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관련 일본만화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 > 대학생 기자단


장애관련 일본만화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

일본장애우 만화의 대부, 야마모토 오사무

본문

  만화왕국이라는 명성답게 일본에서는 만화가 톡톡히 대접을 받는다. 그런 작품의 대열에 장애우문제를 다룬 만화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전국 청각장애우연락회의 사무국장 영정철(43. 永井哲) 씨가 장애우를 소재로 한 만화 비평서인 "만화 속의 장애우들 -  표현과 인권"을 펴냈는데 여기에 소개된 장애우 관련 만화만도 70여 편에 달한다. 이들 만화들은 영화나 만화영화 혹은 드라마로 종종 만들어진다. 97년 일본에서는 청각장애우 남성과 직장동료인 건청여성의 사랑을 그린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다"라는 TV드라마가 커다란 인기를 모았었다.

  장애우 문제를 주로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만화작가는 현재 일본열도를 뒤흔들고 있는 만화영화 "도토리의 집"의 저자 야마모토 오사무(46) 씨다. 그의 작품 "머나먼 갑자원"이 국내의 번역, 소개된데 이어 "도토리의 집"이 "사랑의 집"으로 제목을 바꾸어 번역 출간돼 그는 국내에도 낯설지 않은 작가이다. 

  야마모토 씨는 일본에서 소위 사회파 만화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사마타현 청각장애우복지회 이사, 궐시수화써클 회장, 전국수화통역문제연구회 회원 등 청각장애우 문제에 앞장서온 경력답게 주로 다루는 만화의 주제도 청각장애우 문제다.

  79년 데뷔 이후 만화가로서의 이름을 높여준 작품 청춘 드라마 "머나먼 갑자원" (10부작. "85년, "91년 영화화)과 "이 손가락의 오케스트라"(4부작. "91년)등 그의 대표작은 모두 청각장애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십년 전, 장애우를 만화로 취급하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엉거주츰하는 편집자를 반골기질로 설득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 "머나먼 갑자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청각장애는 무거운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야구도 할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사해 나가면서 이들이 듣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대단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사무 씨는 청각장애우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수화를 배웠고 도토리의 집을 연재하기 위해 장애우시설 건설운동에 손수 참가해 그 과정을 작품에 반영했다. 그는 시 등록 수화통역자 자격으로 지금도 농중복 청각장애우 문제라면 집필 중에도 회의나 병원으로 수시로 내달린다. 그는 청각장애우와 의 이러한 끈끈한 인연에 대해 최근 발간된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렸을 때 양친이 이혼하고, 준생활 보호를 받았다. 궁핍했기에 차별 받았고 열등감의 앙금이 쌓였다. 학교나 어른이 싫어 원한과 증오로 소년시절을 보냈다. 그 체험에서 차별 받는 장애우의 한이 겹쳐 작용했다. 그 한의 극복이 일련의 작품 테마가 되었다."

 일본열도를 뒤흔드는 도토리의 집

  만화영화 도토리의 집은 여려 가지 면에서 일본장애계와 사회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본래 토토리의 집은 지난 93년 초등학생용 만화잡지인 빅코믹스에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연재 초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은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중증 중복장애우 문제를 부각시키고 그들을 위한 공동작업소 건설 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독자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95년부터 후속편이 다시 연재되었고, 중복장애우의 문제와 공동작업소 운동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자는 요청에 따라 만화영화 구상이 제안되었다.

  도토리는 제작과정과 상영방식에서부터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즉, 영화를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제작기금을 내고 상영하는 방식이다. 96년 7월 12일 전일본연맹과 공동작업소전국연락회를 중심으로 "도토리의 집" 전국상영위원회를 결성했고, 취지에 동참하는 많은 민간 장애단체의 찬동을 얻어 영화제작 기본경비 1억 엔을 목표로 1구좌당 10만엔씩을 1천구좌 확보운동을 펼쳤다. 전국적으로 골고루 안배된 1구좌를 신청한 개인과 단체에는 지역 영화상영위원회 자격을 부여하는 한편 유료영화상영 권한을 주어 2년 동안 상영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영화상영에 필요한 홍보와 포스터를 중앙에서 지원해 주고 영화상영 수익금(상영분담금 3만엔, 총수입금 3%에 해당하는 장애우시설 지원기금 제외)은 주최자에 귀속하도록 했다.

