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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손수건 세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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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동안 나는 손수건을 석장 샀다.
석 장의 손수건은 파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만든 과정이 모두 달랐다. 그런데 손수건은 같은 손수건이었다.

처음 손수건을 판 사람들은 비장애우 둘이었다.
“여러분들이 피우는 담배 한갑 값으로 우리 불쌍한 장애우들은 하루를 먹고 살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렇지만 ‘불쌍한’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깔끔한 옷맵시에 은색 테를 두른 안경을 손으로 받쳐 올리고는 또박또박 설명했다.
두 번째는 정신지체장애우 둘이었다.
앞뒤 설명 없이 한 분이 “죄송합니다”라며 손수건을 승객들의 무릎에 놓고 가면 수초 간격을 두고 다른 한분이 “감사합니다”라며 손수건을 다시 가져갔다. 무척이나 유기적이고 숙련된 몸동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재빠르던지, 나는 다음 분이 오기까지 미처 돈을 꺼내지 못했다.
마지막은 장애우 커플이었다.
장애유형을 구분하기 어려운 여성분이 휠체어를 탄 남성분을 밀어주고 있었다. 언뜻 보면 부부 같아 보이기도 하는 이 커플은 무척 당당했다. “우리 장애 동지들이 천부터 손수 골라서 만든 것입니다. 한땀 한땀 바느질해서 여느 손수건과 비교도 안될 만큼 좋은 제품입니다. 하지만 도와달라는 의미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받지는 않겠습니다. 시중가보다도 싸게 딱 2천원만 받겠습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개인적으로 파란색을 좋아해서 별 생각 없이 파란색만 골라서 샀는데 큼직한 장미가 찍힌 모양이나 위치, 심지어는 손수건에 사용된 원단까지 모두 똑같았다.
처음엔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장애우들을 돕자는 건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그들이 만드는 손수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져온 장애를 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좀더 솔직해져서 한 기업의 제품을 여러 단체가 팔아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장애우를 돕는다는 핑계로 말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수익금의 일부는 공익사업에 쓰입니다”라고 표기된 물건을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요컨대, “상품의 질, 제조과정, 판매방식, 수익분배방식에서 장애우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석장의 똑같은 모양의 손수건은 내게 이를 알려주지 못했다.
다만 장애를 샀을 뿐이고 나눔을 실천했음에도 왠지 모르게 당당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작성자조병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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