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의 여자 여자 여자] 눈부시게 웃던 그녀 잭키 > 대학생 기자단


[이영호의 여자 여자 여자] 눈부시게 웃던 그녀 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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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일학년이 되자 고교입시 공부로 찌들었던 청춘들은 비록 대학입시 전까지만 유보된 자유이긴 하지만 모두 들떠 있었다. 나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자유분방함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 클럽에서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화여고나 경기여고 그리고 숙명여고 학생들과의 혼성 클럽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코알라"라는 영어회화클럽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님도 보고 뽕도 따자는 생각에서였다. 서울고와 이화여고만으로 이루어진 2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클럽이었다. 모임은 소공동에 있던 영국대사관 도서실에서 있었다. 매주 다른 주제가 주어지고 그 주제에 관해서 영어로 토론하는 것이 회원의 의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여학생들과의 애프터미팅이었다. 우리는 클럽에 가입하면서 영어이름을 하나씩 갖게 되었는데, 나는 앤디를 택했다.
  십여 명의 여학생 중에서 내가 좋아할 수 있고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여학생을 찾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팅을 하는 동안 주제에 대한 토론 내용을 분석하고 또 행동을 관찰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 지도 간파해야 했다. 게다가 얼굴과 체격도 무시할 수 없었으니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 분석하여 한 여학생을 찾아냈다고 해도 그 여학생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몇 번의 미팅이 있고 나서 나는 블론디라는 애칭을 사용하는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후덕하게 생긴 맏며느리감이었다. 영어로 발표하는 내용으로 판단할 때, 책도 제법 읽은 것 같았고 머리도 좋아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고 그녀도 내게 관심을 보였다.
  몇 달이 지났다. 클럽의 모임이 있는 토요일을 위해 세상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다른 녀석들은 여학생들과 어울려 미국인 선생에게 영어회화를 배웠지만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던 집의 막내인 나로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사전을 뒤지며 영어로 토론할 준비를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5월이 되자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여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간다고 했지만 우리는 시커먼 무명교복을 입고 가기가 싫어 이궁리 저궁리를 했다. 청바지 하나 얻어 입지 못한 나는 저녁 내내 궁리했지만 결국 검정 검정 바지에 작은형과 큰형의 티셔츠를 겹쳐 입고 그 위에 또 빨간 긴소매 셔츠를 입고 나섰다. 점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때 사진을 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꼴불견인 옷차림이지만 점퍼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신세대들의 옷차림이라면 봐 줄만 할 지도 모르겠지만 당시로선 비정상적인 옷차림이었다. 어쨌든 나는 고물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야유회에 참석했다.
  점심을 먹고 포터블 전축에 LP를 올려놓고 춤을 추다가 남자들끼리 놀러 온 패거리들과 시비가 벌어지는 식의 60년대의 불쌍하고 한심한 한국의 젊은이들을 연출했다.
  한 바탕의 소란이 가라앉고 아이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보다 일년 선배인 잭키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그녀는 많은 여학생들 중에서 정말 눈부시게 예뻤다. 더욱이 파나마 해트를 비스듬히 쓰고 웃는 그녀는 군계일학이었다. 나의 블론디도 잭키의 눈부심에 빛을 잃고 있었다. 나도 어리석은 사내아이에 불과했었기 때문에 잭키와 사진을 찍기 의해 줄을 섰다. 야유회에 다녀오고 나서 녀석들은 각기 짝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블론디는 내가 야유회에서 잭키의 추종자처럼 행동한 것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내 경박함을 만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의 블론디는 결국 클럽에서 탈퇴했다. 나는 한 명의 짝도 찾지 못하고 클럽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 년 선배인 잭키를 짝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짝사랑은 정말 달콤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녀와 찍은 사진을 보며 온갖 공상에 빠져 황홀해 했다. 그녀를 좋아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못하고 그녀는 고3이 되었고 나는 고2가 되었다. 고3인 그녀는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새로 들어온 일학년들과 함께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잭키에 대한 그리움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일년이 지났다. 나도 고3이 되었고 대학입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만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기로 했다. 모두 수학여행을 떠나고 텅빈 교실을 오전 내내 지키다가 교문을 나선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종로3가의 빵집에서 나는 친구와 함께 초조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물빛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침 오후 늦게 수업이 있어 집에 있었다고 하며 의례적인 안부를 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학에 들어가서 만나자고 내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 해에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게 되었고 몇 년이 지난 뒤 그녀가 교환교수로 온 미국인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다. 지금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그녀가 나이에 어울리는 아름답고 완숙한 중년으로 변해 있기를 바란다.

 

글/ 이영호 (영화인,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작성자이영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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