말하자면 장애우관련 사업에 프렌차이즈제를 도입한 것으로 경제의 귀재 일본다운 발상이다. 이런 방식은 제작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대형 배급망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역 상영위원회가 거점이 되어 값싼 비용으로 전국 동시상영이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원작자 야마모토 씨도 대단히 흡족하게 여기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기분으로 그려왔다. 과거에도 내 작품이 영상화되었지만 불만이 많았다. 이번에 자주제작이라는 방식을 취한 것도 일절의 타협을 배제해 영화계에 진검승부를 걸 생각으로 임했고, 그것이 도토리를 향한 전국에 있는 동료들의 절실한 과제에 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의도대로 도토리의 집은 청각장애에 지적 장애나 정신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부모의 고투, 장애우를 둘러싼 문제의 고발이라는 테마를 관통해 장애우나 고령자를 억누르는 일본 정치의 빈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공생의 필요성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공감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소문으로 구전되어 조용하게 그 고리를 넓혀가고 있으며 전국에서 격려와 공감의 편지들과 후원금이 접수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현재 일본 전역의 시민회관과 구민회관에서는 도토리의 집이 줄을 이어 상영되고 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상영회와 함께 토론을 개최하는 등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 장애계가 고무되고 있다. 그들은 1993년 장애우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를 일본의 장애우 복지에 있어 큰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이에 편승하듯 "도토리의 집"이 그 도화선이 되었다. 현재 4천여개소에 달하는 공동작업소는 더욱 무서운 기세로 전국 각지로 펼쳐가고 있다. 모든 결론이 공동작업소 건립으로 귀결지어지는 것은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들은 현재의 장애우복지법이나 제도로부터 버려지고 있는 난치병이나 중증 중복장애우들을 위한 사회생활 지원 운동으로 이를 활용하려는 눈치다. 만화영화 한 편이 사화와 대중에 끼치는 영향력, 장애우 관련 사업에 경영원리를 도입해 효율을 추구하는 모습들은 장애우 문제 해결에 있어 일종의 해법을 제시하는 듯하다.

 "이 손가락..."를 통해 본 수화의 주체성

  "이 손가락의 오케스트라"는 세계사회 언어학회 회보(1998년ㆍ제3호)에 분석평이 실릴 만큼 가치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수화와 구화의 대립이다.  1914년 대판시립 청각장애학교 교사에 부임한 타카하시는 수화가 청각장애우에게 적합하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수화를 배우고 수화연구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다수파의 언어인 음성 언어를 배우지 않고서는 아이들의 장래가 어둡다는 구화주창자들의 논리에 의해 구화법(발음과 독순술에 의존)이 설득력을 얻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이 결정적 계기가 된다.

즉, 당시 일본인들은 "50엔 50전"을 일본말로 할 수 있는가를 잣대로 조선인을 판별해냈고 이 때문에 무수한 청각장애우들이 조선인으로 오인돼 학살당했던 것이다. 이들 중 수화와 구화를 강대언어와 약소언어의 사회언어학적인 관계에 빗대어 설명한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세계 각지에서 강대국의 언어가 약소국의 언어에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수화에도 이러한 현상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국제교류에 있어서 미국 수화를 들 수 있는데 미국 수화의 제국주의도. 영어 제국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 1991년 세계청각장애우회의가 동경에서 열렸는데 제스트노(Gestuno)라는 국제수화(음성 언어로 말하면 에스페란토어에 해당)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미국 수화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본수화가 한국수화에 끼친 영향력에 대한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강대언어인 일본어로부터 유입된 외래어를 다수 갖고 있는 대만이나 한국의 수화는 일본 침략의결과(본문에는 점령으로 표기, 일본은 여전히 점령이란 단어를 고집하고 있다)로서 일본수화와 같은 뿌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현재의 한국 수화와 일본수화의 어휘는 60% 이상이 같거나 비슷해 통역을 안 해도 이야기가 통해 버릴 정도이다. 이 글은 아래와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약소언어가 국제사회에서 차별 받는 것처럼 수화도 다수언어에 의해 차별 받고 있으며, 이에 더해 수화는 언어로도 인정되지 않고 단순한 손짓 정도라는 편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수화 언어로 받아들이는 당연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고 수화 사용자를 장애와 연관지어 이상하게 볼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이민족과의 관습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요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 주목하기 보다는 일본수화에 식민지화가 된 상태에서 굳어져 버린 국내수화의 현실에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문화 개방에 맞서 주체성 확립에 대한 주장이 높아 가고 있는 이때 국내 수화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바람직한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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