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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20세기 말의 우리의 모습, 그리고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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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20세기 말의 우리의 모습, 그리고 복지...

 

하필이면 복지부 장관 부인이 뇌물 받은 혐의로 감옥에 갔다. 부인이 받은 뇌물을 남편이 몰랐을까 하는 문제로 항간에 여러 가지 설이 무성하지만, 할 일 많은 복지부의 책임자가 연루된 사건이라 입맛이 더욱 쓰다. 없는 살림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 신명을 바쳐 노력하겠거니 했는데, 까마귀 노는 골을 기웃거리고 다닌 것만 같아 할 말을 잃게 된다.
하긴 복지부만의 일은 아니다. 모 국방장관을 위시해서 모 은행장, 모 하수국장 등 줄줄이 뇌물 받고, 감옥으로 가는 행렬이 끝이 없다. 이 사람들만이 죄인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없는 형편이다. 아래 위로 온통 썩었다는 탄식이 하늘을 찌른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겪었지만 끊임없는 "부실"의 공포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이면에 혼자만 살겠다는 고약한 심보들이 도사리고 있다. 아직도 매년 청백리들을 발굴해서 시상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은 있지만, 진심으로 청빈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총생산이 세계 11위에 이르면서 그렇게 동경하던 OECD에 가입이 확정됐을 정도로 경제가 발전했고 정부가 앞장서서 세계화와 삶의 질의 선진화를 외치고 있는데, 왜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일까? 왜 자기 곳간에 넘치도록 많은 재물을 채워 넣고서도 모자라 이웃의 보리섬을 탐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나눌수록 커진다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인류가 사회를 이루어 생활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지혜는 서로 돕는 것이었다.
험악한 자연과 싸우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돕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로 돕는 일은 곧 생존의 지혜였던 것이다. 인류가 터득한 생존의 지혜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타인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으면 타인도 나를 존중하지 않게 되고 결국 인간답게 생존할 수 없게 된다는 깨달음이다. 함께 나눔으로써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이러한 지혜는 세월이 흘러 사회가 진화하면서 제도화되어 오늘날 사회복지의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역사를 가진 모든 민족은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깨달음의 계기를 가지게 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태민족의 기원은 이집트의 노예들이었다.
그들은 해방자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질서를 꿈꾸었다.
그들이 꿈꾼 사회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억누르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멸시하지 않고 함께 돌보는 사회였다. 나아가 가능하면 부자와 빈자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회였다.
이들이 이처럼 평등한 사회를 꿈꿀 수 있었던 기반은 이집트에서 함께 했던 노예생활의 경험이었다.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었다. 이들이 믿었던 여호와 신은 곧 해방자 여호와였던 것이다.
근대적인 사회복지제도의 출발이라고 평가되는 독일의 사회보험제도는 19세기 후반 비스마르크 재상에 의해 입법화되었다. 비스마르크는 당시 급격히 산업화되고 있던 독일의 노동자 문제에 직면하여, 이들이 사회주의 세력으로 뭉치는 것을 탄압하면서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이들을 황제의 편으로 유인하려 했다.
비스마르크의 이러한 의도는 성공적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를 통해 독일 사회의 전통적인 상부상조의 관행들이 근대적인 모습으로 성공적으로 탈바꿈하면서 사회복지제도의 세계사적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영국의 경우도 교훈적이다. 영국 복지국가의 기본 설계도는 2차대전 중에 작성된 베버리지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전란의 고통에 휩싸여 있던 영국 국민들에게 주는 영국 정부의 약속으로서 전후에 건설될 새로운 국가의 청사진이었다. 이 청사진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함께 겪고 있던 전쟁의 고통 속에서 생겨난 국민연대의식이었다. 물론 이 청사진은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수용하였지만, 최소한 국민생활최저선에 있어서의 평등을 주장하는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국 국민은 이를 지지하였고, 결국 전후에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도 절반이 채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복지국가 한국"의 윤곽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의 복지수준은 세계적으로 너무 부끄럽다.
삶의 질의 세계화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너무 팍팍하다. 기대를 모았던 오랜만의 문민정부도 거의 끝나 가는데 우리 복지의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계기는 아직도 주어지지 않은 것일까? 우리도 남들 못지 않은 노예생활의 경험을 했고, 남들 못지 않은 비참한 전쟁도 겪었고, 남들 못지 않은 산업화의 홍역도 치렀는데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고통이 아직도 모자란 것일까?

 

글/이영환 (성공회대학교 교수, 사회복지학)

 

작성자이영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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