬픔은 설렘으로 바뀐다. 가족이 주는 가장 큰 선물. 그렇게 특별한 김건희씨 가족만의 약속과 기억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루카가 태어나고 나서 알았어요. 슬픔은 없어지지 않지만, 새로운 기쁨이 찾아오면 그 슬픔 위에 다른 기억이 쌓인다는 것.
 
어쩌면 김건희 씨는 아빠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안아줄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가족이란?
 
가족은 잃어버린 계절을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예요. 사라진 기억을 없애주는 건 아니에요. 대신 그 위에 더 따뜻한 기억을 덧입혀주죠. 그래서 다시 기대하게 만들어요.
 
5월. 우리는 가족을 떠올린다. 완벽해서 아름다운 가족은 없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마음 아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가족이 특별한 이유는 그 모든 시간 위에 다시 웃을 수 있는 기억을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한때 집을 지키던 아이였던 김건희씨는 이제 아들의 손을 잡고 새로운 어린이날을 써 내려가는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가정의 달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따뜻한 메시지도 이것일 것이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곁에 새로운 행복을 조용히 놓아주는 일이라는 것.
 
여전히 나는 매 순간 긴장하고 살고 있어요. 주변에서 많이들 슬퍼해주고, 많이들 기뻐해주고. 그 사람들의 눈을 통해 나를 확인하곤 해요. 나는 완전히 기뻐하지 못했고, 많이 울어보지 못했고..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님들이 긴장하고 살지 않을까 싶어요. 그로 인해 살면서 몰랐던 나의 감정들을 알아가는 것들.
 
 
작성자글. 전라지역 이나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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