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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새벽 대구 칠곡면 시온글러브 공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인해 당시 공장 안에 있던 10여명의 노동자 중 4명의 장애우 노동자가 사망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지 20여일이 지난 지금도 화재의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더욱이 화재를 둘러싼 회사측과 피해자 가족측의 진술도 엇갈리고 있는데다가 보상문제에 대해 서로간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어 4명의 피해자 중 3명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우리 연구소도 화재가 발생해 시온글러브 화재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겨우 칠곡면을 찾은 것은 화재가 발생하고도 10일이 훌쩍 지난 19일이었다. 대구에서도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장은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 흉물스럽게 서있었다.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린 골조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생활 집기들만이 이 자리가 사람들이 삶을 일구며 생활했던 현장이라는 것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길 건너에 있는 시온글러브 사무실에서는 일상적인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날도 역시 취재진이 몰려들어 이를 상대하느라 분주해보였다.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예전 공장에서는 평소처럼 조업이 한창이었다.
사무실에 들러 회사측과 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대구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들러 담당자들과 면담을 하고 피해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들러 피해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나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네명의 무고한 생명이 화재로 사라져 갔음에도 나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기 앞서 화재의 원인이 뭐고 누구의 책임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어떻고 그래서 앞으로 어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재 이후 공단이 내놓은 편향적인 보도자료를 보면서, ‘모범적인 기업의 불행’이라고 하면서 사후관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공단 관계자들을 보면서, 장갑공장의 단순작업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3급의 정신지체를 ‘똥오줌 못가리는 장애’로 몰아부치며 그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것을 무슨 자선인듯 이야기하는 회사측 사람들을 보면서, 이에 덩달아 ‘장애인의 천국’을 운운하며 연신 호들갑을 떨던 언론을 보면서, 새삼스럽지도 않게 드러난 장애우 보험차별문제가 화재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책인양 ‘직권조사’를 대대적으로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행보를 보면서, 나 역시 그들과 다름 없이 ‘사람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피해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지만 나는 과연 화재의 현장에서 사람을 직시하고, 사람에게서 멀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을지 부끄러웠다.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화재 속에서 죽어간 장애 노동자들을 슬퍼해야 할 때다.


 글 조병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국)

작성자조병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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