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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를 보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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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수강신청을 하러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학교 정문 앞에서 전경들의 검문을 받았다. 전경들은 앞뒤 설명 없이 내게 신분증을 요구했는데,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내가 가진 신분증이라고는 주민등록증밖에 없었다. 학생 신분임을 증명하지 못한 나는 가까운 경찰서까지 따라가서 학생과의 확인을 받은 뒤에야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학교에서는 운동권 학생들의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경찰당국은 이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해당 학교 학생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모두 연행했다. 집회참가 여부에 상관없이 일단 해당학교 학생이 아닐 경우 집회참가예정자로 분류되어 버린 것이다.

지난 2월 영등포 전철역에서는 역무원과 중증장애우 김씨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유인즉 동행인이 잠깐 볼 일이 있어 잠시 김씨 곁을 떠나 있는 동안 김씨가 미리 무임승차권 두 장을 받아 놓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1급 지체장애를 가진 김씨는 평소처럼 매표창구에서 장애인 복지카드를 제시하며, “(무임 승차권) 두 장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역무원은 김씨를 위아래로 몇 번이고 훑어보더니 “보호자를 데리고 와야 (두 장의 무임승차권을) 줄 수 있으니, 보호자와 같이 오라”고 했다. 김씨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매표창구에 보호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무엇보다도 30대에 접어든 성인이 ‘보호자’를 운운당해야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또한 창구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에 중증장애우로서 법적으로 보장된 서비스를 마치 구걸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이미 부정승차로 적발된 상태에서 담당자에게 지적을 받는 것 같았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김씨는 물었다. “공사(한국철도공사)규정에 그러한 규정이 있습니까?” 역무원은 “그렇다”고 했고, 김씨는 이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역무원이 보여준 규정에는 무임승차권을 얻기 위해서는 매표창구에서 동행인(보호자)과 같이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다만 장애우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면 되었고 장애우를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동행인(보호자)이 있을 경우, 동행인( 보호자)도 무임권을 소지할 수 있었다. 김씨가 이를 가지고 역무원에게 끈질기게 항의하자 역무원은 ”최근 부정승차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한국철도공사에 문의한 결과 그러한 지침을 내려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역무원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역무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흔히들 범죄는 검거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예방을 위한 조치가 결코 법적 절차나 개인의 인권을 넘어설 수는 없다. 만약 예방을 위한 조치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철저하게 당사자의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위 두 사례에서 우리는 그러한 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법집회를 막을 요량이면 집회 현장에서 막아야 할 것이고 부정승차를 막을 요량이면 검표과정에서 막으면 된다. 더욱이 이러한 절차를 따르더라도 엄격한 처벌조항이 있으므로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을 하라고 그들에게 관리감독권을 부여한 것이 아니다. 


글 조병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작성자조병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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