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우 일상다반사⑭]꿈과 정열을 그대에게!! > 대학생 기자단


[중증장애우 일상다반사⑭]꿈과 정열을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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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연극배우 채희준입니다. 제 이름을 들어보신 적 없으시다고요?
괜찮아요. 지금은 무명배우지만, 앞으로는 연극계를 주름잡는 실력파 배우가 될 테니까요.
무명배우가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하냐고요?
저는 제 자신을 믿어요.
연극에 미쳐 있는 제 끼, 그것이 저를 지탱하는 힘이니까요.
아참, 제 소개가 너무 짧았나요?
저는 올해 서른 다섯이고, 소아마비 장애가 있어 몸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 얘기를 시작해볼랍니다.

혹시 여러분, 징애우 극단 ‘휠(wheel)’을 들어보셨나요?
휠은 2001년 12월에 결성된, 국내 최초로 장애우가 직접 만든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이랍니다. 휠은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어 우리 사회의 벽을 없애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죠.
휠은 2001년부터 올해까지 세 번의 자체공연과 네번의 초청공연을 열었습니다. 나름대로 내실이 탄탄한 극단이죠.
휠은 일년에 두 번 공연합니다. 한 공연마다 준비기간만 3개월이 넘게 걸지죠.
사실 대학로에 우리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연극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은 거의 없습니다. 이 소극장도 정말 힘들게, 겨우겨우 따낸 겁니다.
저는 이 극단의 창립 멤버이기도 합니다. 극단 휠은 제가 처음으로 연극을 할 수 있게 된, 저의 첫무대였습니다.
2001년 추웠던 어느 겨울날, 한 일간지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이거다 싶어서 리허설을 보러 갔습니다. 그 때, 그 순간부터 제 인생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제가 꿈만 꿔보던 다른 사람의 삶을 느껴볼 수 있게 된 거죠.

올해도 지난 11월 ‘생일파티’라는 공연을 했습니다.
물론 막은 이미 내렸지만, 안타깝게 이 공연을 놓치신 분들을 위해 좀 더 소개를 할께요.  20대 중반의 휠체어 중증 장애우인 민수는 고민을 서로 나누는 웹사이트 운영자로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민수의 생일날, 그녀의 집에 도둑이 침입했는데, 도둑이 오히려 불쌍하다고 생각한 민수는 자기의 통장을 주려합니다. 도둑은 자신이 장애우에게까지 동정받는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 이미 챙긴 물건까지 놓고 가죠. 그러던 중 민수는 한 여자에게 상담전화를 받았고, 상담 후 그녀는 민수와 직접 만나고픈 마음에 경찰의 도움을 받아 민수의 집에 찾아오게 됩니다. 갑작스런 이들의 등장에 도둑이 당황해 생일 케익 사러가야겠다고 나가게 됩니다.

 
아니, 그런데 저는 언제 나오냐고요?
저는 이번에 민수에게 상담전화를 한 여자의 남자친구 배역이었습니다. 이 남자 한마디로 카사노바, 바람둥이였던 거죠. 음… 그 날 제가 ‘한 바람’했는데, 못보신 분들은 아마 굉장히 후회되실 겁니다.
장애 때문에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저에게 연극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우선 소극장이 있는 대학로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데, 휠체어 리프트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을 찾아 돌아야 하고, 막상 지하 소극장에 오면 저 혼자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이번 연극을 위해 4개월간 준비하면서 참 힘들더군요. 무려 5킬로그램이 빠졌으니, 이 나이에 이렇게 갑자기 살 빠지면 기력이 정말 딸립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힘든데,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준다고, 뭐하러 그 고생을 하느냐고들 했습니다.
갑자기 4년 전 첫공연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와줄까. 내가 과연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무대 뒤 커튼 뒤에서 초조하게 객석을 마라보며 마른 침을 삼키곤 했었죠.
올해 ‘생일잔치’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던 날...
마지막 연극이 커튼이 내려진 무대,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진 텅빈 객석, 고요만이 맴도는 극장… 이 느낌 직접 느껴보지 않으신 분들은 모를 겁니다. 그간의 긴장과 고통, 쏟았던 눈물과 땀들, 일시에 몰려드는 그 피로감과 안도감… 다시 가슴이 먹먹해지는군요.

그래요. 사람들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한정된 삶만 살아야 하는 현실을 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저는 정말 연극이 좋습니다. 연극은 미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연극에 빠진 이유는, 연극에서는 제가 살아보지 못할 다른 삶들을 잠시나마 내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배역, 또 갖가지 성격의 사람들에 저를 투영시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연극이 제게 주는 매력입니다. 게다가 저는 오래 전부터 무대에 서보고 싶었거든요.

이젠 제법 팬레터도 옵니다.
정말 카사노바 아니나며 의심스러워하는 편지도 있고, 내년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바란다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요. 이게 연극을 계속하게 하는 또다른 힘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보고 싶은, 무엇을 가지고 싶은, 무엇이 되고 싶은… 꿈을 모두 이루면 좋겠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녹녹합니까.
그렇지만 연극에서는 가능합니다. 꿈을 꾸는 것도, 꿈을 이루는 것도 연극에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해도, 마음이 불편해도 연극에서라면 가능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저와 함께 꿈꿔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글 채희준

 

작성자채희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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