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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소리]장애해방을 위한 언론의 여론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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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의미는 주로 언론활동에 의해서 중계되고 이해되어진다. 아무리 심각하고 절실한 문제라 하더라도 언론이 다루어주지 않으면 국민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으며, "소문"에 그치는 잔류여론으로 허공을 떠돌다가 흐트러지고 만다. 그래서 언론은 사회의 신경이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연줄이라 할 만하다.
 장애우 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대개 일회성 기사에 그치고 말거나 "끼워넣기식"이다. 우선 언론은 장애우 문제를 어두운 면으로 치부하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의 흐름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다. 장애우에 관한 기사는 장애우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장애우 일개인의 미담이나 장애극복수기에 초점이 가 있거나 장애우 문제에 대한 비장애우 연구자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연구결과물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장애우는 그저 단순한 동정심이나 호기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장애우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파도를 감지하고 있는 보도물은 그렇게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 까닭은 아마도 일반 언론의 장애우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장애상태에 있거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그릇된 편견이 언론인의 뇌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말하자면 일반언론이 장애우를 함께 사는 이웃으로 보기보다는 "다른 별란" 사람들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눈에 쉽게 띄는 신체장애우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더욱 더 심한 고통과 불만을 갖고 있는 다른 장애에 관한 부분을 간과해 전시행정에 급급한 사회복지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우 보도 부문에서까지 상업적 특종의식이 보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필자는 장애우를 보는 일반 언론의 시야를 트이게 하고 관점을 재정립해주도록 부탁하는 뜻에서, 장애우를 분류하는 기준에 대해서 그리고 장애우 보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대해서 몇 가지 얘기하고자 한다.
 장애우를 정신장애와 육체장애로 나누는 것은 언론이나 행정당국의 편의주의적 분류이다. 이 이분법적 분류는 장애우에 대한 차별의식을 조장하는 요인이 된다. 다리 하나에 장애가 있다든지 눈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극복되지 않는 장애는 없다. 정신장애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육체 가운데 하나인 두뇌 부분에 고장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명칭을 붙인다면 "두뇌장애"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두뇌 특히 뇌수는 기능이 고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뇌수는 기능이 고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이 "두뇌장애우"에 대해서야말로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이 용기를 갖게 하는 원천인 정신력이 튼튼할 수 있다. 그러나 두뇌 부문의 장애는 마음의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만든다.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가장 약한 이웃들에게 우리는 평등한 인간으로서 대우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때이다.
 
얼마전 고 황인철 변호사의 미담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황변호사는 자폐증에 걸린 아들과 다른 많은 자폐아들이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마련하여 장애아교육에 힘썼고, 그들이 평생동안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자신의 사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한 민권변호사의 삶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뇌성마비 후유증은 물론이지만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도 대부분 두뇌의 어느 부분엔가 이상이 있을 것이다. 놔성마비 후유증으로 장애가 남은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나 자폐증 등에 걸린 아이는 "정신지체아"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지만 이들은 그저 "바보"로서 보호받아야 할 뿐이다.
 이들에 대해 사회는 너무 잔인하다. 이들은 커가면서 가정의 보호만을 받을 수 없다. 특수학교나 조기교육실 등 특수교육 시설에서는 이들을 돌보는데 손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교육을 거부하기 일쑤다. 몇몇 보호시설에 이들을 맡기자면 수천만원의 기부금을 내야 하는 곳도 있고 이들 보호시설은 외딴 산간마을에 쳐박혀 있어 일반 사회와 유리되어 있다.
 이곳들에 자식을 맡긴 부모들이 면회를 다녀오면 그 어떤 천형(天刑)보다도 가슴져미는 마음의 병을 앓는다. 그래서 부모들은 말한다. 두뇌장애우 서너명과 지체장애우 몇몇이 함께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장애우의 집"을 도시 근교에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법은 어떻고 가능성은 어떠냐고. 물론 필자가 이에 답할 처지는 못된다. 어떻든 장애우 보호를 위한 대책은 그들에게도 진정한 인간사랑이 나눠질 수 있도록 짜여져야 한다는 점이다. 특수학교에서조차 장애정도가 가벼운 아이들을 찾아 입학시키는 "선별과정" 관행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의 장애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이데올로기적 장애를 드러내고 있는 자본주의 언론매체의 일상적 편견 때문에 크게 잘못되어 있다. 스스로를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전문언론인들은 자기의 입지에서 세상을 볼 뿐, 그것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본질을 꿰뚫어 일반인에게 진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가진 기존의 인식틀에 오늘의 장애우 문제를 뜯어 맞춰 장애우에 대한 일종의 허위의식을 만들어 이를 널리 유포시킨다.
 
가치창조의 원천으로서 완전한 노동력에 대한 평가가 새삼 높아지는 시대에 언론은 오히려 상처받은 육신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인간 사랑을 고취시켜 줄 보도 물들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축복입니다." 음성꽃마을 어귀의 돌비석에 적힌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글/유일상

 

작성자유일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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