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그대가 단지 개성이 강한 몸을 가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그대가 단지 개성이 강한 몸을 가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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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당일 오후에 석방된 뒤 집으로 돌아와서 쓰러져 오열하던 유순자 씨, 누구도 그 처절한 울음을 막을 수가 없어서 난감했건만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다. 많은 시간의 보호 및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낮은 곳에서 욕심없이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순한 눈빛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울음을 참지 못하던 유순자 씨를 수원 구치소에서 처음 만나던 날, 수천만 원짜리 모피 코트를 걸치고 기아로 죽어 가는 난민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뇌성마비 및 척추만곡증의 중복 장애우이며 생활보호 대상자에다 남편의 습관적인 폭력의 피해자로 살아온 유순자 씨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쩔쩔매기만 했다. 두려움 때문에 솔직히 한편으론 도망치고 싶었다. (이 점은 평소 우리가 장애우와 너무 거리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란 걸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유순자 씨 사건으로 현재의 가정폭력 대응처리 및 지원체계의 미비점과 여성 장애우에 대해 전무한 사회 복지 체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유순자 씨의 외로움이다. 자신은 단 두벌의 옷을 가졌지만 구걸해온 돈으로 남편에겐 금반지와 개량한복도 마련하며 행복해 했던 유순자 씨. 그가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그가 술주정뱅이라도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한없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유순자 씨. 그로부터 극심한 폭행을 당할 때만큼은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경찰이 잡아가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막아섰던 것은 유순자 씨에게 최씨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의미를 부여할만한 최초의 개인적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상 지능을 가졌지만 장애우라는 이유로 유순자 씨는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조차 빼앗겼다. 식구들도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해 그냥 숨어 지내다시피 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독신 구걸 인생을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유순자 씨에게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배려하지 않았으므로.
유순자 씨와 만나고 대화하면서 처음 구치소에서 만나 쩔쩔매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유순자 씨는 개성이 강한 몸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단지 개성이 강한 몸을 가진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서른 아홉 해 삶이 이토록 힘들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에게 잔인할 정도로 배타적인 사회에서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왔건만 이제 살인자란 죄의식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비장애우인 나는 이 사건으로 깨닫게 되었다. 장애우가 한 명도 없는 학교, 장애우가 한 명도 다니지 않는 직장은 공공기관이라 이름할 수 없음을. 또한 여성단체와 장애우 단체가 여성장애우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반쪽 짜리 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붙임: 처음부터 석방 뒤까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던 14단지 부녀회장, 욕쟁이 아줌마 채인옥 씨는 “함께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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