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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소리]함께 풀어야 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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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일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기풍(ethos)조성이 과제라고 답하고 싶다. 다시 이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다각적인 사회제도를 통하여 장애우에 대한 일반의 의식변화를 주도하는 거시적 차원의 노력과, 개개인이 장애우에 대한 긍정적 체험을 넓혀 나가는 미시적 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리라고 답할 수 있겠다. 더 이상의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문제에 관심을 지닌 각자의 몫일 것이다.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웬일인가 싶게 승객이 적었던 덕분에 여유 있게 자리를 잡고 흐뭇한 기분으로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옆 칸에서 지체장애우 한 사람이 가방 하나를 어깨에 걸친 채, 기둥 손잡이에 의지해서 자리를 이동해야 할 정도로 심한 파행을 하면서 건너왔다.
 아마도 사고로 양쪽 다리를 심하게 상했던 것 같아 보이는 20대 후반쯤의 남자였다. 순간적으로 일반 승객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시간대의 그 노선이 항상 그 정도로 한산한 편인 모양이었다.
 짐작은 하면서도 이번엔 또 무엇일까 하고 곁눈질해 보았더니 가방에서 종이를 항웅큼 집어내어 나눠주기 시작했다. 다리는 불편했지만 손동작은 재빨랐고, 말이 나눠주기이지 사실상 집어던지듯이 한 장씩 무릎 위에 아무렇게나 놓으면서 전동차가 두 정거장쯤 이동하는 사이에 한 바퀴를 돌았다.
 누구 하나 손으로 받아 쥐는 사람이 없었고, 받아서 읽어보는 이도 없었다. 낱장 짜리 연하장보다 약간 큰 도톰한 하늘색 종이에 깔끔하게 인쇄된 "호소문"이 적혀 있었다. 인쇄매체가 발달한 지금의 세태를 따른 듯 제법 투자를 했구나 싶었다. 글의 투나 짜임새로 보아서 혼자만의 작품이 아닌 듯한 느낌이 얼핏 들었다. 건성으로 읽어본 내용에는 특별한 사연은 없었다. 그리고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주문도 없었다.
 다시 한 바퀴를 도는 사이에 종이는 회수되었고, 몇몇 "맘씨 좋은"승객들이 동전을 곁들여 종이를 건내줄 뿐 나머지는 처음에 놓았던 채로 그냥 집어가도록 두었다. 동전을 받으면서도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없었고, 그런 모든 절차에 다들 익숙한 듯 극히 자연스럽게 일은 진행되고 있었다.
 시종 고심을 했던 필자는 마침 동전이 없다는 혼자만의 핑계로 그냥 종이만을 넘겨주었다. 꺼림 직한 마음과는 달리 상대방은 서슴없이 그것을 받아 쥐고 자리를 옮겨갔다. 그렇게 두 바퀴를 돌고는 또 다음 칸으로 건너갔다.
 
한 20년 전, 대학생 시절에 사회사업을 전공한답시고 사석에서 토론의 소재로 떠올린 적이 있는 이러한 류의 일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더 다양해지고 대담해진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지나쳐도 좋은 일을 이번 징소리의 얘기 거리로 삼은 것은 전공 탓일까?
 옛날 중세 말엽의 유럽에서는 "전문구걸인"(professional beggary)을 문제로 삼았던 적이 있다. 스스로 생산적인 노동을 하여 생활비를 마련하려 하지 않고 국가의 구제나 민간의 자선에 의존하는 가운데, 여기 저기서 겹치기로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던 빈민들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빗대어 일컫던 표현이다. 그때는 이러한 빈민들은 단속과 강제노역의 대상이 됐다.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의 노동윤리와 결합되면서 노동능력이 있으면서도 일하지 않는 빈민은 도의적 비난이나 제도적 제재를 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국가의 구빈 정책은 이들을 징벌 적인 방식으로 구제하고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는 가운데 시행되어졌던 바, 이 같은 전통은 근대적인 사회보장제도가 자리잡기까지 대략 300년 이상 지속되다가 폐기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었다.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가까운 60년대 초엽에만 해도 행려구걸인을 단속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역사랄 것도 없이 아직까지 그러한 관행의 일부가 남아서 최근에 사회문제로 부각된 바도 있다 그래서 한때 마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의 결실인 양 착각할 정도로 우리 주위에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적도 있다. 그러던 것이 근자에 들어 다시 그 수가 불어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의가 결코 다시 이들이 단속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나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진지한 배려가 없는 그러한 조치는 서구에서 이미 5∼60년 전에 폐기되었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더 이상 존속되어서는 안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꿎게 시민의 호주머니에 부담을 안기면서 이들을 외면하는 현실도 결코 장기화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난 3, 4월호「함께걸음」에 실렸던 소아마비 장애우 심아무개씨의 일화가 생각난다. 온갖 좌절과 배신을 딛고 어렵게 결혼해서 자활의 의지를 피워보려 했지만, 경제적 기반이 취약했던 부부만의 노력으로는 스러져 가는 가계를 감당할 수 없어, 언젠가 해 보았던 "구걸"을 또 한 번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이 실려 있었다. 심씨의 뒷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사회의 가난한 장애우들이 처한 서글픈 현실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사례를 들면서 필자는 한 가지 아쉬운 감을 떨칠 수가 없다. 그것은 혹시 일부이나마 장애우 스스로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장애우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냉혹한 사회 현실이 일차적인 질정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며, 따라서 이러한 현실로부터 희생당하고 있는 장애우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말을 바꾸어 놓는 일임을 인정하다. 그럼에도 장애우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들여다보려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선택이라는 이유로 장애를 "무기"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자칫 현대판 전문구걸인이 되어 정말 억척스럽게 자활의 길을 일구어 가고 있는 다수 장애인들의 노력을 퇴색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장애우 문제 가운데 큰 것 중의 하나로서 인식상의 문제를 든다. 이것은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일반 특히 비장애우가 갖는 장애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무관심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장애우 스스로 지니는 부정적인 자아인식과 사회에 대한 기피적 자세를 가리킨다. 아마도 이 양자는 상호 상승적으로 작용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작용의 방향은 반드시 부정적인 쪽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쪽도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사회의 관심이 떨어지는 것과 장애우의 부정적인 자아개념이 강화되는 것이 교호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반면, 사회의 긍정적 관심과 장애우의 자주적인 사회참여도 상보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후자에 대한 신념을 키워나가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힘써야 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남은 일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기풍(ethos)조성이 과제라고 답하고 싶다. 다시 이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다각적인 사회제도를 통하여 장애우에 대한 일반의 의식변화를 주도하는 거시적 차원의 노력과, 개개인이 장애우에 대한 긍정적 체험을 넓혀 나가는 미시적 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리라고 답할 수 있겠다. 더 이상의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문제에 관심을 지닌 각자의 몫일 것이다.

글/감정기<경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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