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거지를 뿌리치는 손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거지를 뿌리치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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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거지를 뿌리치는 손

 

 

  나는 지난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어린 시설 우리 집에 거지들이 찾아오면 증조할머니가 사랑채 마루로 불러들여 밥상을 차려주고 "많이 자시라"고 높임말로 권하던 일이 지금도 눈데 선하다고. 그리고 요즈음 어느 집 문간에 거지가 오면 문을 열어주기는커녕 개를 풀어 쫓아버릴 것이라고.
  내가 그런 글을 쓴 까닭은 너무나도 메말라 가는 인정을 탓하려는 것이었다. 도시화니 핵가족화니 하면서 정작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우애는 삭막해지기만 하는 세태가 너무나 안타깝다는 뜻이었다. "글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바로 그 글에 대해서는 자신이 입에 발린 소리를 한 것 같아서 지금 낯이 뜨거워진다. 왜 그런가?
  나는 93년 가을부터 베트남을 여러 번 갔었다. 신문을 위한 출장여행도 있었고, 베트남 한인 2세와 함께 가기 운동을 추진하러 간 적도 있다. 그런데 베트남은 수십 년 동안 전쟁에 시달린 나라라서 아주 가난하다. 그러니 도시의 거리에는 거지가 무리를 이루어 다닌다. 베트남에 처음 가는 한국인들에게 여행사 직원이 맨 처음 하는 말은 도둑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멀쩡하게 생긴 소매치기도 있지만 동냥질을 하거나 행상을 하는 척하면서 소매치기나 날치기를 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나도 그 나라에 처음 갔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 그래서 거지가 다가와서 손을 내밀면 얼결에 호주머니부터 움켜잡았다. 그러다 보니 젖먹이를 안고 구걸을 하거나 땅바닥을 손으로 걸으면서 눈으로 애원을 하는 장애우가 다가와도 짐짓 눈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내가 애초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호치민시의 번화가에서 눈망울이 순한 어린이가 깡통을 내밀면 잔돈을 주기도 하고, 잡상인들의 물건도 몇 점씩 팔아주었다. 그런데 정말 기가 질리는 일을 당하고 나서는 손이 움츠러들어 버렸다. 어느 날 중부 해안에 있는 다낭의 호텔을 나서는데, 한 20대 여자가 칭얼거리는 아이를 내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심결에 5천동을 주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4백원쯤 되는 돈이다. 그런데 그게 베트남 거지들에게는 아주 큰돈이라고 한다. 그 여자는 춤을 출 듯 기뻐하면서 어디론가 달려갔다. 어렵쇼! 이게 웬일인가? 미처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거지들이 줄을 지어 내 앞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막무가내 몰려드는 것 아닌가. "저 여자는 주고 왜 우리는 안 주느냐"는 것이다. 나는 5천동 짜리 다섯 장인가를 나누어주고 나서야 그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베트남의 어디를 가도 거지에게는 한푼도 안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나는 지난 여름 베트남에 다시 갔을 때 도 그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썼다. 그림엽서를 내미는 어린이나 처녀에게는 손부터 내젓거나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아기를 안거나 업고 동냥질하는 여자 중에는 남의 아기를 훔쳐다가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친구한테 들은 뒤부터는 거지들을 더 차갑게 대했다. 그러다 보니 팔이나 다리가 잘린 거지들도 외면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로 돌아온 뒤 어느 날 스스로에 대해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런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었다. "전쟁터에서 총알이나 파편을 맞아 장애우가 된 그 사람들, 그리고 고엽제 피해로 고생하는 이들을 모른척하면서 불우한 한인 2세들과 함께 가는 운동을 하겠다고 나서다니!"
  다른 한편으로, 나는 열심히 못 돕지만 이 "함께걸음"을 펴내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이사라는 직함도 갖고 있지 않은가. 얼굴을 달구던 뜨거움은 이내 모닥불 덩어리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들에게 5천동씩을 준다해도 하루 열 명이면 5만동, 우리 돈으로 겨우 4천원 아닌가. 그리고 여권과 중요한 소지품은 숙소에 두고 다니면 되지 않은가. 여비를 절약해서 쓰면 하루에 4천원 아니라 1만원도 쓸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거지와 장애우를 보면 몸부터 사리고 그들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부끄럽지만 나의 고백이다. 눈길을 남들에게로 돌려보면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4백만이 넘는 장애우에 대한 "비장애우"들의 시각이 그렇고, 기댈 곳 없는 노인과 고아들에 대한 인정이 또 그렇다. 특히 큰 사건과 사고가 잦았다는 올해는 한가위에 그들을 찾는 발길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관청이나 단체들이 형식적으로 열던 위로 잔치도 보기 힘들었다니 사회 전체가 온통 사막이 된 듯하다.
  가난은 정치와 사회와 경제의 산물이다. 장애는 선천성을 포함해서 한 사회가 총체적으로 끌어안아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본적 인식부터 틀이 잡혀있지 않다. 거지는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넉넉한 사람들의 눈길에는 경멸과 조롱이 담겨있다. "제가 게으로고 못나서 그런걸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뜻이다. "장애우는 부모를 잘못 만났거나 운이 나빠 사고를 당해서 그렇게 되었는데 누구를 탓하는가?"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최저 생계비를 벌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조심을 해도 갖은 재해를 피할 수 없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정치․경제적으로 체제가 민주화되고, 평등을 지향하는 이념을 존중하지 않는 한, 가난과 장애는 우리 곁을 저절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 사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 늘 이렇게 다짐해야 한다.
"나도 가난해 질 수 있고, 장애가 언제 내게 닥칠지 모른다"고.

 

 

글/ 김종철(한겨례신문 논설위원이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이다.)

작성자김종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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