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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기독교 사회복지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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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에 사회복지 전문기관이 곳곳에 새로 설립되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가지고 복지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이런 복지기관의 설립이 큰 기업체의 직접 참여는 물론 교회나 사회사업기관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교회가 이러한 복지활동에 참여해 온 것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필자가 속한 대한성공회만 보더라도 최초의 고아원이 1891년 인천에 설립되었으며 1893년에는 서울에서 문을 열었고, 서울과 인천에는 이와는 별도로 1891년에 병원을 세 곳에 세우기도 하였다. 당시의 병원은 오늘날의 의료기관과는 달리 완전한 자선병원과 같이 치료비를 받는 일이 없이 봉사하는 기관이었다.
 성공회의 고아원의 성리득보육원은 1900년대 초에 수원으로 옮겨 정착한 후 1972년에 성베드로학교(정신지체아교육기관)를 설립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활의 길을 열어주고 희망을 안겨주었다. 성공회의 사업기관은 이후에도 음성나환자를 위한 자활 마을 "성생원" 건립 그리고 1950년대 이후에는 지역사회개발 사업에 적극적인 참여를 한 바 있다.
 
50대가 넘은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할 일이지만 6·25동란 이후 세계기독교봉사회를 통한 각종 구호물자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근과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세계기독교봉사회가 1970년대 초반까지 구호활동을 벌이고 각 지역사회 개발을 위하여 참여한 여러 가지 활동은 오늘날의 발전을 이룩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후 한국기독교봉사회를 통하여 설립된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는 오늘날까지 주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자립과 협동의 삶을 이루어나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복지는 과거와 같이 구호나 구제의 사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 살맛나는 평화와 정의가 깃들어 있는 사회, 그리고 이런 세계를 위해 서로 책임을 지는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는 아직도 가난하게 살고 있거나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구제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 곧 참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사회사업이 물질적 나눔이었다면 이제는 삶을 함께 나눔으로써 서로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곧 사회복지라는 정신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 흔히 교회를 예배공동체와 구원의 공동체라고 말하거나, 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교회가 "남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룩하는 매개체이며 세상을 변화시켜 화해와 평화가 충만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중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직제나 신앙, 예배와 교육, 전도나 회개운동 등도 새로운 세계를 이룩해 나가기 위한 과정이며 요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은 스스로 방대한 왕국이 되어 자신의 웅장한 성곽 안에 머물려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을 바쳐 세상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거짓까지도 끌어 모아 세상과는 동떨어진 별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라는 조직을 관리 유지하기 위하여 막대한 비용과 시설을 건설하거나 엄청난 규모를 갖춘 기도원을 건축하는 것은 교회가 감당해 나가야 할 사회복지라는 차원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다. 교회가 교회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구원을 다만 영적인 기쁨으로만 국한하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교회가 교회 자체의 필요에 따라 웅대한 교회당을 건축하거나 학교건물을 방불케 하는 교육관이나 회관을 짓는 것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만, 교회가 사회에 파견된 하나님의 몸이라면 그것은 실로 말씀이 육화되는 역사의 변화가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란 이런 의미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그것은 복지사업이나 활동을 통해 그 일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은 물론 그 주변까지도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는 따라서 현대사회의 중심이며 모든 사람이나 모든 기관, 더 나아가 세상을 거듭나게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곳곳에 세워지는 사회복지 전문기관을 평가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단순히 사회복지기관이 탁아소의 기능, 독서실의 기능, 또는 노인들의 휴식처 기능만을 하는 공간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본래의 의미와는 아주 먼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회 복지기관을 통해서 몇 가지 실제적인 이득을 얻어내거나 좀 더 발전적으로 카운슬러링을 받아 새로운 삶의 기쁨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복지기관은 각자의 삶의 가치가 바뀌는 매개체요 중심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들이 세우고 운영에 책임을 지는 사회복지 기관들이 교회의 전도를 목적으로 이용되는(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경우가 있다면, 이것은 사회복지 업무가 하나의 교회사업으로 전락해 버리는 폐해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교회가 예산의 일부를 떼거나 헌금의 일부를 보내서 단순히 사회사업 차원에서 베풀고 교회의 사업에 이런 기관을 이용한다면. 이것도 전근대적인 사회사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회복지기관이 교회의 선교적 대안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복지는 이를 통해서 서로가 변화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세계적(Gloval) 관계가 새삼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세계는 큰 블록으로 나뉘어지면서 과거의 민족개념이나 국가개념이 바뀌고 있다. 그것이 경제적 목적에서건 정치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건 새로운 세계의 변화는 사회복지의 사명을 더욱 크게 요구하고 있다. 사회복지는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대립된 관계를 화해로 이끌며 불평등의 사회를 고르게 변화시켜 마침내 인간사회의 조화와 일치 그리고 협동을 이루어나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사고의 틀도 변화시킬 때가 왔다. 새 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동의 사명이며, 이 사명을 위해 우리는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글/이재정

 

작성자이재정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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