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바보들의 행진"과 꿈 > 대학생 기자단


[징소리]"바보들의 행진"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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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그다지 반기지 않는 일은 "불편한 일"일 것이다. 때문에 장애우에 대한 편견 역시 불편함에 대한 우리의 공유된 두려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편리함이 이 시대의 우상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어떻든 지난 추운 겨울날 필자 역시 예의 불편한 느낌을 유독 강하게 느껴야 했던 날이 있었다. 하루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생면부지의 이웃을 만나야 하는 편치 않은 일을 떠맡게 되었던 것이다.
 직장 일을 오전 중에 마친 다음 점심을 함께 나누기로 했던 언론계의 후배 두 사람이 불현듯 전화를 걸어왔는데 또 다른 여성언론인과 함께 합석해도 좋으냐고 물어왔던 것이다. 필자는 기이한 부담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과 점심을 나눈 다음 서면과 전화통화로만 간간이 연락을 취해오던 어느 여성 장애우와 만나서 함께 차를 마시기로 약속해 두었던 터였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후배 언론인 세 사람과 필자가 만나서 식사를 나누며 이야기하는 동안 필자의 편치 않았던 예감은 적중했다. 그러니까 필자와 안면이 없는 제3의 여성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이다.
 외견상 건강에 전혀 하자가 없어 보이는 그 여성 후배는 산후조리를 잘못한 탓에 육신의 건강이 상당히 나쁜 편이라고 하며 육체의 고통을 호소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육체가 아닌 심리 상태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최저한도의 기대치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남편의 삶의 자세에 대한 실망과 낭패감으로 인해 생활에서 느끼는 감시와 기쁨을 잃어버린 채 공허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 역시 한때는 아니 오랜 기간 동안 내 자신의 모든 것, 내가 처한 여건과 상황에 대해서 원망하고 감사하지 않고 생을 거부했던 "전과범"이었기에 진심으로 충고했다.
 "지금 이 순간 후배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을 근사한 직업 학벌 자녀 그리고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젊음, 그 정도의 건강에 대해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는 없는지요. 생에 대한 감사는 당사자는 물론 자신이 처한 상황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준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아프게 하는 이들 그리고 상처를 주는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을까요?"
 "저더러 주어진 삶에 대해서 감사하라 구요? 그 일을 하기에는 제가 너무도 아픕니다. 저를 아프게 하는 이를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구요."
 그들 언론계의 후배들과 헤어진 다음 필자가 썼던 최초의 졸저인 장편소설『베로니카의 노래』에서 나름대로 규정했던 장애우에 대한 정의를 새삼스레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육이오 동란 중 유도탄을 맞은 탓에 한쪽 팔과 다리에 장애를 입은 여자 주인공에게 어느 맹인목사가 들려주는 장애우에 대한 정의, 그것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필자의 정의였었다. 필자는 그 소설에서도 그랬고, 요즘에도 굳게 믿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신체의 장애 여부에 따라서 정상인과 장애우를 구별해서 정의하고 있지만 나는 자신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며 감사할 수 있는가의 능력여부에 따라 정상인과 장애우를 구별짓는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이웃은 물론 가족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키우지 못하고 이웃에 대한 적대감과 원망의 족쇄에 묶여 있는 이들이야말로 "영혼의 휠체어"에 묶여 살고 있는 "영혼의 장애우"인 것이다.
 필자는 그 날 언론계의 후배들과 헤어진 다음 곧바로 다음 약속장소를 향해 떠났다. 이번에 만나야 할 이웃은 신경근육계통에 이상이 있어 30여년간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다가 의료기술과 의료약품의 발달에 힘입어 치료를 받고 작년 가을부터 비로소 걷기 시작한 30대 초반의 한 여성장애우였다. 편지와 전화통화만으로 사귀다가 난생 처음 얼굴과 얼굴로 대면해서 만나는 30대 초반인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은행정문 앞에 다가갔을 때 그녀의 동행인으로 함께 나와준 건강한 청년 한 사람과 한 여대생과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네 사람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제과점을 찾아 그녀의 팔을 함께 부축하고 미아리의 보도를 걸어갔다. 필자는 그들과 같이 걸으며 불현듯 희죽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바보들의 행진"을 벌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탓이었다.
 열 살난 소녀처럼 발육이 더딘 서른살 여성장애우의 나들이를 위해 그들의 시간과 사생활을 선뜻 선물로 내어놓은 어느 신학대학 지망생 청년과 여대생, 생면부지인 이들이 만나서 하하대고 웃으며 함께 얘기를 나누는 치기 만만한 모습, 우리는 그 순간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들 어김없는 바보들일 터였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큰 축복인 줄 몰랐다며 넘어져 뒹굴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기들의 걸음마의 의미도 깨닫게 되었노라는 그녀의 말이 필자를 숙연하게 했다. 그녀는 건강한 여자였다. 삶과 생명에 대한 감사로 가득차 있는 그녀는 적어도 그 순간 우리 네 사람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우리 일행은 계속 그녀의 얘기를 듣고 많은 얘기를 나누며 각기 다른 독특한 삶에 대해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세 사람은 장애우들과 함께 소록도로 여행을 가는 봉사모임을 통해서 서로 친하게 되었노라고 얘기했다. 그들은 또한 며칠 내에 인천에서 있을 그들의 모임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될 계획도 일러 주었다. 물론 그녀는 그 여행을 마친 뒤 장애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일행과 헤어져 돌아오며 많은 생각 속에 잠겼다.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귀하고 아름다운 살아있는 삶의 현장을 목격한 감격 또한 컸다.
 걷지 못했던 그녀에게 걸음을 돌려준 어느 사회복지의료기관의 도움, 조금이나마 더 고통받는 이웃의 손발이 되어주기 위해 시간과 배려를 선물하는 숨어 있는 익명의 봉사자들의 이웃사랑 그리고 자신의 고난을 이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그녀의 밝은 생의 의지와 신앙,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녀에게 더욱 힘찬 행진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함께 걷는 "바보들의 행진"과 꿈 역시 더욱 활기찬 미래와 열매를 향한 전진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글/안혜성

작성자안혜성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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