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이제부터가 우리 차례다 > 대학생 기자단


[징소리]이제부터가 우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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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구랍 31일 저녁에 해바뀜을 맞이하는 가족모임을 갖자고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가 다른 모임 때문에 지키지 못한 일이다. 다음날, 온 가족으로부터 쏟아지는 지탄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비록 하루 연기된 자리지만 서둘러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들이 가장 고심하는 것 중에 하나는 아마도 어떻게 아이들로부터 부모로서의 권위를 지켜 나갈 것이냐 하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부양할 것이냐 하는 관심사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권위는 무엇에서부터 비롯되겠는가.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아마 제일 우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신뢰가 아닐까싶다. 사회관계에서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이러한 가족관계에 국한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회단위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이것이 핵심적인 덕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2월 25일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모처럼만의 "문민정권"이 "비교적 공정한"선거의 과정을 통해서 탄생하게 되었다 하여, 그나름의 의미부여를 받는 가운데 일정한 기대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쏟아 놓은 숱한 약속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주목을 가리킨다.
 
"비교적" 공정했다고는 하나 권력과 돈의 위력을 여전히 실감할 수 밖에 없는 가운데, 주권자인 국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갖가지 불법행위들이 적지 않게 저질러졌던 지난 선거에서 우리는 또 한차례 풍성하고 현란한 말잔치를 경험했던 터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번쯤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할 일이 있다. 그러한 약속들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약속들을 남발하는 정치인과 정당들에 대해 우리 자신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혹 "선거과정에서 으례히 공약이란 난무하게 마련이고, 그걸 다 지키겠다는 정치인이 없음은 물론 듣는 측면에서도 그렇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과연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공약을 차분하게 비교하고 그걸 중심으로 후보자를 선택하였던가 하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 국민 모두가 그간의 반복된 경험을 통해 공약이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란 데 대해 이미 잘 길들여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거를 거치면서 차지 대통령과 그 소속정당이 내놓은 사회복지 관련 약속들 가운데 크게 눈에 띄는 것들만 열거하더라도, 그 실현가능성과 현실적합성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세부적인 문제에 앞서 우선 "안정"과 "개혁"을, 그리고 "작은 정부"와 "통일 복지국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이 됨직하다. 용어의 의미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인정하더라도 이들 두 쌍의 개념들은 종종 양립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사실 "안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측들로서 현상유지에 역점을 둘 수 밖에 없다. 변화에 대한 요구야말로 안정을 저해하는 가장 으뜸이 되는 이유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그래왔다는 이야기이다. 소소 지배세력의 논리에 복종하는 것이 안정된 나라발전의 길이고, 거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곧 불안의 요인이 된다고 말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 가운데 안정은 마치 획일성과 일사분란함 속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일말의 기대나마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의미에서의 안정,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의 원리가 관철되고 변화에 대한 열망이 수용되는 범위 내에서의 안정은 객관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그런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국민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개혁을 조건으로 한 안정은 가능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한편, 역사적으로 복지국가의 발전은 "작은 정부"에 대한 반명제로서 이루어져 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의 책임을 구체화하는 가운데 그것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근자의 이른바 복지국가 위기론 이후 보수적 정치세력이 부각시킨 대안이 바로 작은 정부였음을 상기해 보자. 결국 이런 의미에서의 작은 정부가 복지국가에 갈맞는다고 보기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다만, 그간 우리 사회의 정부가 무소불위의 막대한 권한으로 국민의 기본권마저 침해하는 사례들이 많았음을 시인하고, 이를 지양하며 보다 민주적인 정부로서 불필요한 권한과 기구를 축소하고 지방자치제를 앞당겨 정착시키겠다는 의미에서의 작은 정부는 더 없이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민자당의 당시 공약들을 몇가지 더듬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들 가운데 노인과 장애우 등 취약계층의 복지문제를 심의하고 자문할 대통령 직속 대책위원회를 두겠다든가, 사회복지직렬을 신설하겠다든가, 고용보험제를 도입하겠다든가, 남북한 사회복지문제 비교연구기구를 신설하겠다든가 하는 등의 의욕은 일단 그 귀추를 주목해 볼 만하다. 그밖에 영역별로 몇 가지씩의 점진적 개선 방안들도 제시하고 있어 미흡하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복안의 대부분은 획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정책과제로서 수년간 검토되어왔던 것들로서 제한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연전에 통합적 의료보험제도가 국회를 통과하고서도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로 사문화된 채 아직도 논쟁의 소재가 되고 있는 조합방식의 의료보험제도를 견지하겠다든가, 다른 경쟁정당에 비해 개혁의 폭을 좁게 잡고 있다든가, 공약의 현실화를 위한 예산등의 구체적 대안제시 부문에서 확신을 주지 못한다든가 하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제시했느냐 하는 것 이상으로 그것들을 "어떻게"지켜 나갈 것이냐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오죽하면 정치인들이란 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통설처럼 되어 버렸겠는가.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고 그것을 책임있는 행동으로 보여 줄 줄 아는 이가 정치하는 그런 사회가 정말 아쉽다.
 
"신한국"의 건설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60년대 이래로 "조국 근대화," "정의사회," "선진 복지사회," 그리고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에 현혹되어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러면서 이같은 정치적 구호의 허구성을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다. 이제 더 이상 "양치는 소년"이 되지 말고 신뢰로써 권위를 인정받는 정치 그리고 정치인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주권자인 우리 국민 자신이다. 이제부터가 우리 차례이다.

글/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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