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내 작은 소망은...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내 작은 소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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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나에게 작은 소망을 말하라고 한다면 하루 빨리 우리 사회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희경이같은 장애아도 사랑받을 수 있고 그 부모도 상처받지 않고 밝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로 어서 빨리 성숙되었으면 좋겠다.

 

 

 

  늦게 한 결혼에다 장손이라는 위치 때문에 은근히 아들을 낳았으면 하는 것이 주위 어른들이 우리 부부에게 바랐던 소망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딸을 얻어 기뻤고 산모가 건강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나면서 이상한 징조를 보였다. 생후 2개월만에 종합병원에서 본격적인 검진을 받아 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 검사결과는 별 이상이 없기에 조금 위로를 삼으면서 마지막 검사인 뇌파검사와 뇌CT촬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나의 소망을 외쳤다. 제발 별일 없게 해달라고, 그 때 나의 간절한 소망은 내 아이의 뇌에 이상이 없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과는 중증장애 판정이었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CT촬영 결과를 보고 아내는 기절하고 말았다. 내 아이가 중증의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어떤 괴로움도 그에 비길 수 없음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 한없이 울었다.
  그때가 1982년 연말이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시기였다.
  친구나 친척이 방문하여 아이를 들여다보고 한 마디씩 던지는 말들이 우리 가슴에는 모두가 상처로 남을 뿐이었다. 생각할수록 살아갈 길이 어둡고 참담할 뿐이었다.
  희경이가 4살 되던 해, 나는 절망에서 허우적거리던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고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지는 일본이었고 네 식구가 함께 떠났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함보다 새로운 고통의 적지로 뛰어드는 듯한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유학생활이었다. 우리 부부는 희경이로 하여금 외부로부터 정신적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아이를 은폐하는 길이 최선이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최선의 길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웃은 우리 가족에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특히 희경이를 귀여워해 주었고, 뇌의 정밀검진을 받도록 도와주었다. 검진 결과가 나오자 우리가 가장 괴로워했던 희경이의 경련을 막는 처방을 해주는 등 많은 배려를 이끼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4살인데도 아직 서지도 못하는 희경에게 집중적으로 걷는 훈련을 받도록 하여 걷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에게 평생 잊지못할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도 바로 이웃이었다.
  이웃들은 우리에게 따듯한 마음을 보내주었다. 시의 보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게 하였다. 희경이는 아무런 신변처리를 할 수 없기에 희경이의 전담보모가 채용되었다. 비장애아동들 속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희경이는 날로 발전하였다. 우선 집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대소변 가리기가 약 3개월의 교육결과로 성공하였고, 혼자 밥먹기, 편식 고치기, 물 마시기 등등 희경이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른 프로그램을 짜고 꾸준히 교육하는 그들은 너무 헌신적이었다.
  유학생은 수입이 없다고 교육비는 내지 않아도 된단다. 우리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일시적으로나마 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희경에게 장애수당이 나왔다. 희경이의 치료비는 당연히 무료였다. 그때 우리 주위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따뜻한 이웃뿐이었다. 우리 희경이도 둘도 없는 귀엽고 사랑스런 자식으로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귀국 후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희경이는 갈 곳이 없었다. 장애아가 입학하면 부모들의 반발로 원생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거절하였다. 종교단체의 유치원에서는 희경이를 위해서 한 사람 더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단다.
  나는 지금의 우리 부부를 있게 만든 그대 일본에서의 그 이웃들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 지금 우리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한마음장애복지회도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지금 나에게 작은 소망을 말하라고 한다면 하루 빨리 우리 사회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희경이 같은 장애아도 사랑 받을 수 있고 그 부모도 상처받지 않고 밝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로 어서 빨리 성숙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또 하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우리 희경이가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내 작은 소망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글/ 정영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부산지소 이사장,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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