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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우 일상다반사

나, 어린 시절에 말이쥐

본문

누구나 세상을 살아면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살았지", "참 아쉬운 시간이야" "다시 돌아간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 그때 그 시절 또래와의 추억들을 기억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도 하죠. 그런 사람들의 미소 띤 모습을 보면 같이 듣는 사람들도 즐거워진답니다.
하지만 일상의 경험들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죠. 저 자신조차도 그렇고요.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저는 가장 순수하고 장난 많던, 철부지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가볍게 상상하면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요.
또한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이 얘기는 장애우인 제 자신의 추억담이지만, 장애우에게는 도전과 극복을 목표로 하는 힘든 삶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론 이렇게 재미있게 살아온 시간들도 있구나하는 평범한 감정과 시선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일곱 살 무렵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삼육재활원"이라는 시설에서 생활을 했다. 그 중에서도 뇌성마비 친구들만 따로 있는 뇌성마비병동(시설)에서 생활을 했다. 그 곳은 아이들이 맘대로 다닐 수 있도록 바닥에 고급 장판이 깔려 있고, 휠체어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절한 교육과 물리치료를 시간에 맞춰 받을 수 있는, 당시 최고의 환경과 조건을 갖고 있던 시설이었다. 그래서 시설에 있던 장애우 아이들에게는 나름대로 술래잡기, 소꿉장난, 찜뽕야구, 얼음 땡 등 우리들만의 몸짓으로 놀이를 즐기면서 생활했던, 자유로운 추억의 공간이었다. 그 당시 내 기억 속에선 시설 생활이었지만, 부모님과 떨어진 것이 슬프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또래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던 곳이어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 추억 속, 몇 가지 재미났던 사건들을 풀어보고 한다.

난 당시(80년대 초) 열 한 살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병동에서는 의식주 생활이 혼자 가능한 친구들은 각각 남자방과 여자방으로 나눠 생활했다.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던 금요일!
그 날은 부모님들과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시간이었다. 부모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온 음식들을 먹고, 마음 놓고 그리웠던 부모님을 볼 수 있는 시간. 너무나 따사로운 오후, 소중한 상황에서 난 우연히 한 여자 친구의 얼굴에 음식물이 묻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에 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여자방 낙서하기"를 모의했다. 그리고 곧바로 낙서에 필요한 매직 두개와 후레쉬를 준비했다. 그리고 여자친구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취침시간 9시를 기다렸다. 마침, 당시 삼육재활원에서는 토요일에 학교를 가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이었다.
나와 친구는 나름대로 정말 치밀하게(?) 준비했다. 당시 유행했던 007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문을 잠기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껌을 활용하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실제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정말로 취침 전에 여자방 문틈에 몰래 씹은 껌을 붙여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지만, 그 때는 성공하리라 굳게 믿고 밀어붙였다. 나와 친구는 그 다음날 들려올 여자 친구들의 높은 비명 소리와 낙서된 얼굴을 가리고 세면장으로 뛰어갈 친구들을 상상하며,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드디어 밤 12시, 우리가 기다린 운명의 시간은 오고야 말았다.
우리는 계획대로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여자방 문을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당겼다. 정말 껌이 효과가 있었는지 놀랍게도 문이 열렸다! 우리는 여자방에 살며시 침입해 친구들의 귀여운 얼굴에 다양한 모양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바짝 긴장하고, 터져나오는 웃음도 가까스로 참으면서! 드디어 열 명 정도의 여자친구들 얼굴에 낙서하기 성공!!
운명의 다음날, 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전날 밤 상상했던 것처럼, 그 역사적인 장관의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는 점심과 저녁을 먹지 못하는 중벌뿐만 아니라 3시간 동안 손들고 있는 악몽의 순간도 인내해야했다.
그 악몽의 기억이 사라질 즈음, 나는 또 다른 사건을 만들었다.

작전 이름은 "목욕탕 문을 열어라!" 
고백하자면, 이 사건의 배경은 만화책을 모방한 장난이었다. 이번엔 나는 독자적으로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또 껌을 활용했다. 그리고 매주 이틀에 한번 남녀가 번갈아 단체 목욕하는 시간에 장난치기로 했다. 나는 여자친구들이 목욕하기 전날, 미리 목욕하는 곳과 옷 갈아입을 곳에 껌을 붙이고 다음 날을 기다렸다.
운명의 그 날, 비가 내렸다. 그래서 조금 빨리 여자아이들의 목욕이 시작되어 목욕하는 동안에는 문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보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난 열 명의 여자친구들이 했던 행동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문을 확 열어 제꼈을때!! 여자친구들은 뒤죽박죽 서로 엉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친구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수건과 옷, 물건 등을 나에게 막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여러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믿을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모든 사건이  실화랍니다. 제가 이 글로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80년대 당시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또래의 비장애 친구들과 함께 놀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장애 아이들과 분리는 되어 있었지만, 시설 안에서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아이다운 모습과 행동에는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단지 놀이 방식의 차이가 있었던 것뿐이죠.
많은 사람들이 장애우의 삶은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고만 짐작합니다. 물론 장애우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것에 따라 상황은 너무나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새해부터는 장애우의 삶을 들여다 볼 때는 삶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관계 맺기와 사회적 관심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글 오영철(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의료센터 간사)

작성자오영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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