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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우리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에 장애우 인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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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앞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붙은 대형현수막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420투쟁단)’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을 전격 점거했다. 다음날인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420투쟁단은 “지금까지 장애우의 삶은 철저한 억압과 차별의 역사였고 이에 정부는 시혜와 동정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조금도 변함없는 장애우의 현실에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점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들의 외침 한가운데서 나는 몇 년 전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의 첫만남을 생각해본다. 4~5년쯤 전인가 4월 여의도 한가운데서 그들을 만났다. IMF 찬바람이 채 가시지도 않았던 그때,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장애우 2% 의무고용 완화”를 정부에 요구했다. “구조조정의 대세 속에서 장애우라고 예외일 수 없고, 비효율적으로 의무고용을 하는 것보다는 그 비용을 복지기금으로 환원하겠다”고 전경련 대표들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당시 4~50명의 장애우들이 산만하게 정렬을 하고 형형색색의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여의도 공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것이 과연 조직된 시위대일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어수선했다. 물론 시위에 참여한 장애우 하나하나는 차별에 저항하는 비장한 기운이 서려 있었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내용은 어쩌면 그들만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무리와 10여미터 떨어진 인도 위에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이 늦어져 약간은 조급한 마음에 약속장소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한손으로 귀를 막고 친구와 통화를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정지화면처럼 그들과 나는 10여미터의 거리를 뛰어넘는 거대한 시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2005년 3월 26일 ‘제1회 전국장애인대회’를 마치고 ‘장애열사 추모제’를 하기 위해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가는 중간에 나는 그들과 같이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아닌 ‘우리’로서 나는 잘 정돈된 4~5백의 무리 안에서 즐거운 해방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넓은 광화문 네거리 편도차선을 전부 점거한채 우리는 ‘장애우 차별 철폐’를 요구하고 있었다. 4~5년 전 여의도에서 만났던 그들이 분명히 2005년 세종로에서 나와 같이 하고 있음에도 당시 내가 가졌던 거대한 시공간의 차이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4~50의 무리가 4~5백이 되었듯이 그 안의 사람들은 좀더 다양해졌고 그 안에서 나오는 요구도 다양해졌지만 그때 그들이 내뿜었던 분노는 더 이상 세상을 향한 한맺힘이 아니라 당당한 권리로서 주장되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가 되기까지 여러 요구들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세상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순간 차별에 저항한다는 것을. 

글 조병찬

작성자조병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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