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다섯병 마시고 자버린 어느 날 > 대학생 기자단


소주 다섯병 마시고 자버린 어느 날

본문

 
 
석달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이라 우리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나는…

난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늦둥이로 얻은 아들이었다.
하지만, 중증의 뇌성마비가 있는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업고 수많은 병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셨다. 나의 장애를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사기도 많이 당하셨다.

내가 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아버지는 나를 충주에 있는 특수학교에 보내셨다.
내가 입학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자, 아버지는 나를 보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오셨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도 없이 창문 밖에서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가시곤 했다. 참고로 당시 우리 집은 충북 단양이었다. 그 거리를 아버지가 매일, 나를 보러 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방학이 되어 집에 가면, 아버지는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유원지 같은 곳에 자주 데리고 가셨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냄새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등에서 나던 그 냄새, 오토바이의 소리와 귓불을 때리던 시원한 바람까지도.

방학 때 마다 나는 살이 올랐다. 아버지가 몸보신 시켜준다고 닭이며 토끼 같은 것도 많이 해먹이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한번도 나를 때리신 적 없었다. 남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의 말을 아버지는 언제나 척척 알아들으셨고,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손과 발까지 기다려주셨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까지 생일상을 차려주셨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챙겨주시지 않던 생일상을, 아버지는 올해 문득 차려주셨다.

그리고 닷새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공황 상태로 석 달을 보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술이었다.

하지만 나의 장애 때문에 번번히 술집 출입을 거절당한 경험들이 있어서 나는 술을 마시러 갈 때는 정장차림으로 간다. 그렇지 않으면 구걸 왔다고 생각해 아예 문전박대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 날도 나는 술이 고팠다. 하지만 집에 처박혀 마시는 술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양복을 입고 술을 마시러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날 나는 열 곳의 술집에서 문전박대 당했다.

“나는 구걸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시러 왔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장애자는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 “여기는 장애자가 들어올 곳이 아니다.”, “자리가 없다, 이미 다 예약됐다.”, “보호자 없이는 못 들어온다.”, “돈도 없이 무슨 술이냐”, “장애인이 무슨 술이냐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잠이나 자지…”

그들은 입구를 막아서면서 내게 이렇게들 말했다. 심지어 한 호프집에서는 나에게 천원을 쥐어주며 나가라고까지 했다.

스무살이 훌쩍 넘은 나인데, 장애가 있다고 보호자와 술을 마시라고?.
아니, 양복 입고 구걸하는 사람도 있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호프집 들어가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술을 마시기도 전에, 나는 헛헛해졌다. 토할 것 같았다.
난 그저 좋은 음악이 필요했고, 술이 고팠고, 안주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를 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고, 장애우로만 봤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니 당연히 구걸하러 왔겠지라고 미리 넘겨짚었다.

눈을 맞추기는 커녕,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 수 있는 것일까.

결국 그 날 나는 여관에 가서 소주 5병 마시고 자버렸다.

글 김광표(장애우인권지기 회원)

작성자김광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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