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장애우가 아니라, 능력이 다른 사람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장애우가 아니라, 능력이 다른 사람

본문


장애우가 아니라 능력이 다른 사람
"Not Disabled, But Differently Abled"

 

서양에서 생활을 해 본 사람에게 가장 먼저 와 닿는 것은 장애우를 배려하는 끔찍함이다.
장애우를 위한 주차공간에 비장애우가 주차를 한 경우의 벌금은 다른 교통 위반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거나, 모든건물, 시설물마다 턱을 없애고 엘리베이터 설치하여 장애우가 쉽게 다닐수 있고 시내버스마다 장애우가 휠체어를 타고 그대로 승차할 수 있는 시설을 해두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애우를 위한 시설들과 장면들을 목격한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오르는 시설이 작동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승객들이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 인상적이다.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러한 불편을 감수하고 조용히 기다려줄까?
10년도 훨씬 더 된 일이긴 하지만 나와 사법연수원동기인 한 친구가 있었다. 연수원을 수료한 후 법관을 지망하였는데 거부되었다. 장애우라는 이유에서였다. 옆에서 보기에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 친구는 그렇게 심각한 정도의 장애도 아니었고 판사 업무를 수행하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 어려운 사법시험까지 합격한 노력과 능력을 갖춘 그였다. 결국 장애우단체의 항의와 언론의 비판을 받은 후에야 대법원은 그에게 법관임명장을 수여했다.
다른 곳도 아닌 대법원에서 그 정도의 한심한 차별의식과 비인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법조계에 대한 환멸감이 엄습하였다. 미국 뉴저지주 최고재판소가 장애우 인권과 관련한 판결에서 사용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보라. 그 곳에서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 정도의 인간에 대한 이해, 장애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판사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세기와 문화가 이웃사람들에게 자행하는 가혹행위를 늘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한 그룹의 선천적 특징 또는 개인적 장애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에 광범한 차이를 부과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혐오감을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우들에 대한 대우가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장애우에 대한 응시제한과 합격거부를 금지하는 교육법이 제정되고 장애우 의무 고용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애우는 여전히 고통속에 산다. 길을 나가면 "절해고도" 이다. 길을 건너고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 쇼핑을 하고 영화구경을 할 수 있는 일은 장애우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을 우리는 길거리에서, 전철에서, 관공서에서 만날 수 없다. 고용의 문은 여전히 좁고 연금, 주거보장을 비롯한 복지의 혜택은 아예 없다. 차별과 가난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 세상이 장애우들에게는 여전히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다.
미국 민권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1990년의 미국인을 위한 장애인법(ADA) 의 제정이다. 부시대통령은  이 법의 공포에 서명하면서 "이제 차별과 소외의 부끄러운 벽이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고 선언하였다. 이 법이 발효되면서 장애우는 종래 누리지 못한 많은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예컨대, 전화회사들은 청각장애우와 언어장애우를 위한 특수통역서스를 제공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장애우들은 공중전화를 걸 때 타이핑을 함으로써 교환원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교환원이 이를 수신인에게 말해준후 수신인의 응답을 다시 타이핑, 장애우들이 알도록 함으로써 전화사용이 가능해졌다. 현금지동인출기 역시 점자를 이용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고용주들은 취업희망자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 이력서에서 당사자의 건강상태에 대한 문항을 삭제하는 등 장애우에 대한 배려와 사회활동 참여의 기회를 넓히고 있다.
이런 법제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장애우에 대한 사회보장과 취업기회보장의 정도는 영국이나 독일에서도 못지 않다. 나아가 장애우에 대한 관심은 국제사회로 확대되고 있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10년을 유엔은 "장애우를 위한 10년"(AUN Decade for the Disabled)으로 설정했다. 세계적 행동프로그램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그핵심은 장애우가 비장애우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장애우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는 것이었다.
차별금지, 직업, 주택, 연금, 교통, 의료, 여가와 사회적 활동 등 모든 영역에서의 최저 기준들이 제시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의 많은 나라가 그 기준을 채용하였다. 캐나다에서는 헌법을 개정하여 장애우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켰을 정도였다. 그사이에 오스트레일리아 , 뉴질랜드 등 장애우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나라가 줄을이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하는 4천5백만의 장애우들이 이제 더 이상 장애우라는 이유만으로 비장애우와 달라야 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서양이 처음부터 장애우를 존중하고 우대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 철학이나 유럽의 예술에서 장애우에 대한 끊임없는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  중에서도 장애는 미신과 거부와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유럽에서 장애는 악마와 마녀와 연결되었다. 마틴 루터조차도 악마를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서 발견했다고 했다. 영국의 튜더왕조와 스튜어트 왕조 당시 장애우를 조롱하던 죠크를 분석한 책이 출판되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거로부터 단절하고 유럽은 세계 어느 곳보다 장애우 차별을 금지하고 이들을 보호하는 법제와 관습을 만들어왔다. 바로 문명의 진보이다.
장애우에 대한 대우의 정도야말로 그 사회의 문화적 척도가 되고 그 시민의 인간성의 기준이 된다. 장애우가 비장애우와 마찬가지로 대우받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는 그만큼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고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장애우가 차별 받고 고통당 하는 사회는 덜 문명화되고 비인간화된 곳이다.  더 노골적이로 말하면 야만적인 사회이다.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고통당 하는 이웃을 위해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살아볼만한 사회이지 않겠는가? 외국의 장애우운동단체들에서는 "장애우"(disabled)라는 표현  대신에 "다른 능력자"(differently abled)라는 표현을 쓰도록 요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인간이 지어낸 말 가운데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장애우에게 줄지도 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없애려는 그 따뜻한 마음,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실제로 전혀 다름이 없다는 당연한 논리를 표현한 그 멋있는 발상에서 우리는 인간의 신뢰를 읽는다. 우리말에서 거기에 상응하는 적절한 말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다, 장애우들은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비록 손과발,  또다른 신체상의 장애를 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다른 분야에서 이들의 능력은 결코 비장애우보다 못하리라는 법이 없다. 총체적으로 보면 누가 능력이 더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구태여 영국의 천문학자 호킹의 예를 빌지 않더라도 장애우가 비장애우보다 탁월한 능력을 지녔거나 역사에 더 크게 공헌한 경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장애우 담당 장관 니콜라스 스코트는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악의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하였다. 우리의 경우 장애우에 대한 무지와 악의가 함께 상존하고 있다. 너무나 무지한 것도 죄이다. 무지로써 우리가 지금껏 장애우들을 학대하고 차별한 죄가 씻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도 이제 문화지수, 문명지수를 높여야 할 때이다. 삶의 수준이 확대되고 이웃의 고난을 고려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장애우들의 한숨소리가 하늘을 뒤덮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글거리는 "배부른 돼지들"일 뿐이다. 장애우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사회는 심각한 장애가 있는 사회이다. 우리도 미국처럼 강력한 "장애우복지법"을 만들어 그 부끄러움을 덜어보자.

박원숙/ 변호사, 현재 "참여연대"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성자박원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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