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으며] 부끄러움에 대한 단상 > 대학생 기자단


[창을 닫으며] 부끄러움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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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흔히 말하는 "서울의 봄" 시절 부끄러웠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그 해 3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늘 꿈꾸던 "좋은 대학에의 입학이라는, 삶의 유일무이한 가치로부터 해방된 삶이 아니라 이 질곡의 시대, 대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어떤 삶을 준비해야 하는가?" 라는 새로운 시대적 화두였습니다.

당시의 대학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민주화 물줄기를 그 누구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인식아래 고뇌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신입생인 저도 자연스레 이런 흐름에 동화되었습니다. 사회민주화투쟁이 한창이던 5월 15일 서울역에서 열린 수많은 군중들의 집회를 뒤로 하고 제가 다니던 대학의 학생들은 다음 날로 예정된 "병영집체훈련"에 응소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대학에는 고등학교 때의 "교련"과 같은 군사훈련과목이 1, 2학년에도 개설되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학년은 흔히 "문무대"라고 불리는 곳에서 "병영집체훈련"을 10여일 넘게 받아야 했고 2학년은 "전방부대 입소"를 이삼일간 필히 다녀와야 했습니다. 이런 훈련에는 각각 1학점의 학점이 부과되었습니다.

5월 16일 집체교육에 입소하여 훈련을 받은지 사흘째 되던 "5월 18일", 사회와 격리된 훈련소에 있던 저희들도 비상계엄이 확대되어 모든 대학이 휴교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 날 오전 강당에서의 정신교육을 마친 후 같이 입소한 대학동기 2,500명은 "모든 대학에 휴교령이 발령된 바,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훈련은 대학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것이므로 휴교령으로 모든 대학에서의 학문연구와 교육이 중지된 시점에서 우리의 훈련도 당연히 중지되어야 하며 우리는 퇴소하여 귀가조치되어야 마땅하다"며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훈련소 연병장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훈련소 당국도 매우 당황하여 시간을 끌었고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 온 대학의 학생처장과 총장은 바깥세상의 상황을 우리에게 어렴풋이나마 전하려고 애쓰시며 훈련에 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득하고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젊음은 이를 비겁한 자의 회유쯤으로 치부하며 퇴소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급기야 출동한 계엄군 수백명이 저희들 주위를 완전히 둘러쌌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들은 나중에 흔히 말로만 듣게 된 대검도 M16소총에 착겁하고 있었습니다. 훈련소 측은 포위망을 계속 좁히며 저희들에게 훈련소의 막사로 돌아가면 문제삼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선무방송을 하였지요.

처음 저희들의 치기는 이를 무시할 수 있는 만용이 있었지만 포위망이 20~30m쯤으로 좁혀지고 군인들로부터 공포의 전율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결국은 농성의 뒷줄에서부터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우루루 일어나 막사로 도망치듯 피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출동한 군인들은 훈련소에 몇 시간 더 머물다가 철수했고 각 학과의 과대표를 맡고 있었던 동료들은 누구가에게 불려가 공포가득한 분위기에서 약간의 구타를 당하고 퇴소할 때까지 성실한 훈련을 이행할 것을 다짐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 후 저희들은 지레 겁을 먹어서인지 너무도 착하게 훈련에 임했고 무사히(?)퇴소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퇴소후 훈련소에 있었던 저희들이 감히 상상하기 힘든 엄청남 폭력이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또한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휴교령은 가을까지 계속되었고 그이후 병영집체교육에서 있었던 저희들의 비겁함에 대해서는 누구도 꺼내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웠습니다. 반드시 비겁함이라 말하기는 어려운 극단의 상황인지 모르지만 그때의 일은 제 가슴 속에 스스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되었고 삶의 멍에로 남았습니다. 그 섣부른 다짐 끝에야 조금은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두려움으로 인한 도피를 변명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는 본래 저 같은 범부에게는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으니까요.

진정 부끄러운 것은 날이 갈수록 현재의 저 자신에게 일상화되어 나타나는 문제의식의 상실이며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무감각, 책임회피입니다


글/ 정병오 (서일대학 사회복지과 교수)

작성자정병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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